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5)

[법륜스님 즉문즉설 1088회] 상담사로 일할 때 내담자가 분노를 표출하면 어떡하죠?

Buddhastudy 2015. 5. 7. 21:28

 

 

 

그렇게 안 되면 자기는 상담자 안 되면 되지. 그게 뭐 어렵다고. 그럼 뭐 하러 갔냐? 노가다가가지고 나는 힘들일 하기 싫어요.” 이런 말 하고 같지. 마음의 폭을 넓히는 건 없어. 돈을 받았으면 밥벌이를 해야 되니까, 때리면 맞고 있는 거지. 노가다 가면 지게 짐, 등짐 져라.”하면 지기 싫지만 져야 되는 거고, “계단 올라가라그러면 올라가야 되는 거고, “쇠 잘라라그러면 잘라야 되는 거고, 그래야 돈을 주지. 돈 받으려면 힘들어도 해야지. 공짜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자기가 상담을 직업으로 가지면, 그런 사람이니까 자기한테 와서 상담하지. 자기가 생각하듯이, 아주 좋은 사람이면 상담을 뭣 때문에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그게 부모도 어떻게 못하고, 자식도 어떻게 못하고, 누구도 어떻게 못하고, 난폭하든지, 괴팍하든지, 우울하든지, 뭔가 하니까 자기한테 와서 묻는 거 아니겠어? 돈 내고라도 하잖아. 병이 났으니까. 쉽게 얘기하면, 왜 환자만 오느냐? 이러면 어떻게 해? 건강한 사람 좀 오지. 건강한 사람 거기 찾아 안 와. 정신적으로 어려우니까 자기한테 찾아오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자기는 그걸 받아들여야지. “아이고, 나는 중병은 안 왔으면 좋겠다.” 아이고. .

 

내공하고 관계없다니까. 관점을 일하러갔으면 힘든 일을 받아야 되고, 의사가 되었으면 뭘 받아야 된다? 환자를 받아야 되는데, 왜 다리가 부러진 게 오노? 건강한 것만 오지. 이러만 안 된다니까. 피를 철철 흘리고도 오고, 죽어가는 것도 오고, 그러다 죽기도 하고. 의사가 되어서 환자가 죽으면 얼마나 의사라도 가슴 아프겠어. 그래도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면, 난폭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으로 우울한 사람도 있고, 일반적으로 이렇게 가족관계나 학교 선생님이나 이렇게 해서 상담이 안 되는 사람은 누구한테 보내진다? 전문 상담사한테 보내지는 거 아니오.

 

그러면 보통 사람이 전혀 아닌 사람을 자기는 평생 상대하고 산다. 그러면 그 직업을 갖는다면 그렇게 되는 거고. 그러면 그게 싫으면 안해야 되는 거야. 의사는 평생 육체적으로 병든 사람만 상대로 하는 것처럼, 정신적인 정신과나 상담사가 되는 거는,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환자를 평생 상대하는 거요. 돈을 받든 안 받든 관계없이. 자기 선택 잘못됐지. 그건 내공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 딱 입장이 그러면 그건 내공하고 관계없지.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자기가 느끼기에 그렇지. 옆에서 보기에. 아까 얘기했잖아. 자기도 고생을 많이 해 봐. 다시 말하면 자기가 상담을 할 때, 고함을 치고, 소리치고, 욕설하는 사람을 상담할 때 힘들다할 때, 어떤 사람이 힘들고, 어떤 사람은 힘 안 드는데, 나는 욕설하는 정도가 아니가, 뺨 때기도 맞아보고, 책상도 부러뜨리고, 엄청나게 폭력적인 이런 사람을 매일 하루에 한건씩 상담하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막 욕설하는 정도면 내가 웃을까? 난리 피울까? 웃겠지. 자기는 아주 착실한 어린애들이나 상담하다가, 갑자기 와서 욕하는 그런 사람 만나면 자긴 정신 못 차리겠지.

 

그러니까 자기가 여러 가지 어려운 상담을 견뎌내려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 제일 심한 환자를 처음부터 먼저 경험하면 돼. 그런 경험해서 거기서, 그게 아, 그 일상화 되면 어떠냐? 나머지 보통 이런 얘기는 아주 쉬운 거야. 예를 든다면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피하려고 그러면 자기는 상담자가 되기가 어려워. 그리고 두 번째는 상담을 하니까 자긴 벌써 생각이 스님이 좋은 답을 한다. 이러잖아. 그건 자기가 상담의 선생의 입장이 잘못된 거야.

