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기 나름이에요. 더 나와 봐라. 하실 수도 있고요. 거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관건입니다. 그 뭐가 나타나도 그게 참나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렇죠? 참나는 그걸 보는 놈이 참나에요. 아무리 신비한 게 나타나도 그건 오감일 뿐이에요. 생각감정오감. 생각감정오감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알아차리는 자가 참나이기 때문에 참나는 생각감정오감에서 벗어나있거든요. 왜냐하면 빛만 해도 변하잖아요. 변하는 건 참나가 아니에요. 그렇죠? 그거를 변하는 줄 알고 있는 자리가 참나기 때문에. 그러니까 보셔도 아무상관이 없어요. 참나가 뭔지만 알고 계시면. 이왕이면 이거 보는 거보단 빛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 같으면 그러겠습니다.
아~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고 볼 텐데, 참나가 뭔지 아버지가 뭔지 놓치면 안 돼요. 저게 뭐가 있으려니 하시면 안 되고요. 그냥 TV보는 거 보단 이거 보는 게 더 재미있다하고 보세요. 왜냐하면 그게 또 지혜도 주거든요. 인간 정신에는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그런데 참나는 헷갈리시면 안 돼요. 그럼 모든 체험에서. 그래서 참나만 잡고 싶으시면 이것들도 날려버릴 수도 있어야 되요. 몰라. 해버리시면 되요. 없어져라도 아니에요. 관심만 끊으세요. 몰라. 하고 참나를 더 느끼세요. 이게 참나를 알아야 이런 수작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똑같아요. 지금도 제 얘기 듣고 계신데 참나 느끼실 수 있죠? 느끼시는 분들은?
참나 느끼세요? 참나를 더 느껴보세요. 저 더러 없어져라 하실 필요가 없죠. 참나만 더 느끼고 모르겠다하고 계시면 되요. 판단중지하고 그냥 나만 느끼고 계시면 되요. 그런 일에서 혹시 나오고 싶으시면. 내가 더 보다가는 끌려가겠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 일어날 거 같다 싶으면 차단할 때도 몰라해버리세요. 너는 너대로 계속 놀아라. 나는 모르겠다하고 나와 버리시면 되요. 이런 걸 좀 자유자재로 하실 필요가 있어요. 이게 좀 자유자재로 되면 1급이에요. 1급은 이 정도는 해야 되요. 1급은 모든 일에서 참나를 딱 찾아낼 수 있어야 되요. 1급은. 얘기하다가도 참나로 그냥 딱 들어가 버릴 수 있어요.
왜 아직 1급이 1단이 못되느냐? 육바라밀은 아직 나온다고 그 보장이 없어요. 다만 [몰라]라는 참나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는 게 1급이에요. 그러니까 절에서 確哲大悟확철대오 했네 하는 게 그 정도에요. 아라한 됐네. 소승불교에서. 왜냐하면 그 분들이 육바라밀 잘한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다만 그분들은 우주가 무상하다는 줄 알고 우주를 내려놓을 힘은 있어요. 몰라 해버리는 힘은 있어요. 이 정도는 확고하셔야 되요. 네. 딱 이런 얘기 제 얘기 듣다가도 참나로 들어가 보세요. 저 느끼지 마시고, 제가 뭔 말 하시든지 [몰라] 하시고 참나만 느껴보세요.
예. 보는 놈이 나다. 찾지도 마세요. 사실은. 난데 원래 난데요, 원래 나인 그 자리만 더 느껴보는 거에요. 관심만 더 그쪽에 더 주라는 거예요. 이것더러 없어져라 하실 필요가 없어요. 나인자리 느끼시죠? 지금? 네. 알아차리는 자리, 아는 놈, 보는 자리, 보는 놈, 뭐 뭐든지 좋습니다. 아니면 제가 항상 얘기하는 나라는 존재.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그 느낌만 느껴보세요. 그러면서도 제 얘기 들으실 수도 있고요. 관심을 제 얘기 쪽에 좀 더 두시면 제 얘기가 들리구요. 그쪽에 관심 더 주시면 제가 뭐라고 얘기하는 건 아시더라도 뭔 말인지 관심 없으실 겁니다. 이렇게 왔다갔다 실험을 해보셔야 되요. 댁에서도.
