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88회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잘 키울 수 있을지요.

Buddhastudy 2012. 11. 2. 04:13
출처 YouTube

 

아이를 잘 키웠다 하는 생각은 어머니의 순수한 소망이기도 하지마는 또 하나의 욕심입니다. 욕심으로 애를 키우면 애가 잘 클 수가 없어요. 엄마가 욕심으로 애를 키우는데 어떻게 애가 잘 크겠어요. 본인이 애를 잘 키우고 싶다 하면 본인이 자기를 봐요. 내 꼬라지가 어떤지. 애는 어차피 내가 엄마니까 나를 닮을 거 아니오. 그죠? 그런 게 사춘기 애하고 맨날 싸우는 수준이잖아. 내가.

 

그 수준의 엄마 밑에서 엄마하고 싸우면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 그건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그냥 되는대로, 그냥 나 닮았으니 지가 크면 얼마나 크겠냐? 이렇게 기대하지 말고 사는 대로, 그냥 니 맘껏 한 번 살아봐라. 그래 까짓 것 니 맘대로 살아봐라. 잘못 되면 얼마나 잘못되고, 잘 되면 얼마나 잘 되겠냐? 이렇게 탁~ 좀 애한테 너무 감옥 만들고, 너무 기대하고 이러지 말고, 탁 한 번 놔 주는 게 첫째 좋고.

 

그 다음에 한 번 훌륭한 애를 만들어 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그 모델이 돼야 되잖아 그죠? 내가 모델이 될 만한 사람으로 자기 변화를 지금부터 시도해야 됩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를 넘어서서 아이를 위해서. 그러면 모델이 되는 게 뭐겠어요? 보디 사트바 아닙니까? 그죠? 내가 보살이 된다. 보살이 된다는 것은 우선 부부지간에 남편에게 서도, 뭐라고 하면 , 알겠습니다.” 이렇게 좀 화끈하게 좀 아까 저 처녀처럼 스님이 얘기해도 토를 달잖아. 그죠?

 

그냥 딱 듣고 알겠습니다. 스님. 까짓것 한번 해보죠.” 이렇게 오늘 마음을 딱 내도 내일부터 뇌나? 안되나? 안되는데, 벌써 시작도 하기 전에 딴 소리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잘 되겠어요. 이 자리에서 싹~ 마음을 내도 내일 안 될 확률이 높아요. 까르마라는 게 그렇게 무섭단 말이오. 그런데 벌써 안 될 생각부터 먼저 하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요. 그래서 쉬운 길은 내가 놔버리는 거요.

 

아이고, 내가 낳아서 내 닮아서 무슨 훌륭한. 크게 말썽만 안 일으키고 살면, 아이고 난 대 만족이다.” 이렇게 탁 풀어주는 게 그나마 지금보다 나아요. 내가 보기에 그게 안 쉽겠어? 내가 지금 언제 노력해서 나를 훌륭한 보살로 만들어가. 피곤하게 뭘 그렇게 하려고 그래? 그렇게 하려면 각고의 노력,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으려면 각고의 정진이 필요하잖아. 그죠? 그래서 자기를 자기 까르마를 극복해서 정말 자유와 행복의 길로 가겠다. 하면 용맹정진을 해야 되고.

 

안 그러면 내 꼬라지 생긴 대로 살지 뭐. 이렇게. 그래서 인생사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을 다 받아들이는 거요. “아이고 내 복에 밥만 먹고 살아도 다행이지 뭘~ 그거.” “아이고 내 복에 당신 같은 남자 만난 것 만해도 어떤 남자가 나 같은 여자 데려가겠나. 아이고, 고맙습니다.” 애들이 말썽 일으켜도 아이고, 내 수준에 애들이 그만해도 다행이지. 하이고 그래도 너희들은 나보다 낫다.” 이렇게 탁 풀어주고 하면, 그것도 인생에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게 쉽지 뭐. 훨씬.

