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5)

[법륜스님 즉문즉설 1081회] 불교가 무엇인지 공부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Buddhastudy 2015. 4. 28. 22:08

 

 

불교라고 할 때는 2 종류가 있어요. 종교로서의 불교라는 게 있고, 진리로서의 불법이라는 게 있어요. 보통 불교라고 하지만, 불교 안에 굳이 물으니까 말씀 드리면, 종교로서의 뭐가 있다? 불교가 있고, 진리로서의 뭐가 있다? 불법이 있어요. 불법. 그러니까 종교로서의 불교라는 건 뭐냐? 기독교하고 비슷한 거요. 교회 갈 사람은 교회가고, 절에 갈 사람 절에 가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불공드리고, 복도 빌고, 이렇게 하는 게 종교로서의 불교이고.

 

진리로서의 불법이라는 것은 사람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스님이지, 이렇게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었다고 스님이 아니고, 마음이 청정한 자가 뭐다? 스님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고, 그다음에 기와집을 지어놓은 게 절이 아니고,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그게 바로 뭐다? 절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돈 버는 얘기, 출세하는 얘기, 서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다투는 얘기를 하면 이게 강당이 될 수 있어도, 우리가 여기서 인간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이 자리가 바로 뭐다? 법당이다. 이 얘기에요. 진리의 관점에서는.

 

진리의 관점에서는 불교니 기독교니 이런 걸 넘어선다. 그러니까 자기가 종교로서의 불교를 접하려면 의정부 주위에 절이 있잖아. 그죠? 이런 데 가면 되고, 진리로서의 불법에 좀 접하고 싶다. 이러면 지금 아까 제가 얘기한 대로 남편이 인색한 거를 나한테, 내가 돈 좀 쓰고 싶은데 안준다고 미워하는 거는, 중생심이라 그러고, “아끼는 건 좋은 거구나.” “또 저 사람 아껴봐야 나중에 못쓴다. 우리 아들 쓰고 내 쓰지 누가 쓰겠노? 그래. 많이 아껴라.” 요렇게 똑같은 사물을 나쁘게 보던 거를 내가 좋게 봐주는 것, 요런 마음을 내는 게 뭐다? 진리로서의 불법이에요.

 

그럼 이거를 원리적으로 설명하면 이래요. 저 사람 나쁜 사람이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다. 이거를 상을 짓는다. 그래. 나쁘다는 상이라 그래. 그런데 사실은 저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게 비상이에요. 상이 없다. 상이라는 건 없다. 저 사람 나쁘다. 이걸 색이라 그래. . 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걸 뭐다? 공이라 그래요. 그래서 반야심경에 뭐라고 나온다? 색즉시공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거요. 그러니까 저 분이 나한테 물을 때, “우리 남편이 이렇게 인식해서 나빠요.” 이러니까, 내가 그 돈 다 내 꺼다. 또는 아이고, 펑펑 쓰는 거 보다야, 아껴주는 게 좋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까, “그래 뭐, 별로 나쁜 인간 아니네.” 이런 생각이 들면, 그게 공이라는 거를 내가 아는 거요.

 

나쁜 사람이라는 게 본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좋게 생각하니 그 사람 어떤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구나. 이게 그럼 공이다.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마음이 좋게 생각하면 또 좋은 사람이 되니까, 그게 뭐다? 공즉시색이다. 이런 뜻이 되요. 그러니까 스님이 여기서 색즉시공은 뭐고, 공즉시색은 뭐고, 이런 얘기 안하고, 그냥 저 분 얘기, 남편이 이렇게 이렇게 나빠요. 하니까 내가 또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니, 괜찮구먼,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원리가 다 그런 거요.

 

이렇게 되면 마음이 어때요? 나쁜 인간하고 사는 게 내가 행복해요? 인색한 인간하고 사는 게 행복해요? 근검전략하고 사는 인간하고 사는 행복해요? 근검전략하고 사는 인간하고 사는 내가 행복해요. 우리 남편이 인색한 인간이다 하면 나쁜 놈이 되고, 우리 남편은 근검전략 한다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러면 우리 남편이 좋은 사람이다그러면 우리 아들도 좋은 아이들이오. ? 좋은 아버지의 자식이니까. 그런데 내 남편이 나쁜 놈이다.’ 그러면 우리 아들도 안 좋아요. ? 나쁜 놈의 자식이니까 그게 뭐? 자기 아버지 닮아 똑같지 별 볼일 있겠어? 그죠?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는, 내가 행복해야지 이렇게 한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인색한 남편이다. 하고 생각하는 거는 , 검소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서 나의 행복이 시작이 된다. 이렇게 공부하는 걸 뭐라고 그러냐? 불법을 공부한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용어를 불교 용어 안 써도 불법은 할 수 있어요. 그럼 이런 원리를 성경 속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없을까? 있어요. 그러니까 진리의 측면에 가버리면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걸 넘어버려요.

 

종교의 측면에 내려오면 불교하고 기독교가 서로 싸우게 되요. ?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네가 낫다. 내가 낫다. 이래요.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과 대화하는 거는 진리의 측면에서의 불법을 얘기하는 자리다. 그럼 그런 공부를 하려면 그럼 굳이 절에 가도 되고, 굳이 절에 안가고, 자기 집에서 해도 되요. 아까 저분이 남편 미워하다가 인터넷에서 유튜브 보고, 마음이 많이 좀 진정이 되었다. 그럼 저 분이 조금 행복해졌다는 거요? 안 그러면 괴로움이 좀 적어졌다는 얘기지. 그럼 그렇게 집에서 TV보면서 그렇게 마음이 바뀌면 그 지금 앉은 자리가 뭐다? 절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방법을 하는 것은 우선 이런 법문을 자주자주 시간 내어서 듣는 것도 불법을 접해가는 기간이고, 또 여기 보면 나중에 나가다보면 여기도 그런 거를 혼자 안하고, 혼자 집에서 하면 하다말다하다말다 이러니까, 그럼 5, 10명 여기 모여서, 여기 사람들 모여서 공부하는 자리가 있거든요. 교회 다니는 사람도 와도 되요. 진리의 세계인 불법의 세계에서는 교회 다니든, 종교가 있든지, 불교에 다니든, 그런 걸 안 따져요. 마음 공부하는 데니까. 이따 나갈 때 팸플릿 가지고 가서, 한번 참여해보고, 마음에 들면 어때요? 거기 다니면서 공부하고.

 

별로 마음에 안 들면 이건 자유니까, 안가면 되요. 집에서 TV보고 혼자해도 되고. 또 아쉬우면 가까이 있는 절에 가서 또 공부해도 되고. 그러니까 생활 속에 진리가 있다. 그러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