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216회] 부정한 이익집단 사이에서 갈등

Buddhastudy 2016. 9. 7. 19:36



우리 대화는 천주교든 기독교든 상관이 없잖아. 그죠?

자기는 부인 말이 맞습니다. 한 눈 감고 사세요. 수준이, 바르게 살 수준이 안 된다. 자기는. 바르게 살 수준이 안 돼. 이게 무슨 말이냐? 바르게 살아야 되느냐? 바르지 않게 살아야 되느냐? 이런 생각 한다는 것 자체는 바르게 살 수준이 안 된다. 이 얘기요. 정말 바르게 사는 사람은 바르게 살지 않는 거 하고 이거 하고 둘 중에 어느 거 할까? 이런 생각 안 해요. 그냥 바르게 살 뿐이지. 제 말 이해하셨어요?

 

저 사람이야 뭐, 욕심내고 살든 저 사람이야 뭘 먹고 살든, 그건 그 사람의 문제지. 나 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요. 그러니까 내가 술을 안 먹는데, 내가 담배를 안 피우는데, 마약을 안 하는데 저 사람은 계속 마약하고 담배 한다. 같이 있는데. 나도 담배를 해야 되나? 안해야 되나? 마약을 해야 되나? 안해야 되나? 이 수준이란 말이오. 자기가.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담배 피우는 거는 그 사람 문제고, 그 사람이 마약 하는 건 그 사람 문제고, 그 사람이 술 먹는 거는 그 사람 문제고. 그거야 그 사람이 먹든 말든 난 안 먹으면 되는 거요. 그런데 왜 거기서 왜 스트레스를 받아? 스트레스를 받아야 되는 거는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렇게 생각하니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두 번째 또, 내가 안 먹으면 되지 그 사람 먹는 거 갖고 담배 피지 마라. 마약 하지마라.” 자꾸 이렇게 하니까, 그 사람 내 말 안 들을 거 아니오. 그러니까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말을 왜 들어. 그 사람이 내 말 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 그 사람은 그 사람 인생사는 건데. 그러니까 내 말 안 듣는다고 화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 따라갈 일도 아니고.

 

그러나 첫째 너희야 먹든지 말든지 난 안 피우면 된다. 너희야 마약을 하든지 말든지 난 안한다.” 이게 첫째고. 그거 갖고 번뇌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 그래서 내가 수준이 안 된다. 그러니까 마누라가 한 눈 감고 살라고 한 얘기는. 그러니까 자기가 정말 똑 바르면 그냥 그 사람이야 어떻든 난 첫째 바르게 산다.

 

두 번째 그걸 보고 화가 나서가 아니라, “저거 마약하면 건강에 안 좋은데 쟤들이 저렇다.” 그러니까 난 계속 얘기 하는 거요. 건강에 안 좋다. 그러나 듣고 안 듣고는 누가 하는 거다? 그 사람들이 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거는 내 말을 들어라 하면 내가 독재란 말이오. 그럼 그 사람들이 내 독재 하는 거 싫어하지. 그러나 나는 조언을 하는 거요. 그거 안 좋다. 하지마라. 하는 거는 뭐, 하고 안하고는 그 사람들 문제니까. 그런데 경찰이 와서 마약 하는 놈 없냐? 이러면 내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되요. 마약 하는 거 고발하면 저 놈들이 난리가 날 거고, 고발 안하면 계속 피울 거고. 그럴 때 선택은 두 가지 에요.

 

그거 뭐, 고발해서 처벌 할 거까지 뭐 있나? 내가 계속 권유해서 그만두도록 하지. 이런 길이 하나 있고, 저건 고발을 해서라도 일시적으로 나하고 관계가 나쁘더라도 저 인간들 저거 고쳐야 저 인간들 건강을 바로 잡는다. 고발해서 그 놈들이 뭐, 나한테 해코지를 하고 난리를 피워도 내가 그 사람들을 미워하면 안 돼. ? 내가 그런 수모를 격고라도 너희들 좀 건강해야 된다. 이게 자비심이에요. 그러니까 미워서 보복을 하는 거로 고발을 하면 안 되고. 저 사람들 위해서 잡아다가 더 큰 사건으로 감옥에 갈 걸 걱정이 되어서, 저것 좀 미리 막아줘야 되겠다. 이제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돼. 자기가 천주교 신자니까. 신자니까 신자라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걸 막아야 되는 거요.

