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227회] 모든 것에 만족을 못합니다.

Buddhastudy 2016. 10. 13. 19:34


  

서른두 살 되는 미혼 청년입니다.

저는 부정적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자란 환경이 평생의 내 운명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은 못 고친다.

천성이 변하는 거보니 죽을 때가 다 되었구나.

작심 3.

 

이런 얘기가 있는 거는 한번 형성된 이 업식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어릴 때 형성된 거는 천성과 거의 같다. 그러니까 바꾸기 어렵다. 이런 얘기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스님이 3살 때까지 자아가 형성될, 소위 천성이라고 하는 게 형성될 시기이기 때문에 애를 안 낳으면 몰라도 낳거든, 그 심리의 근저가 긍정적이 되도록, 안정적이 되도록 해주는 게 좋지 않으냐. 부모 된 입장에서.

 

그러니 엄마가 키워라. 조건이. 남의 손에 키우는 거 보다 엄마가 키우는 게 낫다. 반드시는 아니에요. 엄마가 속된말로 심리적 불안, 지랄발광을 하면 더 나빠져요. 엄마가 포악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아이는 심리상태가 굉장히 잘못 형성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필요조건은 엄마가 키울 것. 필요충분조건이 되려면 엄마가 보디사트바, 보살 같은 마음, 엄마 같은 마음을 가질 것. 이래서 제가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왜냐하면 그 스물 몇 살의 엄마가, 서른 살의 엄마가 자기 하나 컨트롤하기도 어려운데, 지금 애까지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보니까, 대를 이어서 까르마가 계속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개인 인생이 윤회하는 것만 아니라, 자자손손이 윤회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수행에 뜻을 둔다면, ‘내 대에 끊어야 되겠다.’ ‘내가 이 업을 받은 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시 씨앗을 뿌려서 계속 되게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 이게 업장소멸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자기가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성장을 했다면 좋았지, 앞에 얘기처럼. 그런데 현재 자기는 이미 그건 지났어? 안 지났어? 지났잖아. 그걸 갖고 문제 삼아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러면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러면 고아원에서는 자란 거 보다는 그래도 할머니 손에서 자란 것이 낫나? 안 낫나? 그러니까 그걸 엄마 손에서 못자란 것만 생각하지 말고, 더 나쁜 거에 비해서는 할머니 손에라도 자란 건, 엄마 다음엔 누가 제일 낫다? 할머니가 제일 나으니까,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된 거다. 이 얘기요.

 

다른 사람들은 차악이 되고, 최악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자기는 최선은 못 되도 차선은 된다. 이런 긍정성을 가져야 돼. 그리고 할머니가 그래도 비교적 괜찮았기 때문에 자기가 이 정도라도 된 거요. 할머니마저 굉장히 어려웠다면, 자기가 지금 이런 건강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 어릴 때는 그 영향을 받는 존재지만, 내가 이제 나이 들고 불법만나 돌아보니까,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다. 인물도 보니 괜찮은데. 아직 나이도 젊고. 체격도 그 정도면 되었고, 대학도 나왔고. 큰 회사에도 취직했다니까 대학 나왔겠지.

 

여러모로 보나 괜찮아. 자기가 기대하는 만큼 자기가 안 될 뿐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괜찮아. 그런데 자기기대가 자꾸 크다보니까 자기가 자기한테 만족을 못하는 게 지금 제일 큰 병이야. 그래서 어쩌면 자기를 파멸로 이끌지도 몰라. 그러니까 옛날 어릴 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돼. 그래서 어머니에게 먼저 감사를 해야 돼. 엄마가 낳아줬으니까 누구 손에서 자랐든 어쨌든 지금 있는 거 아니오? 그죠?

 

그리고 엄마가 애기를 두고 돌아갔어요? 헤어지셨어요? 아버지하고?

그러면 엄마가 어린애를 두고 따로 살 때는 어쨌든 자기 나름대로 힘든 일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그러니까. 어릴 때 그걸 이해 못해서 원망을 했는데, 나이 들어서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까 이해되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 내가 어릴 때는 이해를 못해서 미워했는데, 원망을 했는데,” 커서 보니까 어때요? “, 엄마도 참 힘들었겠다.” 이제 이렇게 엄마를 힘들었겠다.’ 하고 이해하면 내 까르마가 녹는 거요. 업식이 녹는다. 맺힌 한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이 얘기요.

