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216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10: 람세스 2세

고전 영화 매니아분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고전 헐리웃 영화의 거장. 세실B데빌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이었던 1933년에 영화 ‘클레오파트라’로 미국 스펙터클 제작감독으로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0년대 후반과 1950년에 들어서는 ‘삼손과 데릴라’, ‘지상 최대의 쇼’로 대형 영화를 선보였는데 1956년에는 당시 인기절정의 모델출신 배우, 벤허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찰톤 헤스톤을 내세워 영화 ‘십계’를 제작하기도 했죠. 하지만, 십계의 주인공 모세를 견제하던 또 다른 명배우가 등장했는데 바로 같은 해에 영화 ‘왕과 나’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율 브리너’가 람세스 2세를 맡아 연기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모세를 시기하고 괴롭히는 역할로 그의 눈빛이 스크린을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9: 투탕카멘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 시대.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의 아들로 태어난 아멘호테프 4세는 기원전 1350년부터 재위를 시작합니다. 출생명 아멘호테프는 ‘아몬신이 만족한다’라는 뜻을 지녔지만 그는 재위 5년에 이크나톤으로 개명을 하게 되죠. 이크나톤은 “아톤의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당시까지 아몬신을 숭배하고 있었으며 신관들은 각종 전쟁에서 이겨온 파라오들의 공적을 모두 아몬신 덕이라 하며 전리품들을 다수 챙겼었죠. 점점 신관들의 세력이 왕권을 억제할 정도로 커지게 되자 이크나톤은 새로운 파라오로 집권하자마자 신관들의 힘을 꺽으며 아몬신과 함께 모든 신들의 숭배를 금했습니다. 그리고는 아톤신만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세계 최초의 일신교를 도입하면서 아톤신을 위한 새로운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8: 룩소르신전, 아톤신

고대 이집트는 혼란의 시기였던 제2중간기 시절 힉소스인들에게 약 150년간의 지배를 받다가 제18왕조 제1대 파라오인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인들을 몰아내고 이집트 전역을 되찾게 되며 신왕국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후로, 3대왕 투트모세 1세, 6대왕 투트모세 3세가 뒤를 이어 팔레스타인, 시리아 지역까지 점령하게 되었으며 당시 최대강국인 ‘미타닌 제국’의 영토까지 노리며 이집트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넓혀나가게 되죠. 투트모세 3세는 원정군을 17회나 서아시아로 보내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가 파라오를 이어가게 되면서 이집트의 번영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투트모세 3세의 아들이었던 아멘호테프 2세는 기원전 1427년에 18세의 파라오가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7 : 하트셉수트 , 투트모세 3세

고대 이집트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함께 최초의 고대 문명을 탄생시켰으며, 1대 파라오인 메네스가 기원전 3100년 경에 상하 이집트를 통합함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갔습니다. 그후, 1500 간 고왕국, 중왕국 그리고 2번의 중간기를 거쳐 기원전 1570년, 제18왕조의 1대 왕인 아흐모세 1세에 이르러, 신왕국 시대를 열게 됩니다. 제2중간기 시절 150년간 힉소스 인들의 지배를 받았던 이집트인들은 아흐모세 1세와 그의 아들 아멘호테프가 이집트 전역을 되찾으면서 그와 동시에 세력을 확장해 되려, 서아시아의 일부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3대왕인 투트모세 1세 때는 북동쪽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부터 남쪽의 누비아까지 지배 영역을 넓히게 되었죠. 투트모세 1세는 원래 이집트의 장군이었지만 아멘호테프 1세가 후..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6: 왕가의 계곡

https://youtu.be/uO3uZ9Smt8g 이집트 제15왕조는 고대 이집트의 제2중간기에 속하며 이때는 100년 이상 힉소스가 하이집트를 지배하는 시대로 정복군주 힉소스 파라오가 통치했습니다. 이에 맞서, 나일강 하류의 상이집트에서는 이집트인들끼리 제17왕조로 칭하여 제15왕조와 경쟁했으며 제17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카모세는 격렬하게 힉소스인들에게 저항했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죠. 아버지와 형을 모두 전장에서 잃은 동생 아흐모세 1세는 형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고 그는 삶의 목표를 이집트 전역에서 힉소스를 몰아내는데 두었습니다. 결국, 아흐모세 1세는 델타 지역의 힉소스를 물리치는데 성공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의 국경도시인 샤루헨을 파괴하고 해당 주민들까지 몰살..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5: 이집트 신왕국

