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9화 -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상식

Buddhastudy 2019. 5. 21. 20:00


사담속 코너 전우용의 픽입니다.

동요 하나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동요 병원놀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어떡할까요/

 

유치원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의 첫 구절입니다.

이 구절 다음에 뭐가 나오죠?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유치원 아이들도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라는 걸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 없죠.

현대인의 특징은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걸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게 된 시절이 얼마나 될까요?

저만해도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삶을 인생의 3분의 1 가까이를 겪었습니다.

전우용의 픽은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는 상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상식은 언제부터?>

우리 말 병, 인생을 괴롭히는 굉장히 중요한 적입니다.

사람들이 항상 그렇죠. 가장 중요한 게 뭐냐 물었을 때 건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병이 나다라고 하는 것은 몸 안에 있던 어떤 병의 요인이 뭔가 자신이 잘못해서, 아니면 어떤 조건에서 자라나는 것을 병이 나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병이 들다는 몸 밖에서 돌아다니는 병을 옮기는 귀신이 사람 몸에 파고들었을 때 생기는 병을 병이 든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병은 어떤 게 나는 것이고, 어떤 게 드는 것이고, 어떤 게 걸리는 것인지 옛날에는 구별해서 썼구요, 그에 따라서 병을 퇴치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 손은 약손, 또는 할머니 손은 약속, 이런 거를 하듯이 부모가 배를 쓰다듬어서 치료하기도 했구요, 이웃집 노인에게 물어서 치료법을 알기도 했구요, 담장 밑에 자생하는 약초들을 뜯어서 그거를 먹거나 빻아 붙이거나 하면서 치료법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안 나으면 어떤 때에는 무당과 판수를 불러서 점을 치거나 굿을 했구요, 의사를 초청해서 약을 쓰기도 했습니다.

병원만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의사가 의술이 모든 치료법 중에서 독보적인 우의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옛날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좀 독특한 현상인데요, 우리 학문에 양화학, 양물리학 이런 거 없습니다.

그런데 의학만 오직 양의학과 한의학이라고 하는 구분을 씁니다.

 

우리가 보통 양의학이라고 하는 학문 책에는 서양에서 기원한 의학이다. 이런 뜻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서양의 중세 의학이나 서양의 고대 의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기반으로 하되,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이 전세계로 침략하거나 활동영역을 팽창하면서 전 세계의 질병, 의학, 약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유럽으로 다시 가져가서 종합한 끝에 만들어낸 근대 의학이죠.

 

그래서 다른 치료법들에 비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게 그리 오랜 옛날의 일이 아닙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서 서양 근대 의학의 치료효과가 두드러지게 높아지기 시작했던 거죠.

뭐 이 땅에 이른바 서양식 병원이 만들어진 것이 일본군에 의해서 부산에 1879, 또는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광혜원, 이때 만들어지는 합니다마는 확산되는 속도는 상당히 더뎠습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이후에 서양근대의학의 의사양성, 또는 병원설립 이런 것들이 그때를 전후해서 조금씩 늘어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일본은 일본 본국 내에서는 서양근대의학을 유일한 의학으로 그렇게 인정함으로써 일본 내에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아시아적 전통의학을 완전히 소멸시켰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시아적 전통의학과 서양 근대 의학이 병존하도록 독특한 식민지 의료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서양 근대의학의 의술이야말로 제국주의가 식민지 주민에게 주는 일종의 혜택이라고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그러니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제국주의가 베푸는 문명적 해택을 입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 수 있도록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그런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었던 거죠.

 

어느 정도였냐 하면요, 러일전쟁 이후에 전쟁터에서 쓰다가 남은 약들을 모아서 우리나라 전국 주요도시에 자혜의원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주로 외과나 아니면 급한 부상자들 치료하는데, 이 병원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냐하면요, 한국인 환자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나면 일본 왕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도록 했습니다.

 

식민지시대의 의료라고 하는 것은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한국인들이죠. 한국인들에게 제국주의 문명의 은혜를 베푸는 일이다 라는 그런 인식을 갖도록 의사양성을 최소화했구요, 또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아주 좁혀놨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의원이 있었어요.

지금은 총독부의원이 쓰던 건물은 서울대병원 안에 대한의원건물로 남아있죠.

 

그런데 이 총독부의원은 돈 많은 환자들은 마음대로 진료도 받고 입원할 수도 있게 해줬습니다마는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서도 별도의 시설을 운영했어요.

그것을 시료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보통 정규의사들이 진료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 요즘으로 치면 인턴이나 레지던트에 해당하는 수련의들이 나와서 가난한 환자들을 진료합니다. 무상으로 진료를 해줘요.

 

그런데 여기서 진료를 받으려고 해도 조건이 있었습니다.

수술을 만약에 받을 필요가 있는 급한 환자라면 각서를 하나 써야 했어요.

수술 받다 죽을 경우에 시체는 해부용으로 기부하겠습니다. 라고 각서를 써야 가장 낮은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병원 문턱이 너무 높아서 그렇게 해서 안 된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종교에 의존하거나 또는 민간요법에 의존하거나 이런 일들을 너무 오랫동안 겪어왔었죠.

 

병원 문턱이 낮아진 것이 의료보험제도 덕분이었습니다.

1977년에 상시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 노동자, 뒤이어서 공무원, 군인, 교사들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보게 되었구요,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이 의료보험이 전국민이 모두 가입하고, 의료보험증 하나로 어느 병원이나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시대가 열렸죠.

그리고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이제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아니 많은 나라에서 부러워하는 그런 제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건강보험제도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그동안 있어왔습니다.

값싸게 내고 싼 진료만 받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보험으로 정말 큰 병에 걸리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기치료에나 쓴다. 뭐 등등의 비판들이 있어 왔죠.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이른바 대외적으로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제 3년차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동안 MRI라든가 의료기 사용문제에 있어, 또는 몇몇 중증질환 치료에서 배제되어 왔던 항목들이 급여항목으로 들어오고, 건강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 대해서 일각에서는 비판의 소리가 있고, 반대 여론이 있습니다.

의료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병들고 죽는 일이죠. 병드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3천 년 전에 부처께서는 생로병사의 사고를 어떻게든 면해주겠다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집을 나서서 수도의 길을 택했겠습니까.

 

이제 국가가 생로병사의 사고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 이것이 현대 국가의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과제일 겁니다.

그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이제 현재의 건강보험제도가 가져왔던 이른바 급여 대상을 확대하고, 단지 의료보험 체제를 넘어서서 전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시대로 나아가는 첫발을 디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질병을 책임질 수 있는,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를 원한다면, 아니 원하기 위해서는 국민들도 그에 맞는 준비,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 어렵게 만들어 낸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 이거 다시 잃지 않도록 모두 각성하고 노력해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우용의 픽,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