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무소유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명을 해드려야 할까?//
학문의 원래 뜻은 ‘무소유’에요.
그러니까 소유가 없다.
‘이 물병은 누구의 것인가?’ 할 때,
‘이건 나의 것이다.’ 나의 것, 할 때 소유잖아. 내 소유다.
그런데 사실은 이 물병은
내 소유도 아니고, 너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요.
그러니까 천하 만물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저 태양도, 저 별도, 저 달도 누구의 것도 아니듯이
이 공기가 누구의 것도 아니듯이
천한 만물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는 게 무소유에요.
그런데 무소유는 내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다.
이렇게 약간의 언어적 오해가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가졌냐? 안 가졌냐가 아니라,
이게 본질적으로 내게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누구든지 필요에 의해서 쓸 수 있는 거다. 이런 얘기죠.
그리고 우리가 법당에 만약에 방석이 100개 있는데,
거기 다 자기 방석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내꺼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으면
신도가 500명이 있으면 100개의 방석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방석이 남아 있어도, 법당에 온 신도는 방석이 없어서 바닥에 앉아야 되고.
그러니까 방석은 남아 있는데, 역시 방석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거죠.
그런데 무소유가 되면 어떠냐?
방석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누가 써도 좋기 때문에
이 법당에 50명이 오면 50명이 쓰고, 또 두고 가면
다음에 100명이 오면 100명이 쓰고,
그래서 방석이 100개지만, 500명이 아무런 불편 없이 쓸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무소유야 말로 경제적으로 훨씬 효율적이에요.
그런데 현대 사회는 이 소유개념이 너무 강하니까,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생기죠.
수없는 건물과 집과 물건들이 쌓여서 재고가 남는데
정작 사람은 그 물건을 쓸 수도 없고, 잘 집도 없고, 쓸 공간도 없는 이런 현상은
소유개념이 지나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요.
그래서 무소유는
무슨 비자본주의적이고, 비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거야 말로 자연의 원리이고,
삶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그런 개념이다.
그래서 잘못 알아들으면
‘빨가벗고 옷도 안 입고 다니는 게 무소유다.’ 이렇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든 크든
‘그것이 내거라고 고집 할만 건 아무것도 없다.’ 하는 개념이
무소유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법륜스님 > 즉문즉설(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12회] 가족 챙기다 보니 저 자신은 못 챙겨요. (0) | 2018.07.30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11회] 아들이 방안에만 있어서 답답해요 (0) | 2018.07.27 |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2016출가콘서트 (1) 불안과 걱정 (0) | 2018.07.24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10회] 남에게 상처를 입고 싶지 않아요. (0) | 2018.07.23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부족한 것을 인정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 (0) | 2018.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