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215회] 저는 크리스천 부디스트입니다.

Buddhastudy 2016. 9. 6. 19:53

 

 

자기가 모르는 소리에요. 부모가 자식한테 많이 베풀어줬잖아. 그죠? 그러면 자식이 그 은혜를 알아서 은혜를 갚을까? 예를 들어서 애를 둘이 키우는데, 큰 아들은 몸 팔아서 대학을 보내서 도시에 가서 시장이 되었든 군수가 되었든 뭐가 되었다. 작은 아들은 중학교 보내서 집에서 농사짓고 아버지하고 같이 살았다. 안 그러면 공장에 가서 일했다. 그러면 나중에 누가 부모한테 더 관심을 가지고 봉양할까? 어느 쪽이에요? ? 아니 같이 안 살아도, 첫 번 째일까? 두 번 째일까? 그래. 우리가 그냥 계산하면 첫 아들이 해야 될 거 같은데 안 그래. 왜 두 번째 아들이냐?

 

첫 아들은 그렇게 해서 출세를 소위 했잖아. 그죠? 그러면 우선 결혼상대자가 어떤 여자겠어요? 시골여자일까? 도시부잣집 딸이거나 공부한 여자일까? 공부한 여자거나 부잣집 딸이거나 그러겠죠. 그러면 당연히 그 둘의 수준에서 생활을 할 거 아니오. 그러면 그 여자 입장에서 볼 때는 남편의 집안이 좋은 집안이요? 안 좋은 집안이오? 안 좋은 집안이지.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 비위도 맞추고, 처갓집 비위도 맞추고, 그러면 그 생활에 친구들하고 맞추고 이렇게 살려면 부모 돌볼 여가가 없어요. 불효라서 그런 거 아니오.

 

그런데 중학교 나와서 공장에 다니고 일하거나 이러면, 그 여자도 고만하게 만나고, 생활도 친구들도 고만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고생을 해 봤기 때문에, 고생이 어떤 건지 아니까 부모한테 관심을 갖는 거요. 그래서 논 팔아서 공부시키면 불효가 된다는 거요.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한테 그걸 무슨 장사꾼처럼 투자를 해서 나중에 돌려받으려면 많이 투자하는 게 이익이가? 적게 투자하는 게 이익이가? 적게 투자하는 게 이익에 효율이 훨씬 높아요. 많이 투자하면 거의 날립니다. 이거는. 그러니까 그거를 손익을 계산을 안해야 되는 거요.

 

그러면 형제지간에도 마찬가지에요. 자기가 맏이든 자기가 막내든 관계없이, 자기가 벌어서 형제들을 도와줬어. 그러면 형제들 속에 자기가 형편이 나은 축에 들어가요? 못한 축에 들어가요? 나은 축에 들어가지. 그러면 자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운 못한 축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를 돕겠어? 그리고 도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데 늘 도움만 받았는데, 도움 주는 것도 줄 줄 아는 사람이 주지, 맨날 받은 사람은 못 줘요. 그러니까 그거는 이치적으로 안 맞는 거요. 나 혼자 생각해. "너는 논 팔아서 공부시켰으니까 너는 부모한테 잘해라." 그건 내 생각이지 실지로는 그렇게 안 되고, 내가 어릴 때부터 형제를 늘 돌봤으면 죽을 때까지 돌보게 되는 거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부모든 형제든 늘 돈을 얻어 타서 쓰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얻어 타 쓰는 거요. 형제지간에 보면 그렇게 안 보여요? ? 보여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스무 살 넘어서 애를 자꾸 돌보면 서른 살에도 돌봐야 되고, 마흔 살에도 돌봐야 되고, 내 나이가 80이 되어도 60된 아들을 먹여 살려야 되요. 그럴 때 아들이 자립했으면 좋겠다하지만, 옆에 형제가 "엄마, 엄마가 딱 끊어봐라. 그럼 오빠가 자립하지." 그러면 오빠가 자립 못해서 엄마가 못 끊을까? 엄마가 못 끓을까? 엄마가 못 끊어. 주는 것도 이게 습관이 되면 못 끊어. 받는 것도 습관이 되면 못 끊고, 이건 다 중독성이에요. 인생이 이게 까르마라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자기가 어릴 때부터 줬으면 계속 줘야 돼. 그런데 주는 자가 주인이오? 받는 자가 주인이오? 주는 자가 주인이니까 자기는 형제 중에 막내라도 그냥 집에서 그냥 형제 사이에 막내지. 정신적으로는 자기가 주인이오. 자기가 언니고 자기가 누나요. 그런 자세로 살면 돼 자기가 어려웠을 때 그걸 달라는 거는 맞지가 않아요.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예를 들면, 누나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서 남동생을 대학 보내고 고시 공부한다고 공장에 다니면서 파출부 하면서 애를 판검사를 만들었다 이 말이오. 그러면 그게 보상이 받아질까? 안 받아질까? 절대로 안 받아져요. 그러니까 "아이고, 내가 그래도 고생해서 동생하나는 잘 살도록 됐다." 이거로 끝나야지. 그러니까 결혼을 해서 반드시 판사든 의사가 되면 상대 여자가 어때요? 배운 여자거나 부잣집 여자 아니겠어요? 그러면 누나는 그 집의 파출부밖에 안 돼요. 누나라 하더라도 대우가 파출부밖에 안 된다니까.