고대 이집트 역사의 왕조는 크게 3 시기로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왕국 사이에는 혼란한 시대인 중간기가 있었습니다. 고왕국과 중왕국 사이가 제1중간기이며, 중왕국과 신왕국 사이를 제2중간기라고 하죠. 특히, 제2중간기 시기의 이집트 제15왕조는 파라오가 순수 이집트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영상에서 말씀드린 외부에서 나타난 힉소스인들이 혼탁한 이집트 국내 정세를 이용하여 이집트를 공격한 후,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죠. 제15왕조는 기원전 1663년부터 기원전 1555년으로 5명 혹은 6명의 힉소스인 파라오가 이집트를 통치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라오 뿐만 아니라 많은 힉소스인들은 이미 그전부터 요리사, 양조업자, 농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여 그들이 이집트를 지배한..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4: 힉소스의 침입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고대 이집트는 상하 이집트를 거쳐, 1대 파라오인 메네스가 통치하기 시작하여 초반에는 고왕국 시대를 지내게 됩니다. 그중 제 4왕조에서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 왕까지 3대 피라미드가 지금까지도 그 유명세를 떨쳐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피라미드의 건축과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는 상징하는 신전 등을 짓는데는 아무래도 많은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경제력 생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커다란 무덤을 짓기 위해 국가재정을 마구 남발하며, 노동력을 확보했는데 시간이 흘러, 제 5왕조가 될 무렵에는 점점 왕의 묘는 작아지게 됩니다. 이에, 다소 힘이 약해졌던 왕권을 다시 되살리고자 재정을 확보해야 했는데 국가에서 돈이 필요할 때 내세우는 방법은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3: 스핑크스 오이디푸스

기원전 26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왕국 시기의 제4왕조 때는 스네프루왕과 쿠푸왕 등이 있었습니다. 쿠푸왕 때는 대피라미드가 건설되었고 그 외에도 많은 피라미드가 있지만 여러 피라미드 중에서 최종적인 완성형은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전 건축물들과는 달리 안정적인 내부 구조로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피라미드 아래 세워진 스핑크스였죠. 길이 약 70미터, 높이 20m에 달하는 스핑크스는 세상의 빛을 알리는 태양이 뜨는 곳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습니다. 스핑크스가 바로 ‘지평선상의 매’를 의미하는 태양신의 상징이기 때문인데요. 수만 명을 동원해, 돌을 쌓아 만든 피라미드와는 달리 스핑크스는 반대로 돌을 깍아서 만든..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2: 이모텝 & 피라미드

현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 20km 떨어진 나일강 서안에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가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크게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시대로 나눌 수 있는데 멤피스는 고왕국 시절의 수도로 제 6왕조 시대까지 번영했죠.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번화한 곳으로 각 지역에서 여러 가지 물품이 교환되며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멤피스 주변에는 이집트에서 오래된 여러 무덤 유적지가 발견되고는 했는데 멤피스에 거주하던 파라오들은 처음부터 무덤을 피라미드로 짓지는 않았죠. 제1왕조와 제2왕조 시대의 무덤은 벽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으로 지었는데 이 무덤은 ‘마스타바’라고 불렀습니다. 마스타바는 일반적인 분묘와는 달리 사람이 살 수 있는듯한 집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시신을 두는 곳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1: 1대 파라오, 오시리스

... 수메르인이 문명을 형성할 무렵 이집트에서도 문명이 발달되기 시작했습니다. 변덕이 심했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과는 달리 순한 양 같았던 나일강이 있던 이집트는 일찍부터 농사를 짓는데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해마다 때가 되면, 장맛비가 내려 빗물이 강으로 흘러가면서 강이 불어났는데 서서히 줄어들다 많은 물이 빠져나가게 되면 강변에는 비옥한 땅이 남게 되었죠.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좋은 땅을 이용하기 위해 관개농업, 토목공사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여러 촌락은 하나둘 더 큰 공동체가 되어갔습니다. 그들은 소와 함께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며 식량을 자급자족해가는 생활을 이어 나갔는데 기원전 3200년경에는 지역의 구분에 따라 두 가지 큰 연합군인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나뉘었습니다. 상이집트는 남쪽에 ..