TV보다가도요, 재미있는 거 보다가도 보는 나를 느껴보자. 하고 느꼈다가 TV또 봤다가 혼자 놀기가 이게 참 좋지 않습니까? 돈도 안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놀다보면 이게 엄청난 자리에요. 지금 느끼신 그, 내가 있다는 그거 있죠? 이 놈은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있는 놈이에요. 그냥. 스스로 살아있는 자리. 여러분 안에 다 그게 있어서 지금 제 소리를 듣고 계신 겁니다. 이걸 확인하고 살아야 되요. 생각감정오감은 계속 변하는데 이런 거 말고요. 그 자리 지금 느끼세요? 영원히 살아있는 그 자리. 느끼고 즐거워하세요. 그 안에서. 그 자리에서 볼 때는요, 지금 이게 계속 시공간 안에서 변화하는 거는 무상하게 변해갈 뿐이죠.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 나라는 존재감 그 자체. 내가 있다는 느낌. 이걸 느끼고 우주를 보고 여러분 마음을 보고 세상을 보면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 자리는 영원히 살아있는 자리라고 생각하셔야 이래야 모든 종교에서 영생이니 뭐니 하는 말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거에요. 내 안에 있는 인간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에. 남방불교에서 열반이라고 부르고 다 똑같이 그 자리를 느끼고 사는 걸 목표로 하는 겁니다. 이름만 다르지. 네. 예예예. 예예예. 참나만 알면 1급. ***가 지도하는 건 1급까지예요.
석가모니는 거기에 만족을 못하셔서 팔정도까지 잘하자라고 주장한 겁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러면 단계가 더 높아야 되요. 대승불교는 더 나가는 거예요. 팔정도는 너무 개인 수신차원이다. 치인. 남까지 조화시켜주려면 역량이 더 있어야 된다. 그래서 육바라밀로 나가는 겁니다. 팔정도에서. 팔정도에도 확장판에서 육바라밀. 예. 남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면 팔정도보다는 더 적극적인 사상이 필요하다. 팔 걷어붙이고 시장터로 들어들 사상이 필요하다. 예. 참나만 알면 끝난다는 사상이 있고, 참나를 알면 인격적으로 훌륭해져야 된다는 석가모니 사상이 있고.
그게 아니라 온 우주와 함께 우리는 견성해 진짜 견성을 참나를 알아가는 거다라는 더 우주적인 주장이 대승불교에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알고도 그랬건, 대승불교 주장처럼 방편으로 소승적인 얘기를 하셨건, 그 당시 시대적 제약 때문에 그렇게 하셨건 간에 석가모니 주장자체를 들어보면 개인 수신이 더 강해요. 내가 나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게 더 강하고, 대승불교는 내가 좀 때 좀 묻더라도 중생과 함께 성불하겠다는 게 더 강하고. 이렇게 좀 차이가 있어요. ** 신 진짜 참나만 알면 끝이라는 식으로. 원래 그게 힌두교 문화라 석가모니가 하나 센 거를 더 보텐 거예요.
힌두교 원래 문화에 참나만 알면 끝이라는 문화에다가 팔정도라는 걸 집어넣은 거예요. 사무량심이라는 자비심과. 자비와 어떤 지혜, 그리고 실천 이런 걸 대게 강조하셨거든요. 그래서 더 발전돼서 대승불교가 된 거예요. 힌두교에선 대승불교가 못나왔잖아요. 소승불교는 소승이라고 하면서도 거기서는 발전돼서 대승이 나왔잖아요. 그 차이가 석가모니가 그걸 열어놨거든요. 열반에 든 것만으로 끝이 아니고 팔정도를 해야 되고, 삼무량심을 해야 된다는. 그 지혜와 자비와 어떤 실천이 필요하다는 주장 때문에 그게 더 확장되다보니까. 그러면 절에서만 우리가 지혜 자비를 따를게 아니지 않나라고 해서 다시 속세로 들어간 게 대승불교죠. 더 확장되어 버린 게.
