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37.흥여회 총회 모임중 - 파랑새_윤홍식

Buddhastudy 2013. 6. 2. 20:57

출처 : 홍익학당

 

여러분 에고가 멈추실 거에요. 그때 내면을 보세요. 소리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요 소리로 에고를 잡으시고 [모른다]를 하고 내면을 들여다보시는 겁니다.

(....)

소리를 잘 들으세요.

(....)

(....)

 

 

소리에 몸을 맡기십시오.

(....)

이것도 에고를 틀어막는 수단이죠. 에고 입을 딱 다물게 하는 수단에 소리도 가능하고요. 신체적 접촉, 여러 가지가 다 가능해요. 침묵이오. 어떨 때는 선사가요, 아무 말 안하는 게 상대방의 에고를 입 다물게 할 수도 있고요. 어떨 땐 제가 몽둥이를 막 치켜들고 주장자를 쳐들어서 입을 막을 수도 있고요.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요, 소리를 들려줄 수도 있고요. 화두를 하나 던져준 것도 그중에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런데 나는 소리로만 참나가 보이더라. 나는 화두를 들어야만 보이더라. 이런 게 다 말이 안 되는 소리죠. 달은 허공에 있고 손가락은 천만 개를 가리킬 수도 있는데요. 손가락 하나하나 신경 쓰이면 공부 못합니다. 달만 봐야지. 문제는 그 손가락이 달을 확실히 가리키더냐? 그게 문제지. 달을 딱 봤으면 안거죠. 소리를 지금 치든, 아까 모른다를 하시건, 좋은 예술 작품을 보건, 다 그 자리로 돌아가는데요. 그래서 일상에서 그 자리를 발견하고 사시는 분은요, 보살 이런 거 다 떠나서요, 행복하게 사시는 거에요. 그걸 못보고 사는 사람한테는 얼마나 인생이 비극일 수도 있고, 그 순간순간이 힘들 수도 있는데.

 

힘든 순간에도 힘든 걸 초월해 있는 자신의 근원을 계속 보시면서 가시는 분은 힘든 걸 중화시키죠. 그래서 제가 한 다른 얘기들은 다 잊어버리셔도요, 요 느낌이요, 요 느낌이 모든 것에 답이다. 이렇게 좀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쉬워서 못 찾아요. 제가 봐서는 너무 쉬워요. 파랑새처럼,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거고, 내가 갖고 있는 거에요. 나라는 존재감을 못 느끼시는 분은 없거든요. 그게 참나라고 누가 생각을 하겠습니까? 내가 찾아야할 참나는 있잖아요. 우리 부모는 원래 뭐~ 대게 부잣집이고 이럴 거야. 자기 마음대로 자기 참나를 상상하는 건데. 그 상상하고 있는 나가 참나인데요.

 

그래서 일반인도 모를 수가 없는 게 왜 지금 어렵지 않다고 설명하냐 하면요, 일반인두요, 당신한테 있어서 제일 확실한 게 뭡니까? 하면요, 내가 존재한다는 거라고 밖에 말 못할 겁니다. 사실은 거기가 참나라는 겁니다. 참나다 보니까 누구 내부 안에 있더라도 그게 제일 자명하게 드러나 있어요. 지금 가만히 있어도 내가 있다는 거에 대해서 의심 안하시죠? 거기가 참나에요. 에고는요, 에고는 늘 요동하는 자리이지 그렇게 확신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왜 확신이 들까요? 내가 있다는 거에 대해서. 진짜 강력하게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 자리를 딱 찾아보는 겁니다. 뭐가 내 안에 단단하게 버티고 있지? 하는 거.

 

왜 내 존재를 의심할 수 없게 까지 나한테 강렬한 이 자명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자명함은 참나 밖에 못줘요. 에고는 절대 자명함을 못줍니다. 에고는 긴가 민가로 빠지게 하지. 맞다. 여러분이 탁 맞다라고 하실 땐 참나가 작용이 됐다고 보시면 되요. 그런 자명함은 참나에서만 그 빛이 나와요. 자명하다는 건 빛이거든요. 그 빛이요, 달이 빛나는 거 같지만 달빛은 태양에서 온 거죠. 에고를 달이라고 보시면 되요. 에고는 태양빛을 반사할 수 있을 뿐이에요. 달이 환하다. 내 생각이 자명한거 같다할 때는요, 참나가 빛이 아주 제대로 쏘고 있을 때입니다. 달은 그런 게 없어요. 달은 의심하는 자리에요. 에고는요. 이럴까? 저럴까? 이럴까? 저럴까? 하는데.