 

그렇죠. 어머니가 그 힘든 조건에서 자기를 가졌으면 엄마 밑에서는 자랐지만, 그 성질을 또 받았지만. 그렇지. 그렇게 자기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그렇게 하면 녹는데, 아직도 그러나 무의식 세계에서는 쉬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이해는 되지만, 또 불현 듯 섭섭함이 생기니까, 그래서 긍정적으로 보고, 이미 지나간 건 놓고, 미래로 자기가 나아가야 되는데, 어릴 때 성장배경이 지금 자기에게 장애가 돼. 외부조건이 장애가 되는 게 아니고, 회사가 장애가 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장애가 아니고, 어릴 때 자기의 성장배경이 자기 속에서 이렇게 상처가 남아서 이게 자꾸 외부 환경을 탓하는 쪽으로 해서 지금 앞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을 수가 있다.

 

그러니 회사 한번 때려치우고 이렇게 나와 보니까, 자기가 문제다 하는 걸 자각했잖아. 그러면 이게 굉장히 좋은 거요. 결혼을 해도 이 경험을 못하면 마누라가 문제다.’ 이렇게 되는데, 이런 경험을 하니까 마누라가 문제가 아니라 내 까르마, 내 업식이 항상 문제를 삼는다.’ 이것만 자각해도 어때요? 결혼 생활의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되느냐? 만 배까지 안 해도 되니까, 절을 하면서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어머니 감사합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다음에 이 모든 세상, 일체중생에게 감사합니다. 저를 여기까지 이렇게 번듯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세상에 대해서 감사 기도를 해야 돼. 자기 사실 굉장히 감사, 그러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회사에서도 불만이고, 지금 또 불만이고, 그러면 죽을 때까지 불만만 하다 죽어야 돼. 그러면 점점점점 자기는 잘한다고 잘하는 쪽으로 가는데, 결과는 폐인 되는 쪽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감사한 줄을 알아야 된다는 거야. 3가지.

 

첫째는 엄마한테 뭐라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한테는 뭐라고? 할머니 아버지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은 나를? “여기까지 오도록 갖가지 은혜를 주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열심히 하면 심리적인 그런 여러 가지 상처들이 치유되는데 도움이 되요.

 

. 만족하지 못하는 거는 아직 불만이라는 건데, 감사할 줄 몰라서 그래요. 자기 이 정도면 굉장히 잘 된 거요. 자기 원하는 만큼 안 되어서 그렇지. 어떤 사람이 돈을 백만 원을 빚지고 갚으려했는데 갚을 능력이 없어. 그러니까 상대편이 와서 아이고, 네 사정이 그러니까 10만원만 갚아라. 나머지 90만원 봐줄게.” 그러면 고마워해야 되나? 억울해야 되나? 그런데 이걸 알면, 지은 인연을 알면 이게 굉장히 고마워야 할 일인데, 자기가 백만 원 빌린 줄을 모르니까 10만원 내라는 그것만 가지고 지금 성질을 내는 거요. “왜 내 돈 10만원 달라 그러냐?” 대부분 이래요.

 

그래서 자기 지은 인연으로 보면 자기는 굉장히 은혜를 입은 축에 들어간다. 알았어요?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내어야 되요. 안 그러면 10만원 안내려다가 성질내다가 결국 100만원 다 내어놔야 된다. 덤터기 쓰게 된다, 그러니까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다녀요. 감사할 줄 알면 그냥 다녀야 돼. 또 시도를 하면 자꾸 자기 욕심 때문에 자꾸 다른 길로 가요. 앞으로 블루칼라니, 화이트칼라니 이런 거 별로 중요 안 해. 아시겠어요? 자꾸 이렇게 하지 말고, 우선 심리적인 안정이 된 뒤에 불만에 의해서가 아니고, 이게 이전을 해야 돼.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있는 다니는 기반을 버리지 말고 두고, 주말에 다른 시간에 파트타임으로 내가 가고 싶은 거를 해서.

 

괜찮아. 그런 거는. 다 할 수가 없잖아. 그게 꼭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좋은 거 아니야. 그래서 그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아. 그래서 인생지사 뭐라고 한다? 새옹지마. 그러니까 괜찮아. 그런데 마찬가지야. 스님이 이렇게 활동하려면 잠 시간도 줄여야 되고, 먹는 시간도 줄여야 되고, 친구 만나는 것도 못 만나고 그래. 그래서 가까이 있던 친구나 스님들은 저 자식이 요새 좀 유명해 지더니.”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어. ? 시간을 못 내니까.

 

중이라는 건 원래 이미지가 한가한 거 아니오. 그지? 안 그래? 한가한 이미지잖아. 아무 할 일 없이 팔장끼고 이렇게 턱, 이렇게 다니는 게 중인데, 이게 그 시간 잠시 전화도 못하나?” 이러니까, 다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한단 말이야. 그래도 과보를 받는다. 그러잖아. 그런 과보를 받으면서 가족에 대한 섭섭함,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이런 과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요. , 사람이 무한히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게 좋으면 저게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