석가모니가 중간쯤에 위치하고요, 이쪽에는 마하리시가 대표되는 힌두교. 석가모니가 한 중간쯤. 이 쪽엔 대승불교가 위치한다고 보면 스펙트럼이 그래요. 펼쳐놓고 보면. 대승불교는 석가모니를 높이는 종교니까 석가모니가 그때 다 우리 대승이랑 뜻이 같았는데 그때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서 그냥 그렇게 얘기한 거다. 힌두교인들이. 다 원래 힌두교문화라 못 알아들으니까 편법으로 소승들 얘기하신 거라고 주장하는 건데, 그건 우리가 알 수가 없으니까. 그 당시에 뭔 일이 있었는지는. 다만 석가모니 사상이 한 중간쯤 된다는 것만 아시면 되요.
그러니까 그게 없죠. 용수보살이니 누구니 있기는 하는데, 그 분, 어떤 그런 문화가 형성된 거죠. 어떤 한분에 의해서 나왔다기 보다는 대승불교의식, 이론들이 그때 물밑에서 계속 쌓여갔던 거. 지금 티베트, 한국, 중국, 일본 이렇게. 대승제일 열심히 하는 데가 이쪽이에요. 지금 티베트가 제일 높고. 아니에요. 티베트가 대승이에요. 달라이라마의 그 주장이 자비니 뭐니 다 대승불교에요. 그래서 지금 대승으로 쳐도 티베트한테 밀리고 있어요. 한국 불교가. 티베트가 지금 전 세계 대승에서 제일 대표주자가 되어버렸거든요. 한국이 원래 대승, 아주 오래인데 밀려버린 게요, 딱 간단히요,
화두선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렇게 된 거에요. 화두선은 소승적이거든요. 예. 왜냐하면 간화선에서 간화선 자체는 대승수련법이었는데, 지금 간화선 하는 입장이 견성만 하면 끝이라는 입장으로 가고 있다는 건 이건 대게 소승적인 거거든요. 티베트는 애초부터 대승불교를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림포체들을 육성해서 전 세계로 설교를 보내잖아요. 가가지고 자비해라. 용서해라. 이런 걸 가르치면서. 그러니까 그 같은 대승인데, 다르게 쓰다보니까 좀 결론이. 지금 간화선을 외국인이 배우고 싶어도 어려워요. 우리가 우리말로 들어도 어려운 선문답을 외국인이 들으시면 그럴만 하죠?
그래서 좀 소승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지금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잘 안 돼요. 안타까운 거예요, 한국이 대승불교를 지금 천년 넘게 있는데, 대승의 종구국하면 지금 티벳이지 우리는 안 알아줍니다. 지금 거의 실세는. 달라이라마가 자비해라. 해야지 이게 한국에 오면 한국은 다 참나만 찾으라 그러거든요. 그게 차이입니다. 몸으로도 보여줘야 되고, 이론도 그래야 되는데, 한국불교는요, 솔직히 말해서 견성만 하면 끝이지. 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 풍조 좀 바꿔 놓ㅇ아서. 그래서 제가 그래서 도와 드리려는 게 불교 망치려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도와드리려는 게 견성의 시작입니다.
견성 잘하고 육바라밀 잘하시는 게 진짜 대승입니다라고 주장을 드리는 거고, 이것만 퍼지면요, 세계 대승불교의 다시 종주국가하면, 육바라밀 배우려면 한국가야 된다말 할 수 있어요. 티베트에 육바라밀 노트가 있습니다. 저것만 번역해서 세계에 알리면요, 아이패드 이상이에요. 제가 언제 저거 들고 나가서 저번 프리젠테이션 열심히 해서 육바라밀 이런 겁 니다. 해서 여러분의 신세계로 안내할 거다. 이런 얘기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만한 얘기에요. 이런 여우 정도 해보게요. 이런 얘기가요 티펫불교가 못해주는 얘기 합니다. 티베트불교 강의 보세요. 경전 외우는 그대로 얘기하시지 살아있는 얘기가 안 나와요.
