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저의 매우 사사로운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저의 이름은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닙니다.
남녀가 모두 쓸 수 있는 어감이긴 하지만, 같은 이름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지요.
초등학교 시절, 같은 학년 여학생과 이름이 같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본 기억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빙판에서 제 이름이 불려왔습니다.
그것도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는 쇼트트랙에서...
이 선수는 또래에 비해 훌쩍 큰 키로 눈에 띄더니 그 성적 또한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단체든, 개인이든, 계주든 늘 믿음직스럽게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계 올림픽 때가 되면 이 선수의 동정에 더 관심이 가고, 저도 모르게 더 응원을 하곤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다가 빙판에서 넘어져 나뒹굴기라도 하면 제 입에서 ‘어이쿠!’ 소리가 남들보다 두 배 정도는 더 크게 나왔을 듯합니다.
심석희 선수...
성은 저와 다르지만 발음은 자칫 맥 놓고 들으면 그마저 저의 성과 비슷하게 들려서 가끔씩 언론에는 손석희 선수라고 나오는 경우까지 있었지요.
그가 선수촌을 나와 버렸을 때도, 또 자신을 때린 코치를 고소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리고 우리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한 성폭행 피해 소식이 나왔을 때도 일부 보도에서는 여전히 손석희 선수라고 부르고 있었으니까요.
시실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선수촌을 나왔다는 것을 저의 이름으로 잘못 낸 기사로 보기 훨씬 전부터,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것 같았고, 점점 더 우울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일련의 일들...
생각해보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만큼 그가 겪어냈어야 할 야만은 잔혹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또다시 술렁이고 무엇이 더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지만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는 오늘 다시 링크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가 다시 그의 큰 키만큼 그의 삶도 성장하고 또한 그만큼 스케이팅도 행복하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전히 언론에는 쇼트트택 선수로서의 그가 등장하고 또 가끔씩은 제 이름으로도 등장해서 저도 주변에 으쓱대며 얘기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래도 그가 빙판에서 엉덩방아를 찧어서 제 입에서 남들보다 두 배 큰 소리로 ‘어이쿠’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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