[세계사,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4: 신 수메르 시대

지난 메소포타미아 역사 3번째 영상까지의 내용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 때 수메르인들이 다수의 도시 국가를 형성하고 살고 있었지만 서북쪽에서 발흥한 아카드인들에 의해 멸망된 이야기까지 다루었습니다. 기원전 2350년 무렵 강력했던 아카드 제국은 200년간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치하였으며 그 후, 구티족들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고 메소포타미아는 구티족들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죠. 아카드 제국이 수메르인들의 문명을 배우며 자신들의 문화와 융합하려는 시도와는 달리 구티족은 아카드 정복 이후 철처히 문명을 파괴하였는데 그들은 전 영토를 차지하진 못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구티족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북쪽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게 됐죠. 기원전 2100년경 구티족의 세력..

[세계사,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3: 아카드 제국

제국이라는 명칭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고대 로마 제국을 떠올릴 수 있는데요 로마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기원전 8세기부터 로마 왕국이 시작되었고 기원전 6세기 때는 로마 공화국 그리고 기원전 1세기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카이사르의 아들이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로 로마 제국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보다 2500년 정도 더 이전이었던 기원전 24세기에서 23세기까지 ‘사르곤 정복전쟁’을 통해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었던 ‘아카드 제국’이 성립되는데요. 제국과 왕국의 차이점은 왕국은 왕이 국가를 통치하는 개념인 반면 제국은 몇 개 이상의 왕국을 휘하 국가로 거느리는 국가를 의미하는데 다시 말해 제국은 다른 민족까지 통치하는 정치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메르인들..

[세계사,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2: 수메르 초기 왕조

세계사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라고 알려져 있는 수메르인들의 문명은 그 시기에 따라 우바이드기, 우르크기, 젬데트 나스르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난 영상에서 수메르인들은 가장 오래된 인류답게 문자를 발명하여 쐐기 문자를 사용하였고 맥주를 만들어 마신 최초의 사람들이며 달력과 요일의 개념을 정립한 사람들이라고 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수메르들은 점성술을 이용해 여러 가지 점을 보기도 했는데 별 점을 이용하거나 혹은 그 외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점은 금전운, 애정운과 같이 주로 개인의 운명을 중심으로 종종 재미 삼아 보는 경우가 많다면 고대사회의 점성술이 쓰일 때에는 국가의 흥망이나 농사의 성공 여부 등으로 그 중요도가 높았죠. 역사적인 순서의 흐름에 있어서는 약간의 시대별 차이가 있기도..

[세계사,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1: 세계 최초 맥주 & 문자

수렵과 채집생활 중심의 선사시대가 끝나갈 무렵 최초로 문명을 이룩하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민족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역사학자들의 연구로는 지금의 이라크 지방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역에서 수메르인들은 농경민으로 정주하여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문자를 최초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원래 학자들은 수메르에 앞서 바빌로니아 문명을 먼저 발견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 문자를 최초로 여겼는데 유물들을 계속 발굴하다 보니 더 오래된 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바빌로니아가 수메르인들의 쐐기문자를 차용해서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추측으로 연결되었죠. 수메르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약 기원전 5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석기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그리스 역사, 올림피아 제전

2020년에는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2022년에는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데 원래는 올림픽도 하계와 동계가 같은 해 여름과 겨울에 열렸습니다. 그러다, 동계올림픽이 하계보다 인기가 없었고 1년에 두 번하는 것보다는 2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것이 수익과 시청율 확보를 위한 상업적인 이유로 1994년부터는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 따로 개최되었던 거죠. 올림피아 제전은 기원전 776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처음에는 4년 주기가 아닌 8년주기마다 올림픽이 열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올림픽의 기원이 되는 고대 올림피아 제전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종교 의식의 하나로 여러 가지 제전 경기가 많이 열렸는데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제일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대회가 올림피아 제전이라고 합니다. ..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그리스 역사: 스파르타 교육

