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빠다 제19장 <진리에 입각한 이>
264.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거짓을 말한다면
삭발했다하더라도 수행자가 아니다.
욕망과 탐욕에 빠져있는 자가
어찌 수행자이겠는가.
265.
그러나 작든 크든
악을 전부 가라앉힌 이는
악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수행자라고 불린다.
이 게송이 설해진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정사에 계시던 때에, 핫탓까라는 스님이 있었다.
핫탓까 스님은 이교도들과 종교적인 주제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즐겼는데
논쟁에서 질 때마다 상대방에게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만나
다시 논쟁을 하자고 하였다.
그로고는 약속한 장소에 약속시간보다 더 일찍 가서는
“보라! 이교도들이 나를 두려워해서 약속장소에 오지도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말들을 하였다.
그는 논쟁에서 질 때마다 이런 방법을 이용해서
논쟁에서 이겼다고 우기며 돌아다녔다.
부처님께서 핫탓까 스님의 이러한 언행을 전해 들으시고는
핫탓까 스님을 불러서 이것이 사실이냐고 물으셨다.
핫탓까 스님이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답하자, 부처님께서는
“핫탓까여, 그대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거짓을 말하는 자는, 비록 삭발하였다 하더라도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
크고 작은 악을 제거한 자야말로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거짓을 말한다면
삭발했다 하더라도 수행자가 아니다.
욕망과 탐욕에 빠져있는 자가
어찌 수행자이겠는가/
/그러나 작든 크든
악을 전부 가라앉힌 이는
악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수행자라고 불린다/
266.
탁발한다고 해서
비구인 것은 아니다.
모든 법을 갖추고 나서야
비구가 되는 것이지
탁발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267.
선과 악을 버리고서
청정한 삶을 살고
세상을 숙고하면서 산다면
그가 참으로 비구라고 불린다.
이 게송이 설해진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정사에 계실 때
이교도의 교단으로 출가한 어느 브라흐민이 있었다.
그는 탁발을 나갔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존자 고따마는 탁발을 하는 그의 제자들을 비구라고 부른다지.
그렇다면 탁발을 하는 나도 비구라고 불러주겠지’
이런 생각을 한 브라흐민은 부처님을 찾아가서
“존자 고따마여, 저도 탁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니 저도 비구라고 불러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브라흐민이여, 나는 단지 탁발한다고 해서 비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일체의 형성된 것들을 잘 헤아리고
그에 따라 행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비구라고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탁발한다고 해서
비구인 것은 아니다.
모든 법을 갖추고 나서야
비구가 되는 것이지
탁발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선과 악을 버리고서
청정한 삶을 살고
세상을 숙고하면서 산다면
그가 참으로 비구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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