우리 안에는 원래 참나 육바라밀 할 수 있는데, 절절하게 자극만 해주면 여러분 안에서 그게 튀어 나올 텐데, 말로는 여러분 안에 자비의 씨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지만, 자비심이 이렇게 튀어나오게 도와줘야 되거든요. 깨어나게 도와줘야 되고요. 그렇죠? 그러니까 만약에 티베트 림포체나 달라이라마 강의를 들으면 듣다가 여러 명이 참나 찾았어. 이런 게 나와야 되요. 이런 현상이 안 일어난다면요, 말씀은 참 좋은데 나랑은 참 먼 얘기구나가 돼서요, 보살이 안나와요. 그래서 한국불교는 선문화가 있잖아요. 선문화는 깨어나는데 달인들이 쓰던 문화거든요. 잘만 쓰면요, 화두선도 정말 좋은 거예요.
화두선에 바로 깨어나게 한 다음에 육바라밀 노트를 쓰십시오 하면 그냥 보살, 나올 수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아주 좋은 걸 갖고도 잘 활용을 못하고 계신거로 보이는 거죠. 저는. 견성만 하면 끝이라는 풍조가 나오면 안 되는데 왜 그런 주장이 가는지도 답답하고. 이런 거 한번 만들어보자는. 그러면 티베트 이쪽에 올 수 있죠. 티베트 안가고. 같죠. 똑같습니다. 홍익중생이라 그러죠. 합쳐서 제가 부르잖아요. 불교에서는 이익중생이라고 그래요. 중생을 이롭게 하자. 불교는 불교인데, 홍익인간과 하나가 된 홍익 불교가 가버리면 불교라는 이름도 필요 없죠. 굳이 얘기하자면 지금. 종단을 가지게 되면, 조계종이 너무 작아요. 이름이. 조계는 육조대사를 말하거든요. 육조스님 지금 제자라는 겁니다. 조계종이.
그럼 그전에 우리나라의 원효니 누구니 다 예전 어른들은 혜초. 대승에서 훨씬 더 밝았던 분들인데, 경지도 훨씬 높았던 분들이에요. 원효스님같은 분들이. 이 분들 때 화두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낮게 봐요. 화두선 안했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알던 어떤 공부법으로 안했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조계스님 제자들 육조스님 제자들 지금 모임을 조계종 이렇게 묶어 놓은 거거든요. 그러면 한국 불교는 그러면 포괄이 안되는 게 많아요. 그렇죠. 이런 것도 한번 생각해 봐야 되요. 한국 불교는 훨씬 통이 큰 불교였고, 원효스님 이래로 보조스님이 다 회통불교였거든요. 통이 큰 불교였는데 딱 지금은 임제종, 이런 식으로 좁혀집니다.
한국의 조계종이 임제종만 중시하거든요. 그것도 육조스님 제자 중에 임제종, 다른 파가 묵조선도 육조스님 제자니까 여러 파 중에 화두선. 이런 식으로 대게 제한된 지금 종단이에요. 종단자체가. 그래서 그런 식이면 대승 불교를 주장하는데 조금 장애가 좀 있다고 봐요. 제가 밖에서 봤을 때. 학문적으로 봤을 때. 그 조계종에 왜 우리가 중국에 육조스님 다 제자가 되어야 되는지. 더 뛰어난 우리 고승들 많았는데. 이런 의문이 들어요. 이런 의문이 아마 나중에 조금 커질 겁니다. 불교 안에도 계속 있는 거로 알아요. 이게 좀 커지다보면 “어~ 좀 그런데.” 하는 의견들이 커지다보면요, 더 큰 회통불교가 나올 수도 있죠. 좀 판이 커야 되요.