 

이런 관점에서 서면 자기가 길이 여러 개 있죠. 첫째 자기가 꼴 보기 싫으면 동대표를 사표내면 되고 첫째. 그다음에 두 번째는 자기는 그 사람들이야 해 먹든지 말든지 난 안 해먹고 그냥 계속 가면 되고. 세 번째 그게 좋지 않다면 , 그렇게 하지 맙시다.” 라고 얘기를 하면 되고. 저건 정말 사회 정의를 위해서 안 되겠다 하면 경찰에다 고발을 하면 되고. 그때 미워서 보복을 하면 안 된다. 보복을 하면 예수님의 가르침하고 어긋나는 거요.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은 사람을 보고 뭐란다? "주여, 저 들을 용서하소서." 이렇게 얘기했잖아. 그러니까 전혀 다른 종교요.

 

그러니까 기독교 신자가 나보고 당신 말이야. 아무리 좋은 일해도 하느님 안 믿으면 지옥 가.” 자기를 해친 사람도 용서해주는 하느님인데, 내가 절에 있다고 예수님이 징벌할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그건 크리스트교를 모르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천주교신자니까 신앙에 바르게 살라고 하니까, 그 입장에서 자기가 바르게 사는 거요. 그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자기는 바르게 사는 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르게 사는 거로 인도를 해줘야 돼. 포기하면 안 돼. 그러나 그걸 인도하는 방식은 극약 처방을 내려서 욕 좀 얻어먹으면서 하려면 부정을 터트려야 되고.

 

그러나 시간을 길게 가지고 인간적인 우애를 가져가면서도 설득하려면 꾸준히 설득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때 그걸 내 말을 쉽게 들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거기서 재미를 봤는데 그걸 어떻게 그만 두겠어? 노름하는 사람보고 그만하라면 그만 두겠어? 마약 하는 사람보고 몸에 해롭다고 그만 하라면 그만두겠어? 집에서 부인이 남편보고 담배 그만 피워라. 건강 당신 안 좋다 해도 듣나? 안 듣나? 안 듣는데 자기가 남 보고 그걸 그만 두란다고 그 사람이 그만 두겠어?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스트레스 받을 게 뭐가 있어?

 

첫째 정리 하면, 자기는 자기가 바르게 사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이럴까? 저럴까? 하는 거는. 흔들릴 이유가 없다. 두 번째 그 사람들에 대해서 지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는, 내 말 안 듣는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는 자기가 독선적인 성격이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자비롭지가 못하다. 그러니까 자비롭다는 거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니에요. 고발하는 것도 뭐다? 자비로운 거요. 고발하면 내가 가만있으면 되는데, 고발해서 일을 크게 벌이면 온갖 복잡한 문제를 받아야 되나? 안 받아야 되나? 받아야지. 비난과 온갖 걸 다 받아야지. “그래. 그 사람들 구제하려면 그 정도는 내가 희생을 해야지 뭐.” 그런 마음을 딱 갖고 있는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어?

 

그런데 그거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그때 처벌받을 때 다 도망갔나? 안 갔나? 다 도망가고, 도대체 자기는 천주교 다니면서 성경을 읽나? 안 읽나? 그 유명한 베드로마저도 하루저녁에 몇 번 부정했다? 3번이나 모른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그건 그분들이 예수의 십대 제자도 그러는데, 주민들이 당연히 자기한테 불이익이 오면 도망을 가지. 자기가 십자가를 매야지.

 

오늘 천주교 신자라고 밝혔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하하하. 그래서 여러분들이 불교신자냐? 천주교 신자냐? 제발 이런 거 갖고 논쟁하지 말고, 천주교신자라면 천주교신자답게, 불교신자라면 좀 더 불교인답게, 크리스천은 크리스천답게 하는 게 필요해요. 종교 논쟁이 핵심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속에 길이 다 있다. 이런 얘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