고대 그리스 역사의 도시국가들인 폴리스 중에서 아테네와 함께 유명세를 떨친 국가로는 빡빡한 교육이 떠오르는 스파르타가 있습니다. 기원전 12세기경, 크레타섬의 맹주였던 고대 그리스 계열의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고 이후 그리스 암흑시대 동안 스파르타 지역에서는 4개의 정착촌이 있었는데요 그 중 두 세력이 동맹을 하여, 다른 2개의 정착촌을 멸망시킨 것으로 스파르타의 기원이 이루어집니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는 특유의 Dual king 제도였으며 본국은 병영국가로서 운영을 하고 상공업은 식민지로부터 공수하는 형태였죠. 전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던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도 할 수 있는 스파르타는 집단 전사문화 뿐만 아니라 여성의 참여 활동도 자유롭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 암흑시대가 끝나고..

[세계사, 4대 문명] 그리스 역사 민주주의, 클레이스테네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실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우리 모두는 누구나 각자 인간으로서의 존중이 정말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죠. 학창 시절에 배울 때, 간단하게 요약해서 아테네는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오늘날에는 사회가 크고 복잡해져서 국민들을 대표하는 사람을 선거로 뽑는 방식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조선시대 때 양반과 노비는 인간 존중의 가치가 판이하게 달랐고 다른 나라에서도 시민혁명이나 독립선언서 같은 여러 사건들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귀족과 평민, 노예는 각기 인간의 가치가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기원전에 존재했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어떻게 해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냐? 정치 제도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도 완벽..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그리스 역사: 솔론의 개혁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미케네 문명 시절 때는 아테네는 존재감이 거의 없던 중소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아테네는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뒤 그리스 암흑시대에도 도시국가로서 망하지 않고 버텨냈으며 이로 인해 고대 아테네인들은 큰 자부심을 지니게 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보다는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듯이 암흑기간동안 수백년을 버텨오던 아테네는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무렵부터 스파르타와 함께 고대 그리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폴리스가 되었죠. 아테네라는 이름을 보다보면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인 정의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떠올릴 수 있는데요. 신화를 들여다보면, 이 지역에 도시가 생길 때 도시를 탐내는 포세이돈과 아테네가 서로서로 자신이 이 도시의 수호신이 되고 싶..

[세계사, 4대 문명] 트로이 전쟁

지난 영상 후반부에 언급되었던 미노스 문명이 있던 시절. 기원전 1600년 무렵부터,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지역에서 힘을 키운 미케네인들은 기원전 1400년 무렵 크레타 섬을 정복하게 됩니다. 미케네인들은 당시 그리스 부근에서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였고 비슷한 시기 현재 터키 지역의 소아시아에 위치했던 또 다른 강력한 도시국가 트로이와 적대 관계였습니다. 특히, 트로이 전쟁에서 미케네 비장의 무기인 트로이 목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역사학자들은 트로이의 존재 여부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쪽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습니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트로이의 발굴을 위해 많은 시간을 공들였지만 이 역시 학계에서는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트로이 전쟁은 현재까지는 그리스 신화 속의 재미있는 이야..

[세계사, 4대 문명] 마야 문명, 미노스 문명

문자로 기록이 가능해진 문명의 출현을 기점으로 문자가 나타난 이전은 선사시대, 이후는 역사시대라고 하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4대 문명이라는 말은 중국의 근대 사상가인 ‘량치차오’가 정의한 개념으로 지난 영상까지 다루었던 이집트 문명을 비롯한 네 지역의 문명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4대문명은 이미 학계에서 여러 비판을 받고 있으며 고대 사회에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문명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많이 있는데요 아즈텍 제국의 전신인 마야문명이라든가 잉카 제국의 전신인 안데스 문명 혹은 아프리카쪽에서도 이집트가 아닌 사하라 이남 지역의 문명 등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문명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고고학계의 연구들과는 다른 예제로 북한에서는 1990년대부터 대동강 문명설을 주장하며 세계 5대 문명이라고..