그런데 지금 불교는 그 현실을 안 따라가고요, 자꾸 간화선을 더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 간화선을 세계에다가 널리 알리겠다고 간화선 하나에다 아주 집중하고 있는데, 저는 좀 그런 노선은 아니자 않나? 힌두교 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티베트 불교, 위빠사나 다 끌어안을 수 있는 더 통 큰. 아니 견성하신 분들이 왜 그렇게 통이 작게 놀아요? 견성했으면 우주가 공해야 되는데, 왜? 우주가 공하고 방편 끌어다 막 쓰면 되는데. 그렇죠? 이 약도 먹였다가 이 약도 먹였다 할 줄 알아야 되는데. 딱 그 약 아니면 안 된다. 다른 약이 효험이 있더라도 그 약은 안 된다. 이건 우리 거 약만 쓴다 하는 건 좀 통이 너무 작지 않나 하는.
예. 통 크면요, 통 크면 좋죠. 기독교랑 이런 것두요, 차별을 두면 안 돼요. 기독교두 다른 종교를 볼 때요, 아~ 저 이슬람은 다른 신모시고 있고, 불교는 다른 신 모시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면요, 저는 그 믿음 부족한 거에요. 우주의 신이 어떻게 둘이에요? 그런 얘기가요, 보면 신을 다 분열시키고 있는 소리 밖에 안 돼요. 우주엔 신 하나입니다. 유일신을 진짜 믿는다면요, 다른 종교에서 믿는 신도요, 변형된 모습일지 몰라도 우주의 신이 하나인데, 그렇게 여럿, 자기가 막 둘 셋 만들어놓고, 분열시키면 안 되 거든요.
우주의 신이 하나고, 불교가 볼 때도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중생을 사랑해서 자기를 희생하게 만든 힘이 불성 아니고 가능할까요? 자기들 신앙이 확신이 없으니까요, 남의 종교랑 자꾸 벽을 만드는데, 남의 종교랑 우리 종교 이렇게 따지고 있는 거 자체가 대게 좁은 마음이라는 거 아셔야 되요. 성령이 우주의 성령이지. 왜 지구 안에서도 그렇게 다 찢어져서 적용 안 되면 그런 작은 성령을 왜 따르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우주에서 지구 먼지도 안 돼요. 그 먼지도 안 되는데서 또 한 50개가 아니죠. 우리나라에서만 어느 한 종단만 한 50개 찢어질 겁니다.
이렇게 다 찢어져서 서로 다른 신이라고 우기고 있으면요, 그렇게 우기는데 동참하는 게 창피한 겁니다. 제 생각엔 그래요. 그게 에고의 속성이죠. 그러니까 에고의 속성을 넘어서 있는 참나 자리가 온 우주가 한 참나고, 한 불성이고, 한 성령일 텐데, 통 크게 놀아야 맞죠. 기독교 입장에선 불교를 볼 때는요, “아~ 저기선 말한 불성이 하느님이지.” 하고 봐야 되고요, 불교입장에서 저기 성령을 하느님 얘기 들을 때는 “저기는 참나를 불성을 하느님이라 그러네.” “그러겠죠. 불성이 우주를 다 시공을 초월해서 우주를 굴리는 자리니까.” 이렇게 알고 그냥 넘어가셔야지. 가서. 꼭 내 것이 떠 위라는 거 확인받고 싶어서요. 가서 싸우고. 이렇게 하는 거는 그 자체가 대게 분별망상 아닙니까?
그래서 통 큰 종단이 서면 좋겠어요. 저는 진짜 그래서 우리 선생님이 저랑 의견이 같았어요. 제가 선생님을 존경했던 게, 봉우선생님이 예전에 글 쓰실 때요. 도 그래요. 도. 유도니 불도니 선도니 하면 또 구분이 생기니까 도라고만 하자. 앞으로는. 길. 그냥. 길종이죠. 큰 길만 따르는. 우주가 굴러가는 그 길만 우린 따르겠다고 생각하셔야 되요. 지구 차원에서만 놀면 안 돼요. 우주적인 길. 왜냐하면 지구도 걷고 있고, 안드로메다도 걷고 있고, 태양계도 걷고 있고 북극성도 따르고 있는 그 길.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외계인들이 다 같이 따르고 있는 그 길. 생명체가 다 따르는 그 길을 그길 정도 되어야 그래도 내가 따를 만 하지라고 생각하셔야 되요.
