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배우를 준비한 지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대 때는 솔직히 크게 걱정도 없었고 조급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서른이 딱 되고 보니
이 길이 맞는지, 여태까지 해온 게 잘한 건지, 잘했다는 게 어떤 건지,
여러 생각들이 계속 듭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 때 자존감이 더 낮아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싶습니다.
이런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우라는 인기 직종에 종사하여 10년을 했는데도
아직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니까
초조한 마음이 들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모든 배우가 다 유명해질 수는 없잖아요.
모든 스님들이 다 유명해질 수도 없고
모든 정치인이 다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모든 작가가 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는 없잖습니까?
모든 사람이 유명해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이 직업을 갖고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재고를 좀 해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생활은 아니라 하더라도
월세방이라도 하나 갖고 세끼 밥은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연기 활동으로는 생존의 문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연기만 해서는 밥을 못 먹으니까요.
또는 직종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지만
이것 갖고는 생계유지가 어렵다면 그만둬야죠.
갑자기 재난이 일어날 경우에
아무리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어도
당장 급하면 생존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해야 되잖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가난한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전공을 다 버리고 미국에 가서 접시를 닦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그들의 고향에 가보면 대부분 학벌이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선생님이나 판사를 하는 것보다
한국에 가서 막노동을 하는 게 10배 내지 20배나 월급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을 하는 겁니다.
그것처럼 전공을 살릴 수 있으면 좋지만
때로는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좋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해야 되는 겁니다.
저도 스님이 되고 나서
절에서 목탁만 치고 있었으면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불교를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에
기존의 불교를 벗어나서 절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오니까 아무런 기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얻어서
‘여기에 새로운 길이 있다’ 하면서 전단지를 천 장쯤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는 날에 달랑 세 명이 왔어요.
두 번째 강의를 하는 날에는 두 명이 떨어지고 한 명만 남았어요.
그런데 강의 프로그램이 3개월 코스였습니다.
세 명이 모두 그만두면 새로 광고를 내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한 명만 달랑 남으니까 새로 시작하기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한 명을 데리고 3개월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광고를 냈더니 그 한 명이 다섯 명을 데리고 왔어요.
이것이 정토불교대학의 출발이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가려면 이 정도로 각오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사무실 유지비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하는 것을 병행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습니다.
시골 출신이니까 장학금이 나와도 학비만 주지 생활비는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생활비를 벌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돈을 모아 사무실 유지비를 내고 정토회를 시작했습니다.
출가한 스님이 학원 선생님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러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생계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하는 불교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들 밖에 없었습니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불교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한테 배운 대학생들이 졸업을 한 뒤 직장을 다니게 되자 회비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그 돈을 모아서 정토회가 자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질문자도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려면 이런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면서 사는 길도 있습니다.
어떤 길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모두 자신의 선택입니다.
배우의 길을 가려면 ‘빨리 유명해지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모든 배우 지망생이 빨리 유명해 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물이 좋고 키가 커서 빨리 유명해진 사람은
부모의 덕이지 본인의 실력은 아니잖아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연기력을 키워야 합니다.
연기력으로 선발이 되려면 인생 경험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학교 공부만 하거나, 대본 연습만 해서는 연기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힘든 것들을 경험해 보고, 인생을 힘들게 살아봐야 연기를 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나는 연기를 하고 싶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연기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그것은 곧 택배 기사를 연기하는 것이고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그것은 곧 청소부 연기를 하는 것이고
심부름을 한다면 심부름하는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인생을 전부 연기로 봐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연기로 생계유지가 안 되면 부업을 하나 가지면 됩니다.
‘이것도 연기 연습이다’ 하는 관점을 갖고 부업을 해야 합니다.
만약 생계유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너무 빨리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세상 경험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여행도 많이 해야 합니다.
여행을 할 때도 무전여행을 해야 합니다.
좋은 호텔에서 먹고 자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제 3세계에 구호활동을 자주 가는데
현지 사람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금방 친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릴 때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려운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가자마자 어떤 상황인지 바로 파악이 됩니다.
대학에서 긴급구호에 대한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해서
저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가자마자 바로 상황 파악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 경험 자체가 교육이지
꼭 대학에 가거나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조급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기만 해서는 생계유지가 안 되면
아르바이트와 연기 연습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생계유지에 문제가 없다면 더 편안하게 다양한 경험을 하면 됩니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고 해서 누가 나를 알아봐 줍니까.
연기자를 선발할 때는 연기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연기 실력이 좋아야 발탁이 될 것 아닙니까?
연기자를 선발하는 사람들은
그 배우가 돈을 주는 값어치만큼 연기를 잘할 수 있겠는지
이해타산을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를 선발하는 선택권은 질문자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선택을 못 받았다고 낙담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오디션에 떨어지는 것도 연기 경험으로 삼으면
다음에 직장에서 해고당한 실업자 연기를 할 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오디션도 많이 보면 기술이 늘어나잖아요.
이런 식으로 어떤 것도 피하지 말고
모두 연기를 위한 연습으로 생각하고
매 순간을 온전하게 경험해 보세요.
서른 살에는 30대가 된 게 굉장히 나이를 많이 먹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올해 71세가 된 제가 30세가 된 질문자를 볼 때는
아직 열두 번을 더 실패해도 괜찮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40세까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도 온갖 실패를 겪다가 30대 후반에 정토회를 시작해서
오늘의 정토회에 이르렀어요.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하는
관점을 가져 보면 좋겠습니다.
책을 보고 배운 기교적인 연기는 오래 못 갑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해야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조인성씨 사례를 이야기해 볼게요.
배우 조인성씨가 지난번에 저와 함께 로힝야 난민캠프에 갔어요.
저와 함께 다니려면 값싼 비행기를 타야 해서 여러 곳을 경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비행기가 운행이 늦어져서
그다음 비행기를 탈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결국 함께 동행한 JTS 대표님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방법을 마련했어요.
조인성 씨가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모가디슈’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 원래 대본에 없던 긴급 상황에서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감독도 생각하지 못한 연기를 조인성 씨가 제안했다고 해요.
이렇게 온갖 경험이 연기를 하는 데에 밑거름이 됩니다.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징어 게임에서 배우 오영수 씨도
나이 70이 넘어서 할아버지 역할을 잘해서 골든 글로브 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30대에는 서른이 되었다며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40대가 되어서 돌아보면 그때가 한창때였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어도 괜찮은 때라고 볼 수 있어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요.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하루_ 분노하지 않고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나요? (2023.06.07.) (0) | 2023.09.20 |
---|---|
법륜스님의 하루_ 동생이 말기 암에 걸렸어요. (2023.06.06.) (0) | 2023.09.19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945. 결혼을 싫어하는 남자친구 (0) | 2023.09.18 |
법륜스님의 하루_ 남을 도울 때 어떻게 도와야 서로에게 이로울까요? (2023.06.04.) (0) | 2023.09.18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944. 인간을 혐오하는 마음 (0) | 2023.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