[세계사, 4대 문명] 황하 문명

현대 사회 국제 뉴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라 할 수 있는데요. 중국은 국토 면적, 경제면에서도 미국과 맞붙으며 국제 이슈에서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장차 중국의 미래는 다른 세계 나라들에게 위협이 될 거라는 가설을 지닌 ‘중국 위협론’과 혹은 중국 경제성장이 지닌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붕괴할 단계를 밟아갈 것이라는 ‘중국 붕괴론’이 있는데요. 10분 세계사에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사라는 주제답게 고대 문명에 대하여 그동안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메소포티미아 문명에 이어 오늘은 황하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로 공부하며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 달달 외운 4대 문명은 사실은 학계에서 수십년 째 많은 비판을..

[세계사,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 길가메쉬

1990년 걸프전 이후로 지금은 여행금지국가가 된 이라크는 그나마 다른 여행금지 국가인 시리아나 리비아, 소말리아에 비해서는 최근 비교적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서 여행금지가 가장 먼저 풀릴 것으로 전망되기도 합니다. 이라크의 여행 금지가 풀리게 된다면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지닐 수 있는데요 기원전 4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수많은 국가들이 생겨났다 없어짐을 반복하며 남겨놓은 유적지와 건축물들의 흔적으로 인해 관광상품의 경쟁력이 높은 국가이기도 합니다. 고대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대부분 현재의 이라크 땅이며 중동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모두 이라크를 지나는데요.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죠. 메소포..

[세계사, 4대 문명~] 인더스 문명 10분완벽정리

2009년 제작되어 2011년에 개봉된 ‘아미르 칸’ 주연의 ‘세 얼간이’라는 인도 영화가 있습니다.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 깊은 고민이 있는데요. 자신의 꿈보다는 집안 분위기에 따라 미래를 결정하거나 혹은 억압된 학교 규율로 인해, 자신의 장래 희망을 포기하는 등 영화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세 얼간이’는 이러한 고민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가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 주인공 란초의 명대사 ‘알 이즈 웰’로 용기를 주는 작품입니다. ‘세 얼간이’ 뿐만 아니라, 발리우드라고도 불리는 인도영화는 이미 1990년대에 미국보다 2배 이상 개봉영화를 제작하고 있었을 만큼 점점 그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경제와 문화산업 성장이 한창인 인도의 명칭이 유래된 곳 인..

[세계사, 4대 문명] 이집트 역사 10분 완벽정리

우리가 고대 문명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이집트의 유적을 연구하는 것처럼 고대 이집트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많은 매체에서 이집트를 다루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기간이 너무나도 긴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32년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었죠. 여기서 잠깐! 기원전 332년까지 유지되었다고 했는데 지난 시간까지 얘기한 클레오파트라 7세는 기원전 30년쯤의 이야기라면서, 어떻게 된 거냐? 네. 눈치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클레오파트라도 실은 그리스계 마케도니아인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기 때문에 순수혈통 이집트인은 아니었던 겁니다. 기원전 3000년부터 시작된 이집트 문명은 수천년을 이어오다가 기원전 332..

[5분상식 세계백과] 흑당버블티 상식

버블티는 타피오카 밀크티 혹은 애칭 보바로 불리는 대만의 대표 음료입니다. 주로 차갑게 해서 마시는 버블티는 중국, 말레이시아, 일본, 대한민국을 넘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유명한 버블티 가게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 되었죠? 1980년대 대만에서 개발한 이 음료는 각종 차와 우유로 만든 밀크티에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듭니다. 버블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타피오카 펄은 카사바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채취한 녹말로 만듭니다. 고구마와 비슷하게 생긴 카사바의 뿌리를 곱게 빻은 후 물에 넣으면 녹말 건더기가 가라앉는데 이 건더기를 건져내 말린 것이 바로 타피오카입니다. 동글동글한 작은 알갱이로 뭉쳐진 타..