지구에 있는 시시한 거는 못하겠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되요. 통 크게 노세요. 그렇게 통 커야 외계인도 지구에 내려오고 그러죠. 외계인이 지구 오면 뭐 말이나 통하겠어요? 시야가 콩알만 한데. 그렇죠? 또 외계인이 오면 가서 물어볼 거 아닙니까? 너는 뭐냐? 정체가 뭐냐? 기독교냐? 불교냐? 유교냐? 친노냐? 박노냐? 뭐 진보냐? 보수냐? 정체를 대라. 우주에서 놀던 사람한테 그런 얘기 들으면 황당하겠죠. 여러분도 놔버리세요. 우리나라 안에서도 동서남북 노소지금 다 찢어져있거든요. 이런 것부터 안하는 게 도입니다. 앉아서 명상하는 게 도가 아니고요. 그런 분별심. 너 어느 편에 들래할 때요, 나는 우주편이다. 하는 이런 큰마음으로 가셔야 되요.
지구여 나 그렇게 소소하게 놀고 싶지 않다. 나 원래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그냥 지구여 한번 구경하러 왔는데 너네들이랑 이런 초등학교 갔더니 애들이 뭔 딱지 줬냐고 물어보는데 여러분이 거기 빠져들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 너네 때는 그러고 노는 거지. 하고 이런 통큰 마음을 가지셔야 보살입니다. 보살은요, 우주적인 입장, 우주의 대변인인데, 지구의 대변인이 어떤 에고의 대변인이 되면 안 돼요. 제 얘기는 제가 무슨 종단을 만들어놓고 이런 얘기하면 저것도 사이비라서 자기 거 최고라고 말하려고 저러나 보다 하시겠지만, 저는 지금 여러분이 어떤 종교 다니시든지 그 종교 안에 다니시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각을 갖고 그 종교를 믿으시라는 겁니다.
그러면요, 그 종교가 다 제대로 보여요, 제대로 된 종교생활이 가능해요. 예수님이 이해가 되요. 그래야. 예수님이나 그 성인들은요, 다 이런 마인드 갖고 살았던 분들인데. 제자가 수준이 너무 낮다보니까 예수님을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지 말고 우주를 따르라. 너희는 모두 우주의 자녀니까. 다 온전해져라” 그러면요, 제자는 듣고 있다가 “그러니까 본인이 하느님이란 얘기지? 엎드려야지. 나 하느님 제자다.” 다른 종교에 시비 걸러 다니고, 나는 하느님 제자라는 거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너네는 하느님 아니야. 나는 하느님 제자야. 정승 댁 머슴들이 그래요.
우리 어른이 제일이다. 이런 자기는 내세울게 없거든요. 진짜 가난한 상태입니다. 우리 교회 너네 교회보다 더 크다. 더 의리의리하다. 이런 거로 자랑하고 싶고요. 신도수도 많다. 우리 예수님이 더 비싼 예수님. 상이다. 뭐~ 우리 십자가가 훨씬 비싸게 생겼다. 돈 많이 썼다. 뭐 이런 거. 우리 불상이 고급스런 목재로 만든 불상이다. 이런 거로요, 이런 거로 시비 걸고 있을 때 인간은 그래요. 에고 속성은 원래 그러니까 이러지 마시라는 게 아니라, 하시다가도 좀 실없다는 걸 느끼시라는. “참 내가 뭣 짓이냐?” 이렇게. 사람 마음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거기에 안 빠져 드시는 게 좋다는 거.
초등학생들이랑 딱지 칠 수도 있죠. 딱지놀이 하다가 내가 뭣 짓이냐 하고 한번 내려놓는 힘 있죠? 내가 지구에 와서 지구 물 너무 들었다. 너무 내가 수준이 떨어졌다. 요런 마인드 한번 가져주시면요, 가법 게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기지 않나요? 놀아줄 땐 놀아주더라도. 그래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나는 우주의 도편이고, 우주적인 진리편이고 불성편이고 성령편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런 시시한 놀음에는 빠져들지 않겠다라는 그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쪽편도 들었다가 이쪽이 더 정의로울 때는요, 저쪽이 더 정의로울 때는 저쪽편도 들 줄 알아야 되는데 사람은. 한번 이쪽이랑 안면 터놨다고 자꾸 이쪽 편 되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돼요. 에고 놀음이에요.
