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저의 대학생활은 휴학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였습니다.
갈비집, 돈까스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은 밤엔 중학생 과외를 하는 등
이중삼중으로 알바를 했기에
대학 생활 내내 항상 뛰어다녔던 기억이납니다.
문제는 하루도 빠짐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단 거였어요.
2000년대 초반 그때에도 문과대의 한 학기 등록금은 무려 300만원에 가까운 큰 금액이었습니다.
반면에 제가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받는 시급은 3900원이었던 시절이었죠.
제가 휴학을 하지 않고 대학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학금을 받아야 했습니다.
1등은 등록금 전액
2, 3등은 70%
그리고 4, 5등은 30% 등록금 면제 장학금을 주었는데
휴학을 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3등 안에는 들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저에겐 시험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거였어요.
전공 수업이 끝나면
늘 분당 서현역에 있는 돈까스집으로 뛰어가 알바를 했고
그게 끝나면 성남 상대원동에 있는 중학생 과외를 하러 가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여유있게 시험 공부를 하는 동기들에 비해
저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한 처절한 벼락치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공시험이 치러지는 일주일은 상대원동에서 마지막 과외가 끝나면
심야 택시를 타고 다시 대학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밤12시부터 전공시험이 치러지는 아침 9시까지
백과사전 두께의 전공서적을 미친 듯 외우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코카스라고 아시나요?
박카스 친구 코카스.
한 병에 250원하는 자양강장제였습니다.
도서관 입구 자판기에서 코카스 4병을 뽑아 도서관 책상 위에 탁탁탁탁 올려두고
2시간 밤마다 한 병씩 마시며 각성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미친 듯 줄을 치고 암기하다 보면 창문 밖으로 동이 타올랐고
항상 거짓말처럼 시험 시간인 9시 딱 10분 전에 책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습니다.
남들이 한 장씩 써서 내는 서술형 답안지를 저 혼자만 3장 반을 쓰고
미리 준비해둔 미니 스테이플러로 콕 찍어서 제출하면
이미 모든 학생들은 다 빠져나간 후였고
저 혼자만 시험장에 남아 있었어요.
저 한 명 때문에 퇴근이 늦어졌던 선배 조교들의 따가운 눈총과 미움을 받아야 했지만
교수님들은 한 장짜리 시험지들 속에 내장이 묶여진 저의 시험지를 보고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신 건지
아니면 시험지 마지막 장에 시키지도 않은 편지와 자작시까지 써넣은
저의 앙큼한 의도를 알아차리신 건지
아무튼 대부분 최고의 점수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동안은 등록금 빵원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숫자가 찍힌 고지서를 받으며 기쁨보단
“아 우선 한숨 돌렸다”라는 안도감을 잠시 느끼곤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허수아비 돈까스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부족한 잠이었죠.
당시 용인에서 서울로 통학을 했는데
시험 기간 일주일은 계속 도서관에서 밤을 세워야 했기에
집에 다녀올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 낮잠을 서너 시간이라도 보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자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OT며 MT 같은 대학생활도 참여하지 못했기에 친한 친구도 거의 없었는데
얼마 전 입학한 편입생 언니들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들도 타학교에서 막 편입한 상태였고
제가 학교생활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대화를 나누면서 이 언니들이 대학 후문에서 함께 자취를 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취방이 찾아가 2시간만 재워달라고 했습니다.
불쑥 찾아온 저를 보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그 언니들에게
슈퍼에서 사간 뽀삐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을 슬며시 건네곤
슬쩍 방 한구석에 누워서 눈을 감았고
잠이 든다는 느낌이 들기도 전에 골아 떨어지곤 했습니다.
잠 동냥이라니
심청이를 키운 심봉사가 집집마다 돌아다녔던 심정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웃음이 났다.
여러분 저는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났습니다.
조금도 서럽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셨다는
빨간색 투스카니를 끌고 통학했던 어느 동기가
학생회관에서 학식을 먹으며 우리집 고지서를 정리하고 있던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 너는 그렇게 사는 거 서럽지 않아?
너는 막내라면서 집 관리비는 왜 네가 내는 거야?
부모님도 일하신다면서
그런데 네가 왜 알바한 돈으로 그걸 내
억울하지 않아?”
그때 그 말을 듣고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서러워야 하는 것인가? 억울해야 하는 것인가?”
언니들의 자취방을 찾아가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대학 캠퍼스 벤치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날 때가 많았습니다.
가끔 늦게 깨어나면 알바에 늦을까봐 부랴부랴 가방을 메고
지하철역이 있는 정문 쪽으로 와다다 뛰어갔죠.
그 시간은 늘 저녁 5시 6시 그쯤이었는데
달리는 2호선 지하철 너머로 항상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그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요
“가만 그러고 보니 내가 오늘 뭘 안 먹었네.
아 우선 뭘 좀 먹어야겠다” 였습니다.
그리고 김밥 한 줄을 사서 횡단 보도를 건너며 하나씩 입에 넣은 것
그게 전부였어요.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가난했던 여대생은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집에 잠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가 되었습니다.
운영하는 학원 건물도
퍼즐 조각 모두 매년 하나씩 매입했고
이젠 건물 전체에 90%를 소유하게 되었어요.
월세 안 올려줄 거면 계약 연장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건물주 할아버지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갈 일도 더 이상 없을 겁니다.
특별히 뛰어난 실력도, 학력도, 외모도 없는 제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남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었을까?
여러분 저는요
두 가지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았습니다.
바로 서러움과 억울함입니다.
서러움을 느끼면 끝장입니다.
서러움을 자주 느끼면 그 어떤 것도 제로에서 시작해 이루어 낼 수가 없어요.
수백 번의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그냥 하는 거지 뭐” 했던 김연아 님처럼
“hot가 뭔가요?”라고 말해서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수능 만점자가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걸 참고 공부했냐?”는 그 질문에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했던 그 담백한 표정과 태도처럼
어떤 경우에도 서러워하지 말 것
억울해하지 말 것
이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정말 크게 성공을 하면 사람들은 물을 겁니다.
“그걸 도대체 어떻게 견딘 거야?”
그럼, 여러분은
“그런가? 뭐 좀 빡셌던 거 같긴 한데, 다 지나서 기억이 잘 안 나네.
힘들긴 했는데 그다지 서럽거나 억울하진 않았어”라고 대답한다면
너무나 멋질 겁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때문입니다.
이 순간 이후부터 여러분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그 과정에서
서럽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은 그 순간
이렇게 얼른 말해 보세요.
“내가 오늘 뭘 안 먹었네. 뭐 좀 먹고 해야지”
될 것 같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힘으로 인생이 굴러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나’일 때
가장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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