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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록] 한혜진, 안병하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6. 28. 19:49


손을 들고 나와라. 투항하라.

시내 모든 주요시설은 군이 완전히 장악했다.

투항하면 생명을 보장한다.

 

경찰의 방침

절대 희생자가 발생 않도록 (경찰의 희생자가 있더라도)

 

 

5월 광주는 저에겐 좀 특별해요.

여기 모인 사람들 난 관심없어.

목적이 나랑 같다면 난 그거로 충분해.

저기 우리 엄마...”

-영화 <26>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2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무래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 굉장히 민감한 얘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고민도 많이 됐었는데

희생자들을 기리고 그런 억울함을 세상에 더 기억하게 할 수 있고

들어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저에게 주어진 거니까, 감사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영상이랑 희생됐었던 분들의 사진들을 많이 봤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잔인하고 혹독했었던 그런 기록들이라서 참 충격적이었죠.

이게 정말 실제 일어났었던가?

 

19805월 광주

치안책임자는 전남 경찰 국장 안병하

시민들 사이엔 경찰의 가족도 이웃도 있을텐데, 경찰이 무기를 쓸 수는 없다.

 

안병하 치안감은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끝가지 거부했습니다.

도망가는 시민을 쫓지 말라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안병하 전남 경찰국장

 

김종필, 이희성 등과 육사 동기

육군 사관학교 출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무능한 경찰로 몰리고 맙니다.

직무유기 혐의로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부하들에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사표를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8

통한의 세월.

안병하 치안감이 생전에 작성해 놨던 비망록엔

5.18 당시, 그가 경찰들에게 하달했던 방침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요

 

일반 시민들 피해 없도록.

주동자 외에는 연행하지 말 것

경찰봉 사용에 유의.

시민들에게 반말 욕설 금지

그리고 안병하 치안감이 805월 현장에서 목격한 5.18 발생원인

 

‘5.18은 신군부가 과격한 진압과 유언비어 유포를 통해

시민들을 자극해 발생했다.’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그러나 어떤 이는 다르게 말합니다.

광주 사태 초기 계엄군 시위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안병하 전남 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

-전두환 회고록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안병하 치안감이 물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안병하

 

안병하 치안감,

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민의 경찰이 되어야 한다.

안병하 (1928.07.23~1988.10.10)

 

 

한헤진,

안병하를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