이쪽편이 아무리 안면 트고 잘 지내는 사이지만, 이쪽편이 정의롭지 못할 때는 아니라고 해야되죠. 난 우주편이니까. 그런데 난 이쪽편이다가 되어버리면요, 못해요. 그 말을. 우주편인 사람만 그 말을 하고 그런 말을 하니까 예수님이나 소크라테스나 다 사형 당했죠. 우주편 얘길 자꾸 하니까. 우리편 안 들어주니까 당시 사람들이 서운했겠죠. 마음에 안 들고. 제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그런 말하신 분들이 성인들이었잖아요. 그렇게 까지 하시라는 건 아니구요. 속으로라도 알고 계시라고. 밖으로는 “아이고 이거 이거 얘기하면 잡혀가겠다.” 싶으면 얘기는 하지 못하시더라도 속으로는 알고 있어야죠.
“너네들 그러는 거 아니야.” 하는 걸. 속까지 그렇게 빠져버리면요, 이게 말 못해요. 보살 공부 도 닦았단 말 못합니다. 그럴 때, 내가 우주에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대게 많다는 걸 알 때, 내가 우주의 내 책임도 크고, 내가 우주에 기여할 것도 많다는 걸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시는 게 더 좋아요. 막연히 그냥 우주 걸 우주책임을 다 내 책임으로 안지마시고요,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세요. 내가 바뀌면 저쪽이 바뀔게 다 있어요. 그래서 아마 그런 게 잘 맞게 하면 원하는 걸 얻으실 거고, 그러니까 문제는 저쪽이 일으켰는데 나만 자책해서 해결이 안되는 게 나아요. 가서 차라리 한마디 하시는 게 훨씬 빨리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봤을 때는 우주의 진리를 따르는 입장이니까. 아니요. 더 안 좋아졌죠. 더 안 좋아졌는데요, 희망이 있어요. 지금 이런 얘기하기가 좋잖아요. 예전보다 국민들이요, 수준이 높아졌어요. 왜냐하면 이런 말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는 많이 됐어요. 예전에 예수님 때는 안됐을걸요. 제자들 모아놨는데 어부고. 뭐 그러면 어려운 얘기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지금 제 얘기 이런 설명 드린 게 훨씬 좋아요. 다들 그래도 지금 꽤 책 좀 보셨고, 그래야 돼요. 이런 조건도 대게 중요해요. 안 그러면 말 못해요. 대게 제한 되요. 그렇지 않아요? 어부한테 얘기를 해보세요. 그 당시 그냥 어부가 아니고 즉 옛날 어부니까 뭔가 이렇게 학문적인 교이런 육이 제대로 못 받으셨겠죠.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물고기 잡는 분만 도가 트신 분들한테 도를 총체적인 얘기를 할 수는 없죠. 그 분들이 알아듣기 쉽게 얘기를 하셨겠죠. 어느 성인이나 그래요. 시대나. 그러니까 전체적인 도가 설명되기 대게 부족하던 시대라고요. 부처님때도 그렇고 다 그래요. 그런데 요즘은요, 그때는 또 알아도 한 종교 밖에 모르잖아요. 유대교밖에 모르는 사람한테 더 큰 얘기 하기는 힘들어요. 이런 한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통 권위가 다 무너지다 보니까 영성도 땅에 떨어지고 종교도 땅에 떨어졌는데 대신에 좋은 게 있어요. 싹~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정하게 들어요.
유대교 얘기 불교 얘기를 다 섞어서 들을 수 있는 힘이 있고, 또 일반 국민들이 지금 고등학교 대학교 까지 거의 나오지 않나요? 훨씬 이해하는 폭이 깊습니다. 좋은 여건이 생긴 게 있어요. 어~ 이런 거랑 같아요. 돈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뭔 문제가 생겼냐 하면은 문제도 많이 생겼지만, 또 하나 좋은 게요, 이게 음양이 있거든요. 장점도 있어요. 전 세계 신분제를 날려버렸어요. 돈이. 신분을 의미가 없게 만들어버렸어요. 인류가 몇 천 년간 신분제로 살았는데 돈이 나오면서 화폐경제가 자본주의기 나오면서 돈 외에는 의미가 없어지니까 전 세계를 싹 털어버렸어요.
