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는 볼테르와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다.
현대사회는 그 사상의 결과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루소와 볼테르는 단순히 이성에 의한 진보라는 전면의 것만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과 역효과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간파하고 경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은 시대 정신을 이끌었지만, 개인적으로 행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은 발전해도 인간의 마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마음공부는 그래서 필요하다.//
지난 시간 볼테르에 이어서
오늘은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볼테르와 루소는 둘 다 프랑스 태생이고, 사실은 볼테르가 조금 더 나이가 많지만
1778년에 둘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1894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니까
생전에 혁명은 보지 못했으나
평생을 계몽사상과 사회의 변혁에 뜻을 두고 실천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채널이 마음공부에 관한 채널인데
왜 그러면 우리는 그 사회사상에 관심을 가지는가?
얘기는 이렇습니다.
계몽사상을 얘기하는 이유는
현재라고 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18세기 계몽시대 계몽사상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진 자유, 인권, 진보, 이성, 합리, 이런 모든 개념과 생활양식
이런 것들이 계몽사상에서 상당히 유래를 한 것이 많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계몽사상가들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만 얘기한 게 아닙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부작용, 피할 수 없는 어려움도
이미 다 생각하고 예측하고 사실은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정직한 통찰력이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결과로 이 사람들은 사회혁명, 사회변혁의 선몽에 섰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이 행복했냐?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것은 본인들의 생각과 행동과 고백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세상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복잡해지고 그다음에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커지고 이렇게 해서
식량이나 에너지 같은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될 수 있죠.
그건 발전입니다.
하지만 인간 개개인의 괴로움은 여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마음공부의 작업대상은 세상도 아니고 우주도 아니고
우리 마음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오늘날 사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든
18세기의 계몽사상가들을 들여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루소는 철학의 대상이 우주나 신이나 다른 타인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실존이죠.
그래서 필요한 모든 지식은 자기 성찰 속에 다 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중에는 이 사람이 참회록이라는 걸 쓰는데
자기가 선하지는 않아도 내가 다른 사람과 같지는 않다라고 하는 것을 내세웁니다.
실제로 이 사람의 인생은 개인사적으로 보면 행복이라든지 안전과는 좀 거리가 멀었던 인생입니다.
평생 어떻게 보면 불행했고 논쟁에 휘말렸었고 혼란스러워했고
또 어떨 때는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또 어떨 때는 빈둥거리는 백수였고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고
많은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직업들이 주로 을이죠, 을.
이게 나중에 사회사상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사람은 역마살이 있어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옮겨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누가 나를 쫓아온다고 하는 망상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우리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훌륭하고 모범적인 삶을 산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사기도 치고, 패륜 행각도 하고, 요즘 말로하면 바바리맨도 하는
자기 통제가 잘 안 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가졌던 그런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는 어느 순간에 터져 나와서
이 사람의 기본적인 기본형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사람 친구 중에 디드로라고, 이 사람도 계몽사상가인데
신성모독으로 감옥에 갇혀있던 친구를 면회하러 가던 도중에
인도식으로 얘기하면 몰아지경의 황홀경을 체험합니다.
엄청난 빛에 쌓이고, 그걸 느꼈다는 거죠.
흥분되고 취한듯하고 생각의 둑이 터져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생각이 밀려오고
그렇게 해서 30분 있다가 깨어보니
자기도 모르게 엄청나게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뭐 이런 얘기를 한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은 그때 자기가 느꼈던 것의 정말 희미한 그림자 일부분을 가지고
평생 내가 이야기하고 산다.
이렇게 이야를 했습니다.
이 사람의 그때의 느꼈던 것은 2가지인데
이 황홀경 체험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선하다.
가만 놔두면 선하다.
그런데 사회, 국가, 제도가 이 사람들을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들을 악하게 만들게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루소..는 사회질서라고 하는 것은 억압이고 모순이다,
이런 생각이 이때부터 일찌감치 정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또 그 대척점에서 인간을 자연 그대로 순수함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이런 생각들은
이 사람의 교육론, 사회개혁론, 모든 저작에서 동일하게 문제 제기 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의 원초적인 자연성, 자유, 그것과 사회국가의 억압성에 대신해서
이것을 다루기 위해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교육은 사회국가 편을 들 것인 거? 인간의 편을 들 것인가?
당연히 루소 입장에서는 이 교육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사회적 위상이 논문도 쓰고, 저서도 내고 이렇게 하면서 위상이 점점 올라갔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루소는 기질적으로 우울하고 또 병고에 시달리고 이랬습니다.
그래서 우울이 심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세상을 불신하게 되고
스스로 고독과 고립을 갈망하게 되고
그래도 병이 안 나아요.
거기다가 이 사람은 파리와 제네바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는데
파리와 제네바의 도시와도 불화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쫓아온다고 하는 추적망상증 같은 것도 있고
이렇게 해서 심신이 매우 피폐해지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죽음 이후에 명성이 더 올라가요.
왜냐하면 혁명이 임박했기 때문에
혁명이 그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루소가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한 거죠.
그래서 루소가 그러면 어떤 정신사적 의미가 있는 존재인가?
하는 것은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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