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10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 워킹맘입니다.
서류상으로는 이혼 절차를 마쳤지만, 아직 형평상 같이 지내고 있는데요.
10년의 결혼 생활이 어떤 이해나 사랑 없이 지내다 보니까 많이 외롭고 힘들더라고요.
신혼 초에 이제 전 남편이 부부관계가 잘되지 않는 그런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부부가 서로 만나서 같이 생활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예를 들어서
서로에 대한 신뢰에 바탕이 되는 혼인의 약속을 어기고 외도를 했다,
이러면 그것은 이혼 사유가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젠가 어떤 분의 내용을 보니까
남편이 직장생활만 할 줄 알지 가정에서 은행 계좌도 개설할 줄 모르고, 운전도 안 하려 그러고
어떤 것도 자기가 책임지지 않는다.
아이 교육에 대해서도 다 아내가 하고
그래서 이혼하려고 하는데 이혼을 안해준다, 이러거든요.
이혼하려 할 때 그 얘기는 여자입장에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남편, 부족한 남편이다,
이렇게 볼 수 있지만
그게 이혼 사유가 되기는 좀 어렵다.
남편이 동의를 해서 합의이혼을 하면 간단한데
남편이 동의를 안해주면 이혼하기 위해서 재판에 가게 되면
그건 이혼 사유가 되지 못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돈도 안 벌고, 행패를 피우고, 때리고 이러면 모르겠는데
그냥 직장생활만 하고 다른 건 좀 서툴러서 잘못하고 아내한테 엄마처럼 의지한다.
이게 이혼 사유는 될 수 없다.
부족한 남편인 것은 맞지만, 이혼 사유는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첫째는 남편이 동의할 때까지는 이혼이 되기 어려우니까
큰아들 하나 키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상황에서 적응해서 사는 게 어떻겠느냐 이렇게 조언을 했고
그 다음번 질문자는 자긴 오히려 자기 남편도 똑같은데
자긴 오히려 그래서 훨씬 더 좋다. 이런 또 문제가 나왔어요.
집안 일도 내 맘대로 하고, 돈도 내가 관리하고, 재산 증식 이런 것도 내가 하고, 아이도 내가 학교 보내고 다 결정하고 남편이 간섭을 안하니까.
그것 때문에 싸우는 집이 많은데
자긴 오히려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사니까 훨씬 좋다.
이런 얘기가 같은 즉문즉설 시간에 나왔어요.
그래서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지금 질문자는 외국에 갔는데, 외국인 남편과 또는 한국 사람하고 같이 가서 사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대가 외국인입니까? 한국 사람입니까?
외국인인데 한국계다, 이 말씀이죠.
그런데 지금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남자가 성기능장애가 있다는 얘기에요?
그런데 아기가 있다며요?
인공수정을 한 건 아니고?
..
두 가지 길이죠.
그냥 좋은 남편 만나서 좋은 아내 만나서 생활을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는
남편이 성기능 장애가 있다 이러면 여성에게나 또는 남성에게 한쪽이 그렇다면
그것은 괴로움이 될 거고, 그것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둘이 만약에 서로 사랑한다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런 장애가 생기면 삶에 있어서 한 부분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살아가다 남편이 돈을 못 벌어 부족하다든지
남편이 신체장애가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못 도와줘서 부족하다든지
이런 것처럼 성기능 장애로 인해서 내가 부부 관계에서 만족감을 못 느끼는
그런 장애가 있는 것은
우리가 결혼 생활의 전부가 아니고 일부분이다. 이렇게 봐야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내가 그런 부부관계의 성적인 만족을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기쁨, 가치관으로 느낀다면
“나는 돈도 싫고, 나는 어떤 것도 이거보다는 중요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대한 기쁨이 내 삶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혼을 하고
다시 남자친구를 사귀든지 재혼을 하든지 이 길을 가면 되고
그런데 우리가 보면 비구니 스님이나 또는 수녀나 이런 분들은
성적인 그런 것도 없이도 행복하게 살잖아, 그죠?
그리고 또 우리가 만약에 결혼을 안하고 자기가 산다면 가족들하고 같이 산다면
한 집에 오빠도 있고, 부모님도 계시고 이렇게 가족으로 어울려서 산다면
그런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도 한 집에서 가족들이 어울려서 잘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그런 가족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특히 요즘은 결혼 안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그런 어떤 공동체, 부부라고 하는 것이 성적인 것이 바탕이 되지만
상대가 성적인 어떤 결함이 있다, 그러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가족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리고 특히 100% 성기능 장애가 아니라 일상적 장애라면
아내가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아내가 좀 더 편안하게 협조적이고 이러면
일부 기능이 회복될 수도 있는 그런 문제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기가 선택을 해야 하고
그런게 있는데 자기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그래서 상대를 좀 장애인 취급한다. 내치는 그런 마음이면
남자는 더 부인에게 성기능이 제대로 작용할 수 없는
이런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한집에 사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빠하고 한집에 살 듯이,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한집에 살 듯이
그저 가족으로서 아이의 아빠, 아이의 엄마로서 한 집에서 생활하고
이혼을 하고도 공동의 가족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이혼을 하게 되면 자기가 다른 남자를 친구로든 재혼을 하든
만나는 것이 남편에게 하나의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아니지 않습니까?