그리고 전 세계를 단일한 시장으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게 세계화라고 우리가 반대도 했던 거고. 왜냐하면 협상에서 분리해지기가 쉬우니까요. 약국이. 당연한 얘기죠.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우려도 있고 단점도 많았지만, 우리가 지금 만약에 이렇게 도를 얘기할 때 장점이 하나가 있는 게요, 전 세계 생활이 비슷해졌어요. 다 맥도날도 먹고 있고요, 다 햄버거 똑같은 거 먹고 있고.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세계 보편종교가 가능해졌다는 얘깁니다. 지금 시기는. 예전에는 아무리 예수님이 오고 부처님이 와도 한 지역을 못 벗어났는데, 지금 우리가 다 같은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의 유사한 지금 하나의 도덕률만 딱 이렇게 삽시다라고 얘기하면요, 사단 툴, 우리가 지금 만약에 세계에 알린다고 치죠.
아프리카까지 다 퍼질 수가 있어요. 공통의 경험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에. 예. 인터넷. 인터넷 없었으면 제가 이런 작업을 이 짧은 시간에 할 수가 없어요. 인터넷 치면 다 나오니까 제가 인터넷 다 해가지고 유불선 기독교 온갖 비밀스런 정보를 다 구해다가 정리를 해서 만든 거잖아요. 인터넷 없었으면 정리가 안 됐고요, 스마트 폰이 없었으면 보급을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쉽게. 그러니까 역사상 없던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세계 문화가 하나로 꿰어지고 돈 때문이긴 하지만. 원래 그래야 사람들이 움직여요.
돈을 거니까 에고가 움직인 거죠. 잘려다가도 그래도 일어나서 더 하자.하는 게 돈이 있으니까 걸려있으니까 다 했죠. 이익이 걸려있으니까. 그런데 이거는 문제점을 너무 많이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보살은 뭐든지 안 좋은 것도 잘 살려 쓸 수 있어야 되요. 컵이 깨졌으면 다른 거로 쓸 수도 있어야 되요. 이 세계화의 부작용도 있지만, 잘 활용하면요, 엄청난 지구가 다 함께 깨어날 수도 있는 지금 시대가 온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부분을 살려서 잘 활용하시기만 하면, 보살들 아니고는 그걸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부작용 오면 대책 없이 당하는 게 중생이라면요, 보살은요, 뭔 일의 부작용 생길 때 그걸 활용할 수도 있어요.
그걸 활용해서 평소에 못하던 거를 해결해 버릴 수도 있어요. 이해되시죠? 뭐죠? 뭐 자빠진 김에 잔다고 이렇게 뭔 일 생겼을 때요, 그걸 활용할 방법을 꼭 생각해요. 아니 내가 통 못 쉬어서 이런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한숨 주무시고 일어나도 되잖아요. 마찬가지에요. 늘 이렇게 이 상황을 갖다가 뭐죠? 열린 마음으로 보고 나와 남한테 뭐 도움 될 거 없나하고 보고 있는 게 보살이니까 이왕 세계화가 됐단 말이죠. 그럼 뭐가 도움 될 거 없나. 그러면 지금 우리나라가 제일 좋아요. 어느 한 나라에서 세계 질러버리면요, 이렇게 노는 게 재미있다고 해버리면, 전 세계가 똑같이 말춤 추고 있잖아요. 똑같이 할 수도 있는 시대라는 거예요.
이건 예전에 없던 시대에요. 예수님이 이런 시대에 오셨으면요, 아마 지구 그냥 털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 당시에는 안 되잖아요. 그런 게 가능해졌다니까요.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 보세요. 그래서 이렇게 연구하시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더우신데 고생하셨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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