 

참나의 빛이 탁 들어오면 에고가 탁 말이 없어지면서 맞다로 갑니다. 예쁘다. 맞다. 아름답다. 딱 끝나는 건요, 달에 태양이 그냥 정면으로 쏘고 있는 경우에요. 그런데 태양빛이 점점 사그라들면 달은요, 달의 소리가 커지죠. 어둠이 커집니다. 달의 어두운 부분은 계속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고 보면 되요. 이럴까? 저럴까? 이럴까? 저럴까? 달은 원래 그런 자리니까요. 생각하려고 나온 자리이기 때문에 계속 고민만 합니다. 달은. 태양빛을 딱 만나야 환하고 선명해 집니다. 그러니까 아까 2x2=4 했을 때 여러분이 선명해 졌다면 참나가 드러났기 때문에 그래요. 이 원리를 계속 내면에서 관찰해보세요. 제가 믿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탁탁 맞다하고 말 나올 때 보세요. 관찰해 보세요. 내면을. 에고가 탁 말을 멈추고 대게 선명함이 감돕니다. 잠깐이라도. 그 선명함이 없다면 여러분이 탁 맞다라는 말을 못하고요. 그 선명함일 때는 기분도 대게 좋아져요. 만족감이 확 일어납니다. 순간적이나마. 그 선명한 게 거치고 나면 다시 어두워져요. 그러니까 우리가 명상할 때는요, 좋은 생각이 나면 아~ 맞다. 하고요. 의식이 탁 떨어지면요, 그 빛이 딱 가고 나면요, 아까 맞다고 한 것도요, 다시 의심스러워요. 뭐지? 이게 맞을까? 과연? 아까는 내가 기분이 그랬는데 그 기분은 어디서 왔을까? 맞다라고 하는 기분. 그게 참나가 드러나서 그래요. 참나가 지금 에고가 더 세지고 참나가 가려지니까 바로 의심이 생겨요.

 

생각해보세요. 명상 잘될 때랑 안될 때, 명상에서 언제 벗어났느냐를 알 수 있냐하면요, 잡음이 올라오기 시작해요. 그러면 아~ 내가 의식이 떨어졌구나. 알고 바로 [모른다]. 다시 하세요. 그래서 제가 수시로 부팅을 하라고 리셋 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자기가 관찰해보면 참나의 그 광명도는요, 자꾸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마음을 쓰면 쓸수록. 그러니까 나 지금 깨어있어라고 아까 지금 니르바나 느끼고 있어. 안심하지마시고요, 지금 느끼고 있나 또 보세요. 매순간 확인해줘야 이 게이지가 다시 올라갑니다. 확인하고 나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할 거에요. 게이지가. 선명도가. 그러니까 방심하지 마시고요, 아까까지 깨어있었어. 안됩니다. 지금 게이지 한참 떨어졌을 거에요. 또 보시고. 또 보세요.

 

아무리 봐도 이거는 그 부족한 게 없습니다. 또 보고, 또 보세요. 부처님도 그러셨고. 다 그랬어요. 어떤 성인도. 부처님이요, 선정 너무 많이 들면 무기력해진다. 그런 노력을 너무 많이 하면 산란해진다. 하지만 정령, 알아차림만은 아무리 과해도 부족하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과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얘기한거는 알아차림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다 뭔가가 과해지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어요. 너무 선정에 들다보면 움직이기 싫어지고. 너무 노력해야 된다는데 치중하면은 고요히 있기가 힘들고. 하지만 깨어있으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계속 깨어나야만 우리가 이걸 경영을 할 수가 있고, 주도권을 우리가 질 수 있거든요. 참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