 

상담자의 첫 번째 조건은 내가 상대를 어떻게 할 수 있다. 이거는 상담자의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이야. 상담에 시옷 자도 모르는 사람이야. 어떤 인간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게 전제가 되어야 돼.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없다? 없다. 만약에 그 사람 나한테 대화해서 도움이 되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 “내가 만약에 얘기해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게 나의 영향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럼 안 된 사람은 누구 탓이다? 내 탓이지. 어떤 신도가 저그 아들 대학 시험에 걸렸다고 나보고 스님 공로라 그래. 밥 사준데. 그래서 내가 싫다고 그랬어. 그래서 왜 그러냐? 그래서, “너그 아들 대학에 걸린 게 내덕이면, 우리 신도 중에 떨어진 건 다 내 탓이다.” 논리가 그렇게 가야 맞지 않아요?

 

그런데 뭣 때문에 내가 그 밥한 그릇 먹고 떨어지는 사람 다 내가 책임져야 돼? 그렇게 때문에 그거는 그 사람의 몫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걸 딱 먼저 생각해야 되는데, 벌써 저렇게 생각하면 저건 상담하기 힘들지. 아무것도 도와줄 수가 없어.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럼 안하면 되느냐? 안하는 게 제일 좋지. 그래도 해야 되면, 첫 번째 할 수 있는 게 있어. 뭐다? 들어주는 거. 들어주는 거 쉬울까? 어려워. 들어주는 건 쉽지 않아. 부부가 다 싸우는 거는 말해 줄줄 몰라서 싸우나? 못 들어줘서 싸우나? 못 들어줘서 싸워. 못 들어줘서.

 

그러니까 첫째는 들어줘야 돼. 어떤 얘기든지 들어주는 마음. 들어주려면 마음을 비워야 돼. 얘기하는 거 보고, 이거는 옳으니 이건 틀리니, 이건 맞느니, 이건 학생이 그런 말하면 되니? 안되니? 이런 생각하면 상담자 될 자격이 없어. 그러니까 먼저 들어줘야 돼. 상대는 거기 괴로워서 하는 얘기인데, 시간이 없어서 못 들어주면 미안하다. 시간 없다.” 그러면 되지만, 들어주는 거. 두 번째는 들어주면 끝이야. 대부분 80%는 말하고 싶은데 말할 때가 없어서 병이 나기 때문에 들어주면 되요.

 

두 번째는 그래도 도움 좀 달라고 하면 사실은 상대가 도움 주면 싫어해요. “니 잘났다.” 이런 생각이 들어. 그래도 도움을 달라하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좋아요. 내 경험에 의해서 나도 그런 경험이 있을 때는 내 경험을 얘기해주는 거요. “이러면 된다.”고 말하지 말고. “, 나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상대의 들어주고 공감. 공감을 해준다. 나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이게 중요한 거요. 그래서 내경험을 얘기해 주는 거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렇게 했다.” 이렇게 접근해야 돼. “이러면 된다.” 이러면 안 되고.

 

그러면 상대가 선택을 하는 거요. 그건 대부분 그거? 이러면 돼.” 그건 맞지도 않고, 경우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다음 두 번째, 별 효과도 없어요. 상대가 그거 들으면 특히 친구지간에나 비슷한 경우에 들으면 기분 나빠요. “그래, 니 잘났다.” 이렇게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상담하는 사람 제일 쉬워요. 뭐만 하면 된다? 귀머거리만 아니면 되요. 그냥 들어주면 돼. 그런데 보통 대부분 못 들어줘요. 분별심이 생겨서. “니 틀렸다. 니 맞다.” 아내가 와서 남편 욕하면 자기가 분개해서 그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이렇게 돼.

 

그건 내담자에게 빨려 들어가는 거요. 내담자에게 빨려 들어가면 상담자 안 돼요. 그건 그 사람이 그렇다는 거요. 그 사람 마음이 그렇다는 거요. 그 사람 남편 욕할 뿐이지. 남편을 여기 개입 시키면 안 돼요. 그냥 음 이 사람 남편 때문에 힘들구나.” 그게 남편이 잘못했는지, 아내가 잘못했는지 이런 걸 따지면 안 돼. 그냥 남편 때문에 힘들구나.” 이렇게만. 그래서 그럴 때, “그건 말이야 네가 잘못했지. 남편이 그런 거 아니야.” 이러면 상대의 생각을 못 받아주기 때문에 반발이 일어나요. 덩달아서 그래. 그 남편이 그래? 그 나쁜 놈이구나.” 이러면 이 사람에게 동조해서 따라가는 거요. 빠지는 거요. 그래서 거기로부터 좀 자유로워야 돼. 그냥 ,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구나.” 이렇게만 그냥 들으면 돼. 그렇게 하면 별 힘들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