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29회 108배 하는게 너무 싫어요.

Buddhastudy 2012. 10. 13. 04:10

출처 YouTube

 

안 해도 됩니다. 안 해도 괜찮아요. 108배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을까? 안 하는 사람이 많을까? 안하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 그래도 이 세상 잘 돌아가요. 불자 중에도 108배 안 하는 사람이 많고. 스님 중에도 매일 108배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108배 안 한다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본인은 해야 돼요. 천하가 안 해도 괜찮은데. 왜 본인은 해야 되느냐? 좋고 싫고는 우리 업식으로 부터 일어납니다. 좋고 싫고가.

 

그런데 이 좋고 싫고를 따라가면 좋다고 행하고 싫다고 거부하고 이렇게 따라가는 거는 업식의 노예가 되는 거요. 그 업식에 끌려다니는 인생이다. 이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업식의 노예로부터 벗어나는 거요. 그 업식의 노예가 돼서 늘 계속 반복되는 거를 우리가 윤회라 그래. 윤회로부터 벗어나야 되.

 

그러니까 짜증을 내고 싶어서 내는 게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나고,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나도 모르게 졸리고, 이런 식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것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려면 이 좋고 싫고로 부터 자유로워야 돼. 그래서 신심명 첫 구절이 뭐요? 至道無難지도무난 아니요.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는 짓만 안 하면 된다.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는다 이 말이 좋고 싫고에 끄달리지만 않으면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본인이 지금 자기 입으로 뭐라 그랬어? 절하기 싫다 그랬지. 그러니까 그건 해 버려야 돼. 싫은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해 버려야 돼. 뿌리를 뽑아 버려야 돼. 그래서 절 그 자체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본인이 절하기가 싫다. 그래서 안 하면 업식을 따라 하는 거요. 어떤 사람이 저는 절하는 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러면 스님이 그냥 하세요. 그래. ? 절한다고 뭐 손해날 일 없잖아. 그죠?

 

그런데 저는 관절염인데요. 절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이래 말해. 그러면 절하다 죽든지 병신이 되든지. 병신이 안 되려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된다? 안 해야 되. 하고 싶은데 그 먹으면 병난다. 술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위궤양이에요. 이럴 때는 안 먹어야 되. 먹고 싶으면 과보를 받아야 되. 먹고 싶은 데로 따라가면.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도 손해가 따르면 어떻게 해야 된다? 안 해야 되고. 하기 싫어도 손해가 따르면 어떻게 해야 된다? 해야 되.

 

그런데 본인은 하고 싶고 하기 싫고를 너무 이 민감하기 때문에 늘 자기 까르마에 노예가 되어 산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요. 그러면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려면 과보를 받아야 됩니다. 그에 따르는 과보가 올 때 내가 아이고 그럼 뭐 그렇게 했는데 내 성질대로 했는데 당연히 과보를 받아야지. 이렇게 과보를 받아들이든지. 그 과보가 싫거들랑 인연을 짓지 말아야 되거든요.

 

그러면 좋고 싫고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되. 그런데 이 좋고 싫고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어렵습니다. 이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밖으로 천만의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것이 진짜 장부다. 그래서 부처님을 뭐라 그런다? 대웅이다. 그래서 대웅전이라 부르잖아. 큰 영웅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됐다면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연습을 해 봐야 되. 그러기 때문에 지금 온 갖게 있겠지만, 그 가운데 절하는 게 하나의 과제로 남았어. 그러면 이거를 내가 어떤 노예근성에서처럼 종교인이라 그래서 절이나 하고, 뭘 바라고, 빌고 그런 거 안 해도 돼. 그러나 하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내가 극복하는 수단으로 뭘 해본다? 절을 해 본다. 이렇게 입장을 딱 정해서 오늘부터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