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1_5. 한국인은 내세가 없는 민족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Buddhastudy 2016. 1. 6. 18:07

법륜스님이 제안하는 곱게 늙는법 [한겨레談 1-1]

 

 

20 몇 년 넘은 얘기인데요. 굉장히 어렵게 어렵게 고생을 해서, 성공을 했다 그럴까? 다리 뻗고 잘 수 있다, 그런 경지에 이르렀어요. 그런데 몸에 병이 났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해보니까 암 말기에요. 그래서 1년 밖에 못산다. 이렇게 진단이 났는데,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다 안타깝지 않습니까? 정말 고생했는데, 저렇게 죽는 거, 너무 안 되었다. 그래서 거기 있는 사람이 병원에 면회도 가고 그랬는데, 면회 갔던 분 중에 한분이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때 굉장히 저한테는 과제였어요. 1년이나 살 사람을 두고, 하루밖에 못살 사람이 오늘 위문을 했다는 거요. 이건 뭘 의미하느냐? 왜 하루밖에 못사는 사람이 1년이나 살 사람을 격려하고 위문을 하느냐는 거요. 하루를 하느냐? 이틀을 사느냐? 한 달을 사느냐? 1년을 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이 환자의 고통은 1년밖에 못살기 때문에 고통이 아니고, 1년 밖에 못산다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1년을 괴롭게 살다가 죽는다는 데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1년이 핵심이 아니라는 거요. 1년을 괴롭게 살다 죽는다는 데 있다는 거요. 열흘을 사는 것도 굉장히 소중한 인생이고, 100일을 사는 것도 소중한 인생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이게 1년 밖에 못산다 할수록 그 하루하루를 더 기쁘게 살아야 된다는 거요. 남보다 10배 더 기쁘게. 그러니까 1년 밖에 못산다 하면 그러면 내가 더 이상 남 걱정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고, 오히려 남한테 내가 신세졌으면 신세도 좀 갚고, 그 다음에 남 칭찬 못했으면 칭찬도 좀 해주고, 그 동안에 영원히 살 것처럼 움켜쥐었던 거를 오히려 좀 풀어서 베풀어 주고.

 

이런 식으로 해서 그 1년을 정말 기쁘게 산다면, 그게 행복이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오래 사는 것만 생각하지, 그 오래 살겠다는 집착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그 남은 생마저도 결국은 괴롭게 살다가 죽는다는 거죠.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사느냐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초점을 맞추자.

 

예수님께서 33살에 돌아가셔도 그 분이 돌아가실 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향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그런 마음으로 자기 삶을 받아들일 때, 비록 타인이 내 육신은 죽일지언정, 죽일 수 있을지언정, 내 영혼은 어떻게 못해보잖아요. 저는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고 해탈이고, 또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영생이지, 3일 후에 육신이 다시 살아난 걸 부활이다 하는 거는 그건 너무 본질에서, 근본에서 벗어난 거 아니냐.

 

왜 이렇게 삶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는 위대한 거고, 그분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남게 되는 거고, 많은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거 아니겠느냐. 우리가 그런 삶의 자세를 조금이라도 배워 나간다면, 우리가 나에게 주어진 삶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 죽음까지도. 어쩌면 병까지도 육체적 통증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통증이니까, 그건 아파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을 그 어떤 것이든 좀 더 가볍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 전 이런 자세가 좀 필요하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