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를 하면서 대부분 우리가 나왔겠지마는, 사람이라는 건 생긴 모양이 다 조금씩 다르듯이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습관이나 식성이나 취미나 사상이나 이념이나 다 어때요? 조금씩 조금씩 다르다. 그런 데서 우리가 나와 다른 것을 잘했다.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고 보지 말고, 나와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이 말이오. 그것을 그냥 그대로 인정을 하는 게. 이게 존중이에요. 상대를 받드는 게 존중이 아니고. 나와 다른 그 사람의 그대로를 인정하는 걸 뭐라고 한다? 존중한다. 이래.
피부가 검은 걸 검은 대로 인정하는 걸 존중한다는 거요. 나와 모양이 다른, 성이 다른 여성 남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존중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거를 피부빛깔이 다르다고 성이 다르다고 만족이 다르다고 그걸 갖다가 차별한다 이거야. 좋고 나쁘고를 따진다. 이거야. 그러니 있는 그대로를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존중이다. 그다음에 인정해서 한 발 더 나가서 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처지가 이해되면 누구한테 좋다? 나한테 좋다. 이해가 안 되면 내가 답답해지거든.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고기 먹으라 하니까 잘 안 먹으니까 삐삐하니까 어때요? “니 다이어트하느라고 안 먹네.” 그 사람은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거요. 나쁜 의도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 사람입장에선 그렇게 말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아~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구나. 이렇게 그냥 받아들여라. 내가 다이어트하려고 먹는 게 아닌데도 왜 그런 식으로 말 하냐? 내가 시비하는 거요. 그 사람이 나를 시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 말을 갖고 시비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내가 고기 안 먹는 거 갖고 저놈이 나를 시비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그 사람 말을 갖고 내가 시비하는 거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의 편에 서서 볼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거를 이해하는 거. 이게 존중과 이해. 인정과 이해. 이게 인간관계의 핵심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니라 저도 그렇고. 내 입장에 서버리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어떻게 말을 해도 저렇게 하나? 이렇게 해도 되는데. 그런데 그건 누구 생각이다? 내 생각이잖아. 그럼 누가 속 탄다? 내가 속 타는 거요. 자꾸 내 기준을 고집하게 되면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저 인간은 저것 때문에 안 되고, 이 인간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건 저것 때문에 안 되고. 이렇게 다 빼다 보면 내 관계가 굉장히 좁아지는 거요. 그런데 그 각각을 그냥 인정해 버리면 관계의 폭이 굉장히 넓다.
사람을 만나보면 정서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있고 싶은 사람도 있고, 만나보면 같이 있는 게 거북한 사람도 있고. 그런 것마저도 내 까르마에 호의적 반응이 있는 사람도 있고 거부 반응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다름도 인정해버리면 그런 사람하고 같이 지내는 거도 괜찮다. 그런 사람하고 일부러 더 친해라. 이런 말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가 인정하고 그다음에 이해한다. 사랑과 핵심은 상대를, 결혼한 상대를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는 이게 사랑이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인정과 이해가 없는 사랑이 있어요. 나는 그 사람 죽고 못 살아. 싫다고 그래도 아니야. 이래 하겠다. 그래도 “안 해.” 이래야 돼. 내가 주면 니는 받아야 돼. 이거는 그냥 강요지 이거는 이해가 아니에요. 고집이지 이해가 아니에요. 존중도 아니고. 이건 폭력이에요. 그런데 자꾸 우리는 내가 좋으면 그걸 자꾸 사랑이라고 미화해. 이거 부모 자식 간에 집착이에요. 그래서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데 상대는 그게 무거운 짐이 되는 거요. 감옥이 되는 거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식은 다 부모가 무거운 짐이에요.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데 남편은 그게 감옥이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한다는데 아내는 그게 감옥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끼리 부부지간에 만나고 부모자식이 된데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고 속박하고 눈치 보고 이렇게 산단 말이오. 여기에 핵심이 뭐가 빠졌느냐? 내가 너 좋다 하는 이 호의만 있지. 거기에는 어떤 이해도 존중도 없다는 거요.
이해와 존중이 없으면 인간관계는 부부라도 결국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부모자식도 상처를 주고 친구지간에도 상처를 준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핵심은 나와 다른 상대를 존중하는 것. 즉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편에서 그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것끼리 갈등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오히려 이 세상이 풍요롭다. 서로 다른 많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면 화단의 꽃처럼 다양한 꽃들이 여러 종류의 꽃들이 있을 때 화단이 아름답잖아요.
반찬도 여러 다른 반찬들이 있을 때 음식이 풍요롭잖아요. 딱 한 가지만 있다면 음식이 풍부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딱 성격이 맞는 사람만 같이 산다고 좋은 게 아니고, 성격이 다른 사람도 같이 살 수가 있다. 취미가 다른 사람이 같이 살 수도 있다. 한 사람은 미술이 취미고, 한 사람은 음악이 취미라면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 그 집안에 뭐가 있다? 미술도 있고 음악도 있잖아. 그지? 그런데 하나씩 고집하면 어때요? 집은 그 취미 때문에 싸워서 깨진다. 이 말이오.
니 음악 좋아하니까 니는 저쪽에 가라. 넌 미술 좋아하니까 저쪽에 가라. 이렇게 될 수 있고 벽에는 미술품이 걸리고, 저쪽에는 피아노가 있고,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미술을 보면서 음악을 구상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서로 다른 것들이 인정이 되고 이해가 되면 이것은 풍요로움으로 다양성으로 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 흐름이 큰 흐름이 뭐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거 아닙니까? 그죠? 다양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요즘 제3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사니까 이걸 뭐라고 불러요? 다문화 가족이다. 이렇게 부르잖아요. 그죠? 이게 세계화에서 우리가 겪어가야 할 과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여기에 이렇게 자연스럽지가 못해요. 왜 그러냐 하면 한국 사람들이 항상 자기가 태어난 지역.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특히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 산악이 많기 때문에 고 골짜기에 갇혀서 끼리끼리 살아온 습관이 있단 말이오.
단일민족이다. 단일문화다. 꼭 좋은 거 아니에요. 요런 순수, 요런 것을 해왔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거에 대한 배타가 굉장히 강합니다. 또 조막막한 땅인 요 한반도에 남북으로 갈라서 서로 배타하고. 한반도 안에 어때요? 전라도 경상도 나눠서 또 배타하고. 경상도 안에도 또또 PK TK 나눠서 또 배타하고. 또 경상도 안에도 어때요? 저쪽 안동파, 요쪽 상주파, 포항 쪽 경주파. 요것도 틀려요.
경주가 보면 포항하고 경주하고 또 많이 틀립니다. 그러니까 이게 자꾸 가른다. 이 말이오. 우리는. 이게 우리가 좀 폐쇄성이 강한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을 우리가 개방하는 쪽으로 나가는 게 좋다. 자~ 그렇게 인간관계를 한 번 맺어가 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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