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50회] 아버지가 자기주장이 강해서 만나면 불편합니다.

Buddhastudy 2016. 1. 21. 21:27


  

친정아버지하고 같이 살아요?

친정에 가니까 아버지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듣구나.

출가외인이라 그래서 결혼했으면 친정에 안가면 좋지. 아버지는 아직도 직장에 나가세요? 그러면 낮에 갔다 오면 되잖아.

 

아니 찾아뵈면 미워한다니까. 그러니까 찾아뵙고 미워하는 거 보다는 안 찾아뵙고 안 미워하는 게 안 낫나? 내가 이 사람 좋아하고 미워하는 게 낫나? 좋아도 안하고 미워도 안하는 게 낫나? 그러니까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그러니까 아버님이 지금 자기 학교도 이렇게 합격했는데 저리가라. 유학 가는 것도 못 가게하고 이렇게 조언을 했는데 자기가 따를 정도면 아버지가 사회적 지위가 있으실 거 아니야. 우리가 얘기를 들어봤을 때

 

저희 아버님 같은 분은, 내가 뭐 될 때 너 그게 되지 마라. 저거 해라. 유학 가라. 유학 가지 마라.” 이런 얘기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없겠지. 그러니까 아버지가 유식하거나 돈이 있거나 지위가 있어서 세상에서 뭔가 세상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만한 위치에 있으니까 그런 얘기를 할 거 아니야. 그지? 그러니까 그런 아버님을 두고 살았다 그러면 자기가 평균적인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부모 은혜를 많이 입었나? 적게 입었나?

 

그러면 아버님이 대학을 안보내주는 게 낫나? 과를 바꿔주는 게 낫나? 그러니까 유학 갈 형편이 안 되는 집에서 태어난 게 낫나? 형편이 되는데 아버지가 가지마라 그래서 안가는 게 낫나? 그러면 유학 갈 형편이 안 되는 집에 태어나고 대학 갈 형편이 안 되는 집에 태어나 자란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은데, 그래도 집안이 좋은데서 태어나서 학과를 이거 가겠다 하는데 저거가라 그래서 따랐고, 또 유학가려니까 가지마라 그래서 또 지금 남편 만났는지도 모르잖아.

 

만약에 유학 갔으면 지금 시집도 못가고 공부한다고. 내가 미국가면 유학 와서 박사 논문 쓴다고 앉아서 나이가 35, 40살도 되었는데도 결혼도 못하고 박사 논문 쓴다고 끙끙대고 반은 정신질환이고 이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대학마다 가서 물어보면 5백 명씩 있어요. 박사 따려고. 주립대학마다. 그러니까 중국학생이 제일 많고 두 번째가 한국한생, 또는 인도학생이 많을 때도 있고.

 

그러니까 우리나라 유학생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인구로 따져서 중국은 14억이, 인도는 12억이 우리는 5천만 명인데 지금 2등 아니면 3등하고 있어요. 그러니 얼마나 유학경비도 많고 유학생이 많으냐 하는 거를 알 수가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안간 건 참 잘한 거 같아. 왜 그러냐 하면 유학생이 조금밖에 없을 때는 갔다 오면 대우받아요? 안 받아요? 이렇게 많을 때는 갔다 와도 대우를 별로 못 받아요.

 

이렇게 나이 들어 박사학위 따오면 취직 안 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박사학위 없으면 오히려 들어갈 자리인데, 박사학위 있다 보니 눈이 높아져서 안 들어가게 돼. 그래서 옛날엔 학벌 속이는 게 중학교 나왔는데 고등학교 나왔다 그러고, 고등학교 나왔는데 대학교 나왔다 그러고. 이게 학벌 속이는 건데, 요즘은 직장에 학벌 속이고 대학 나와 놓고 고등학교 나왔다 그러고, 석사인데 학사라 그러고 박사인데 석사라 그러고. 이게 요즘은 또 학벌 속이기의 유행이에요.

 

그래서 공연이 박사 따놓고 학사라고 속이느니 그냥 학사가 학사라고 하는 게 훨씬 낫잖아. 그래서 그렇게 '나 하고 싶은 데로 못했다' 하는 요것만 보면 피해자에요. 맞아요. 본인이. '나 하고 싶은 데로 못했다.' 그런데 '나하고 싶은 데로 한 게 꼭 잘 되었을까?' 이걸 생각해 보면, 잘 되었다고 하는 아무런 보장이 없어. 그 옆에 지금 질문자도 '남편이 먹지마라 하는데 먹었다.' 이게 지금 문제 아니오. 딴 거 지금 부작용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내가 먹지 마라는데 감히 먹었다. 니가 내 말을 안 들어.' 이게 첫째고

 

두 번째는 '그러다 죽어버리면 나 어떻게 할래?' 자기 이해관계가 두 번째인데, 그런데 어떻게 세상이 내 원하는 데로 돼. 그러다 죽으면 시집 한 번 더 가고 좋잖아. 내가 볼 때는 별일 아닌데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인데. 그런 것처럼 부모님이 나 하고자 하는 걸 못하게 했다 그 측면만은 충분히 가슴에 맺힐 만한 일이지만, 그냥 우리가 제3자 입장에서 볼 때는 그것이 꼭 나쁘다 이렇게 볼 수는 없어.

 

나도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인데, 나는 부모도 아니고 우리 스님이 그냥 반 강제로 하다시피해서 중 만들었거든. 나도 원한에 사무쳐서 살아야 될 거 아니야. 그런데 지나놓고 보면 그때는 이게 안 좋은 줄 알았는데, 그때야 과학자가 좋지 스님이 뭐 좋아 보이겠어요? 그런데 지나놓고 보면 그것도 또 나쁜 것도 아니오. 결과적으로 잘되었다. 이런 얘기야. 그런 것처럼 어쩌면 자기 인생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잘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아버님께는 감사합니다.’이렇게 기도를 해주는 게 좋아. 그리고 지나간 일이고, 알았죠?

그리고 그런 거 자꾸 신경 쓰면 은혜를 베풀어준 부모를 미워하면 자식이, 내 자식이 과보를 받아. 엄마가 부모를 배은망덕하게 대하면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또 나중에 나를 배은망덕하게 돼. 그래서 내가 짓고 또 내가 받아. 그러니 내가 부모를 내 뜻대로 안되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미워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그래서 나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그 과보가 또한 내 자식한테 가는 거는 올바른 부모의 자세는 아니다.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잘해주라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아직 극복이 안 되면 만나는 걸 조금 피해도 괜찮아. 내가 지금 애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걸 극복을 하면 이치로 보면 극복이 되는데, 현실에서는 꼬라지 보면 극복이 안되는 게 현실이잖아. 그럴 때는 아기 낳을 때까지 상황을 잠깐 피해서, 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그리고 감사기도를 하면 또 봐도 좀 덜하고, 감사기도하면서 보면 아직 극복이 잘 안 되면 보는 횟수를 줄이는 쪽으로, 왜냐하면 지금은 아이를 위한 엄마의 자세, 태교가 가장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