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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8_4. 간질병에 걸렸으나 언제쯤 돈 벌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Buddhastudy 2017. 8. 3. 20:14



사연주신 분의 이야기에서 끝날 것이 아니고, 이 사회에는 이런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사회가 변화되어주고 있고, 그 변화된 사회 속에서 국가가 많은 손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한 부분이 무척 많지요. 물적 부분이나 사회 환경이라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런 부분의 처지에 있는 분들이 조금은 일반적인 사회와 같은 부분의 선상에서 사회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보는 세상이 세상의 다라고 하는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게 보면 이런 분들은 출발이 좀 느리신 분들이잖아요. 남들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갈 때 간질이라고 하는 병을 얻어서 학교를 못 갔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요. 그리고 또 사회가 그들을 안아줄 만한 사회의 환경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이야기하고 있는

 

명품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좋은 명품이라 하더라도 내 몸에 맞아야 명품이지,

내 몸에 맞지 않는 것은 명품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소위, 메이커가 있는 옷이라고 하더라도 나보다 훨씬 더 크거나 적으면 가치가 없는 것 아닙니까? 내 몸에 탁 맞는 옷이 멋스러운 옷이듯이, 이런 분들이 사회를 생각하고 있는 구조를 나는 나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내 입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면 되는 거예요.

 

수년 전엔가 제가 잘 아는 지인 중에 한분이 아주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분 중에 한분이었어요. 3남매를 두셨어요. 그런데 큰 아이가 병원에서 탯줄을 잘못 잘라서 감염이 되어서 간질이 왔어요. 그래서 이분이 아이를 그냥 장애우로서 기르고 싶지가 않았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업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정상적인 아이들의 학교를 보낸 거예요. 그 아이를 정상적인 아이들과 더불어 그 학교를 보낸 이유는 뭐냐 하면 이 아이가 언젠가는 정상적인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거죠.

 

6학년까지 다니다보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를 특별히 돌보고 싶지만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하도 다른 모습의 아이이기 때문에 왕따를 시키고, 그래서 아이는 점점점점 상처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 상처를 키우는 과정이 세상을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저항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다보면 충분히 자식 사랑하는 애끓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겠으나, 저는 그 방법이 옳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궂은일은 그 어머니가 다 맡아서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방법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겠다는 답을 가지고 중학교를 보내야 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저한테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뭐라고 이야기를 했느냐하면,

같은 백미터 선상에서

거의 같은 조건에 있는 아이들이 게임을 해야 되는 거지,

전혀 수준이 같지 않는 아이들과 자존심만 갖고 게임을 했을 때는

백번 피해자를 만들 수밖에 없는 거다.

 

제가 판단해 봤을 때는 조금 마음에 아프시겠지만,

이 아이를 그 몸이 편하지 않는

아이들끼리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학교를 통해서 공부하게 하고,

그런 학교를 통해서 직업을 갖게 하고,

그런 환경을 통해서 거기서 위를 자존감을 길러줘라.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 부모는 딴 사람 말은 듣지 않아도 제 말은 들었어요. 그래서 그 아이를 장애우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일반 학교에 다녔을 때는 난 맨날, 난 당연히 꼴지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 날 그 학교에 가서 성적표를 받아서 왔는데 1등을 해갖고 왔습니다. 1등이라고 하는 자존감, 그를 행복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그는 완장도 찼어요. 그곳에서 반장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 현재에는 일정부분의 나이가 되어서 부모의 신세를 짓지 않고 그룹에 가서 그들끼리 삶의 행복을 누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일반적인 상식을 통해서 경쟁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그들이 그 일을 행복하게 겨루어갈 수 있는 환경을 통해서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성공하는 삶의 방법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경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남이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그곳은 내가 갈 세계가 아니고,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내 존재감을 한번 만들어보겠다.

 

지금 말씀주신 이런 분들 같은 분은 절에 와서 봉사도 하셔도 좋구요, 할 수 있는 일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왕이면 내가 나를 돌이켜 나를 칭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확인해 갈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첫째 서두르지 마라. 이미 이젠 그만해도 다행이다. 내가 간질로서 너무 불행했던 어떤 그런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지금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으니 난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련다하는 한 발짝 한 발짝 세상을 향해서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매순간 최선을 다해라.

나는 부족해. 부족해.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만해도 다행이야.” 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환경,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

내가 할 수 있는 조건 정도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이 200만원 300만원 받으니까 나도 200만원 300만원이라면 일자리가 하나도 없을 거예요. , 나는 조금 늦게 출발했으니까 내가 조금 덜 쓰고, 내가 조금 더 조건이 좋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나는 행복해라고 하는 것으로 좀 긍정적 사고를 한다고 그러면 그래도 뭔가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그 다음에 나는 뭘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라고 얘기할 게 아니고 찾아봐야죠. 제가 아까 얘기했잖아요. 젊은 사람 나와서 일을 해라 이거야.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조금 불편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겠죠. 내 입에 맞는 떡은 없어요. 세상을 살아보니까 그렇잖아요. 저 봄볕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그 봄볕에 잔디밭이 푸르러서 저 캠퍼스에 저 멋진 잔디밭에 가서 한번 놀고 싶다고 나가서 보면, 막상 자리 깔고 앉아보려고 그러면 시원찮은 곳이 더 많지, 마음에 쏙 드는 곳이 많이 않잖아요.

 

보여질 때는 환경은 그렇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나를 환영하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적응하려고 자꾸 애를 쓰고, 그 존재감에 대해서 찾으려고 애를 쓰다보면, 분명히 이런 의지가 있는 청년,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도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불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