[5분상식 세계사]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역사 10분 완벽정리 – 세계백과

1. 소개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은 카리브해 지역의 섬 국가로 소앤틸리스 제도의 남동쪽, 윈드워드 제도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는 킹스타운입니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영어명은 St.Vincent and the Grenadines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의 국호나 지명을 한국어로 옮길 때 and와 the를 생략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으로 부릅니다. 1498년 1월 2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사라고사의 세인트빈센트 축일에 이 섬을 발견하면서 처음에는 섬을 두고 St. Vincent of Saragossa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스페인 남부 지역의 그라나다를 붙이면서 오늘날의 국가명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 되었습니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의 국민들은 국기를 두고 ‘..

[5분상식 세계사] 세인트루시아 역사 10분 완벽정리

1. 소개 세인트루시아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여성 기독교 순교자 ‘세인트 루시’에서 이름을 딴 국가로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동부에 위치한 섬나라이며 수도는 캐스트리스입니다. 세인트루시아의 국기는 1967년 영국령 지배 하의 자치 정부 시절 제정되었으나 1979년 독립 때, 한 차례 수정하였고 2002년 바탕을 파랑에서 하늘색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늘색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함께 세인트루시아가 카리브해와 대서양에 있는 섬나라임을 의미하며 검정과 하양은 국민의 대부분인 흑인과 백인의 협력과 단일성을 나타냅니다. 노랑은 카리브지방의 태양과 나라의 발전을 뜻하며 검정과 노랑의 2개 삼각형은 세인트루시아의 상징인 피통(Pitons)의 두 봉우리를 나타냅니다. 세인트루시아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

[5분상식 세계사] 세이셸 문화 환경 10분 완벽정리

5-1. 문화(미술 & 음악) 세이셸에는 주변의 아름다운 섬에서 영감을 끌어내는 다양한 부류의 촉망 받는 미술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이셸의 국립미술관은 1994년 국립문화센터 준공식 때 개관했으며 국립문화센터에는 국립도서관과 국립문서보관소 및 문화부의 여러 부처가 입주해 있습니다. 문화부 장관은 국립미술관 개관식 때 ‘세이셸의 미술가, 화가, 조각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은 세이셸의 미술이 하나의 창의적인 표현 형식으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주는 일’이라 천명하면서 세이셸의 현대미술에 대한 정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세이셸의 현대 미술가 대부분은 1976년 독립 이후 해외 대학에서 수업을 받았고 자신들의 모습을 다양한 스타일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해왔습니다. 자국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

[5분상식 세계사] 세이셸 역사 정치경제 10분 완벽정리

1. 소개 정식명칭 ‘세이셸 공화국’ 줄여서 세이셸은 아프리카 인도양 서부 마다가스카르 북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수도는 빅토리아 (Victoria)입니다. 세이셸의 국기는 1976년 독립과 함께 제정되었지만 1977년 쿠데타가 일어난 후, 인민연합당의 당기에서 취한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1996년에 일당체제가 아닌 다당제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상의 국기를 제정하였습니다. 파랑은 세이셸을 둘러싼 하늘과 바다를 노랑은 빛과 생명을 주는 태양을 빨강은 미래의 단합과 사랑을 위해 일하는 국민들을 하양은 사회 정의와 조화를 초록은 땅과 자연환경을 나타냅니다. 세이셸은 아프리카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동쪽으로 1,700km 마다가스카르섬으로부터 북동쪽에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인..

[5분상식 세계사] 세르비아 문화 & 환경

5_1. 문화(미술) 수 세기 동안 국경이 동서로 길게 걸쳐있었던 세르비아의 영토는 로마제국의 동쪽과 서쪽으로 분리되었고 이후에는 비잔티움과 헝가리 왕국으로 나뉘어졌으며 근대 초기에는 오토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렇게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세르비아는 문화적 다양성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북부 지역에서는 중앙 유럽의 모습이 보이고 남쪽은 발칸 지역과 아주 흡사하여 지중해 지역의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로마제국과 초기 비잔틴 제국의 흔적은 시르미움 (Sirmium) 펠릭스 로물리아나와 유스티니아누스 프리마(Justiniana Prima)등 세르비아의 수많은 왕도(王都)와 궁전에 남아 있습니다. 세르비아의 수도원은 세르비아 중세 미술의 정점에 있습니다. 초기에는 비잔틴 미술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