 

그런데 문제는 이런 거요. 훌륭하게는 키우고 싶고, 나는 그렇게 하기 싫고. 아시겠어요? 성불은 하고 싶고, 수행은 하기 싫고. 공부는 일등 하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고. 서울대학은 가고 싶고, 맨날 놀고 싶고. 이런 속에서 늘 우왕좌왕하는 거요. 여러분들은 너무 인생을 어렵게 생각하는 거요. 욕심만 잔뜩 차있는 거요. 욕심만. 그것을 위한, 노력은 안 한다 이거야. 부처님의 가르침은 노력은 엄청나게 하고도 그 결과를 바라지 마라. 이렇게 가르치는 거요. 여러분 노력은 하나도 안 하면서 결과는 엄청나게 바란단 말이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또 질문하세요.

 

여러분들 학교 선생님하면, 애들이 말이오. 이렇게 하는 거 보면 그 중에 참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하는데도, 착하게 하는데도, 학교에서 잘못이 있으면, “선생님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이렇게 대신 사과도 하고, 대신 참회하고, 반에서 일어난 애들 고자질 안 하고, 자기가 묵묵히 짊어지고. 처음에는 선생님이 잘 몰라 애를 나무랐지만. 시간 흘러놓고 보니 ~ 제가 저런 애구나.” 이러면 애가 예뻐요 안 예뻐요? 예쁘겠지. 이렇게 어리석은 선생도 애보다는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 보면 예쁘고. 그럼 마음으로부터 도와주고 싶고 그러잖아요.

 

부처님은 우리보다 지혜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 마음 씀씀이 속속들이 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다 알겠지. 일체중생의 마음을 낱낱이 다 안다고 그랬어? 모른다고 그랬어? 안다 그랬죠. 자기가 자기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복 받겠는지. 부처님께서 예뻐하시겠는지. 그러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런 말이 있죠? 스스로 자신을 봐야 됩니다. 자기가 복 받을 존재인지.

 

밖에서 누가 복 주고 안주고 하는 건 놔 놓고, 내가 봐도 내가 복 받을 사람인지. 이게 점검이 좀 돼야 되요. 여러분들은 인과의 법칙을 믿는다고 하면서 도무지 내가 볼 때 인과의 법칙을 안 믿어요. 복은 하나도 안 지어놓고 복은 태산같이 받으려고 그러고. 나쁜 짓은 수도 없이 해 놓고 재앙은 하나도 안 받으려 그러고. 그럼 이게 인과의 법칙에 안 맞잖아요. 복은 태산같이 지어 놨더라도 복 받을 생각을 안 하고. 설령 복이 오더라도 중생에게 회양하고.

 

나쁜 짓은 안 했다 하더라도 저 중생을 위해서 재앙을 기꺼이 내가 대신 받겠다. 이게 지장보살 아니오. 보디 사트바라는 게 뭐요? 복은 태산 같이 짓되 그 복을 중생에게 회향하고, 나쁜 짓은 하나도 안 하되 중생이 나쁜 짓을 해서 받는 재앙을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고 그 중생 좀 편안하게 해 주겠다. 이런 마음을 낸 자. 뭐요? 복을 태산같이 지어서 중생에게 복을 주겠다 하는 게 관세음보살이라면.

 

중생이 지은 한 없는 죄의 과보를 내가 대신 받겠다. 하는 게 지장보살 아니오. 그걸 우리가 본받아야 될 거 아니오. 그 만분의 일이라도. 그런데 우리는 인과법도 안 믿고, 나쁜 짓은 수도 없이 해 놓고, 재앙은 털끝만큼도 안 받아들이고. 복은 털끝만큼도 안 지어놓고 복은 태산같이 받으려 그러고. 첫째 원리적으로 그리될 수가 없어요. 될 수 없는 걸 원하니까.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은 고통밖에 없죠. 이건 좀 자각이, 각성이 좀 필요 안 할까? . 다음 질문하세요. 좀 너무 심각하게 얘기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