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913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Buddhastudy 2014. 4. 29. 20:47

출처 YouTube

 

~ 오늘 법문의 주제는 따라하세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이게 오늘 법문의 주제에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인생이 고달프고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왜 인생이 고달프냐? 남편이 애를 먹여서,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해서, 이런 얘기 들으면, 결국 괴로움의 원인은 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요. 그들이 나를 괴롭힌다 이거요. 그런데 정말 그들이 나를 괴롭힐까? 이걸 오늘 우리가 한번 돌이켜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그럴까? 내가 나를 괴롭힌다. 그들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힌다. “누가 자기를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요. 아무도 자기를 괴롭히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 어리석어서. 자기는 행복하게 한다고 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자기를 괴롭히게 됐다.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찧듯이 이렇게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 이런 얘기요.

 

그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러면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그들을 고쳐야 합니다. 그들을 고치려면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내가 나를 괴롭힌다.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고치면 되요. 그들을 고치는 거 하고 나를 고치는 거 하고 어느 게 더 쉬울까요? 나를 고치는 게 더 쉬워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나를 괴롭히는 줄 알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 날 확률이 더 높아요. 그들을 고치려면 내 뜻대로 안되니까 누구 힘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되요. “부처님 하느님 쟤들 좀 고쳐주세요.” 이렇게 해야 돼.

 

내가 나를 고치는 거는 누구한테 부탁할 일이 아니에요. 내가 할 일이지. 내가 하기 싫어서 안하거나 하고 싶으면 하거나, 이건 내 문제이지 누구한테 부탁할 일이 없다. 이거요.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잘못알고 있기 때문에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상을 고쳐야 하고, 그러려면 힘이 드니까 힘 있는 자에게 부탁을 해야 돼. 그런데 내가 나를 괴롭힌다. 원인이 나한테 있다. 이렇게 알게 되면 내가 나를 고치면 되니까 이거는 남에게 부탁할 일이 없어요.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니까. 이것을 수행이다. 이렇게 말해요. 수행이다.

 

이렇게 남이 나를 괴롭힌다하고 잘못알고 있는 것을 사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바르게 아는 것. 이것을 우리가 지혜다.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어떤 이치를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것. 이것을 우리는 견도다. 이렇게 말해요. 도를 알았다. 이치를 알았다. 이렇게 말해.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내가 나를 괴롭힌다. 하는 것을 알았는데도, 막상 현실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네가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헷가닥 해버려요. 잘 안 돼. 자기 고치는 것도 잘 안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실수를 하고 또 , 내가 놓쳤구나.” 하고 다시 돌아오고, 또 실수를 하고 돌아오고. 이렇게 연습을 좀 해야 된다. 이것을 수도다. 도를 닦는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자기를 바로 본다. 그래서 괴로울 일이 없는 상태로 간다. 그러면 이것을 무학도라 그래.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하는 경지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하는 데는, 도를 닦는 데는 3가지가 있다. 첫째가 뭐라고? 견도. 두 번째가 뭐라고? 수도. 세 번째가 뭐라고? 무학도. 견도라는 것은 이치를 바르게 안다. 도를 본다.

 

수도라는 것은 이치는 알았지만 실천이 안 될 때, 실천이 될 때까지 연습을 하는 경지고. 무학도라는 것은 연습이 이루어져서 그것이 실제로 이치대로 될 때를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먼저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치도 모르고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거는 수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방황이라 그래.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법문을 듣는 거는 이치를 바르게 아는 거요. 이치를 안다고 그럼 되느냐? 아니다. 우리는 잘못알고 있는, 어리석은 상태로 많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거기에 이미 습관이 들어있다. 그래서 현실에 딱~ 부딪치면 나도 모르게 옛날식으로 돌아가 버려요.

 

그래서 그때 알아차리고, 뉘우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이런 것이 몇 차례 반복이 된다. 어떤 거는 수십 차례 수백차례 반복이 된다. 그러면 수도가 안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렇게 놓치고 다시 잡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기간을 수도라고 말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게 되는 거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도를 아는 것, 중요하고. 두 번째는 도를 닦는 것이 중요하다. 알기만 한다고 안 되고, 닦아야 하고. 또 무조건 닦는다고만 되는 게 아니다. 먼저 알고 닦아야 된다. 이런 얘기요.

 

이렇게 우리가 도를 알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도를 모르면 어떠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바깥세상이 주인이 된다. 거기에 내가 속박을 받는다. 이거를 경계에 끄달린다. 이렇게 말해요. 누가 나를 욕을 하면 화를 벌컥 낸다. 그러면 내가 주인이요? 그 욕하는 사람이 주인이요? 욕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 사람이 하는 짓에 따라 내가 반응을 하기 때문에. 그러니 그거 욕을 하더라도 내가 빙긋이 웃는 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끄달리지 않는다. 그가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다. 이런 얘기요.

 

이렇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내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희망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희망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서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도 있고 책임도 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은 자기가 자기인생을 괴롭히고 산다. 그래서 인생이 불행하다. 이거요.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부정적으로 보면 괴롭고, 긍정적으로 보면 즐겁습니다. 어떤 사물에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는 게 아니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면 괴로워지고 긍정적으로 보면 즐거워진다.

 

그러니까 이 긍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보는 이 사고의 틀, 이게 까르마, 업식이라 그래요. 이 업식을 바꿔야 된다. 업장을 소멸해야 된다. 그 말은 부정으로 보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으로 전환시켜야 된다. 그러면 매사에 삶의 기쁨이 생긴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희망을 밖에서 찾지 마라. 내가 바로 내 인생의 희망이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어떤 이유 핑계를 대고. 나를 괴롭히는 것, 불행하게 사는 것은 자기 인생을 방치, 방기하는 거다.

 

남을 괴롭히는 것도 벌을 받지만 자기를 괴롭히는 것도 벌을 받는다. 으흠. 자기 인생을 스스로 괴롭히지 마라.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내가 내 인생을, 내가 나를 아낄 줄 모르는 데, 누가 나를 아껴주겠으며, 내가 나를 아낄 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남을 아낄 줄 알겠느냐? 내가 나도 사랑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하겠으며,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느냐? 그러니 남을 아끼고 남을 사랑하고 남으로부터 사랑받고 남으로부터 아낌을 받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 이런 얘기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게 뭐요?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행복하라.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이런 원을 세우셔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행복하도록 만들어야 된다. 길가다가 넘어져서 한쪽 다리가 부러지면, “아이고, 재수 없이 내 다리 부러졌다.” 이렇게 부러진 다리 갖고 한탄하지 말고, 안 부러진 다리 잡고, “아이고 요것도 부러졌으면 큰일 날 뻔했다. 요건 안 부러졌네.” 요럴 정도로 요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봐라. 이런 얘기요. 그래야 자기를 행복하게 해나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