 

그걸 누나 때문에 내가 성공했다고 알아서 이렇게 마님으로 대우할 사람은 이치적으로 백 명에 한명도 안 돼요. 그게 예외로 어쩌다가 하나 있는 거지, 거의 다 그거는 안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 생각만 하는 거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이치가 그런 거요. 그러니까 자기는 지금 엉뚱한 생각하고 있는 거요. 언니가 잘못하거나 오빠가 잘못한 거 아니라니까.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 이 말이오. 자기 생각이 인생의 이치를 모른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애 키울 때 언니하고 누나하고 이렇게 늘, 언니들하고 오빠하고 돌봐줬더니 나를 안 돌봐준다. 이런 경험했으면 자기는 자기아이한테 절대로 안 돌봐줘야 되는 거요. 아시겠어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쫓아내버려야 되요. 절대로 도와주지 말고. 그거를 안다면, 내가 도움을 받고 싶다면 아이한테. 그렇게 해야 나중에 부모를 돕는 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매몰차게 쫓아내라. 이게 아니라, 자립을 하도록. 뭐 궁하고 뭐라고 해도 오면 네 알아서 살아라. 나도 힘들다.” 이렇게 해서 나쁘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집착하지 말아야 된다는 거요. 그런데 자기가 똑 같은 일, 자기 누나하고 언니한테도 했는데 자식한테는 더 할까? 안할까? 더 하겠지. 조짐이 저러니까 자기는 죽을 때 까지, 젊어서는 오빠 돌본다고 인생 보내고, 지금부터는 자식 돌본다고 인생 보내고, 애들 장가가면 손주 돌본다고 인생 보내고, 그렇게 죽을 거요. 내가 지금 안 봐도, 사주 딱 보면 나오는 거요.

 

그게 자기 운명이에요. 그러면 가지가 만든 거지 하나님이 준 것도 아니고, 생년월시 때문에 나오는 거 아니오. 이미 말하는 거 딱 보면 ,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겠다. 어떤 꼬라지로 죽겠다가 다 나오는 거요. 그걸 미리 딱 알면, 여기서 방향을 바꿔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그냥 좋아서 했지,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주고, 하고 싶으면 했지, 그래서 뭘 와라. 이 생각을 끊어야 돼. 그게 바로 예수님이 말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몰래 도와줘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자기 손이 하는 게, 손이 발을 씻겨주고, ", 내가 너 씻겨 줬으니까 너 내공 알겠지?" 발은 손 들어다 줬으니까 너는 내 공 알겠지? 너 나한테 뭣 좀 해라.” 이런 생각해요? 안 해요? 한 몸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 안 해.

 

다만 손이 할 역할은 발을 씻기는 거고, 발이 할 역할은 몸을 들고 다니는 거뿐이지, 내가 그냥 할 뿐이지, 거기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갖게 되면 그것이 바로 섭섭해지고 나중에 원망이 되고 미움이 되고 고통이 된다. 그걸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라고 그러고,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무주상보시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거는 무기명으로 어디 갖다놓고 몰래 밤에 돈 갖다 놔놓고 안 한 것처럼 하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요. 그렇게 몰래 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뭐 했다하는 생색을 내지마라. 생색을 안내도 마음속에서 기대도 하지 마라 이 말이오. 그러면 반드시 섭섭한 과보가 온다. 그런 얘기에요.

 

바로 언니 오빠한테 섭섭한 거 보니까, 자기 나이 들면 자기 자식 낳아 키운 거에 대해서 엄청나게 후회하고 이렇게 되는 거요.

이걸 불교용어로 뭐라고 그런다? 자업자득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가 그렇게 인연을 지어서 자기가 그런 과보를 받는 거요. 누가 그렇게, 하느님이 나를 미워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죄가 있어서 여기까지 따라와서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태어난 월시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오. 생년월시 때문에 땡기면 요즘 제왕절개로 날짜 맞춰 해버리면 되잖아. 사주 같다고 운명이 똑같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 까르마라고 그래. 습관. 습관이 그렇게 들면 그렇게 인생을 사는 거요. 그래서 업장을 녹인다. 습관을 바꾼다. 이 말이오. 사고의 습관, 행동의 습관, 말의 습관, 화내고 짜증내는 거 다 습관이란 말이오.

 

그래서 습관에서 그걸 다 바꾸라는 게 아니라, 습관화 되어있는 것 중에 나한테 불이익이 오는 건, 손해가 오는 것, 나한테 고통이 오는 건 바꾸면 좋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걸 뭐, 자기가 지어놓고 남을 자꾸 원망하니까 괴로움이 더 커지죠. 절한다고 수행이고, 참선한다고 수행이고, 염불한다고 수행이고, 아니에요. 이치를 알아서 그거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수행이오. 그 수단으로 그 방법 중에 하나로, 절하는 방법도 있고, 참선하는 방법도 있을 뿐이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오. . 다음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