법적으로 남남이니까.
그 길을 열기 위해서 이혼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은 괜찮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한집에 살아도 이혼을 하면 남자 친구만나는
오빠가 한집에 살아도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것은 괜찮듯이
아이의 엄마이고 아이의 아빠이지만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니니까 자기가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이혼을 하기 전에 그렇게 하면 법적으로 불리해진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죠.
그러니까 한집에 사는 건 내가 볼 때는 큰 문제가 없다 싶고요.
다만 자기가 이것은 남편이 아니라 자기가 이 문제를 수용을 하게 되면
부부로서 살아도 이혼을 굳이 안해도 상관없는 일이고
자기는 가치관이 부부의 정을 누리는 것을 굉장히 갈구하고 있다면 이혼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나든, 재혼하든 그것은 저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자유롭다,
뭐냐 하면 모든 사람은 행복추구권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좋은 남자를 만난다.”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은 그냥 사람이지 내가 좋아하는 좋아하면 남자이고
내가 싫어하면 나쁜 남자이지
좋은 남자라고 정해진 남자는 없다.
좋은 사람이라고 정해진 사람도 없다.
내가 좋아하면 좋은 사람이고, 내가 싫어하면 나쁜 사람일 뿐이다.
관점을 이렇게 가진다.
이것이 제법이 공하다.
불교적 가르침으로 말하면.
제법이 공한데 자기가 좋은 사람이다, 하는 것도 마음이 짓는 거고
나쁜 사람이다 하는 것도 마음이 짓는 거다.
사람에게 좋고 나쁘고는 없다.
그러니까 동네 주먹잡이나 이런 사람이
독립운동할 때는 훨씬 더 선비보다 낫고
착한 선비는 평화시대는 괜찮지만
농사를 짓거나 독립을 위해서 독립투사가 되면
그런 사람들은 별로 쓸모가 없다.
사람에게는 원래 좋고 나쁜 게 없고
다만 그 사람이 어떤 용도의 임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
당신 남편 같은 사람이 만약에 신부가 되었다 그러면 어떻겠어요?
아무 사고 안치는 정말 훌륭한 신부가 될 수 있겠죠.
그런 것처럼 그 기능 장애는 결혼하는 데는 장애이지만
그 사람이 뭔가 부족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문제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결혼 생활에는 좀 문제가 있다.
그러면 그 정도는 감안하고 가족을 이루고 살 건지
나는 그것이 굉장히 나한테는 중요한 삶의 가치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것을 양보하고 나는 그것을 추구해야 하겠다.
그건 자기 선택이라는 거요.
그러나 새로 만나는 남자가 좋은 남자냐?
이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내가 만족하면 좋은 남자고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좋지 않은 남자다./
관점을 이렇게 갖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
...
막연한 불안감이라는 것은
자기가 지금 이 사람이 성기능에 장애가 있고,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안되고, 성격적으로도 나쁘고, 폭행까지 하고 이렇다면
이혼해버려도 속이 시원한 일이지만
좋은면도 있고 나쁜면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망설이는 거요.
이 사람을 가지려니까 이 부분이 도저히 해결이 안되고
이 사람을 버리려니까 또 좋은점이 문제가 있고
이렇게 해서 자기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망설이게 되는 거고
또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할 때도
그 새로운 남자가 성적인 만족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적인 고통을 줄지,
성적인 만족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격적으로 자기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될지 그건 알 수 없는 거다.
그러니까 그게 다 좋기를 바라니까 불안하지.
안 그러면 어떨까 싶어서.
그런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요.
성적인 문제를 내가 중요시하면
성격이 좀 더럽더라도, 돈이 내가 손해가 나더라도
이걸 얻기 위해서는 다른 거를 감수한다.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자기가 욕심을 부리니까 불안한 거요.
그리고 다른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하더라도
나중에 자기는
“아, 그래도 나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어떤 것도
내가 성적인 만족을 얻는 것이 내 인생에서는 그때는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선택했고,
그 길에 따르는 어떤 대가도 나는 능히 지불할 용의가 있고 지불했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지금부터 불안이 싹 없어지는 거요.
...
그런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겠어?
그런 어리석은 생각 하지 마세요.
자기가 필요한 사람을
내가 밥이 필요하면 밥을 만들어서 먹고
죽이 필요하면 죽을 만들어서 먹고 하듯이
자기가 그런 사람 필요하면 자기가 필요한 그런 사람을 찾아야지
누가 딱 앉아 대기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 얘기에요.
그리고 반드시 이 면이 좋으면 저 면이 나쁜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게
존재의 본질입니다.
솜이 부드러워서 좋으면 힘이 없고 힘이 없고
쇠가 단단해서 좋으면 날카롭고 부드러움이 없고
이게 존재의 본성이에요.
그런데 칼보고 날카롭기도 하고 부드럽게 해라
솜보고 부드럽기도하고 날카롭게 해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외국에서 인생을 고생하고 후회하고 살 수밖에 없다.
이 생활의 안정성이 중요하다면
성적인 것을 조금 포기하고
안전을 중요시하고 가족을 중요시하고
성적인 문제를 중요시한다면
자식이든 남편이든 이런 것들에 대해서 포기를 하고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고
나는 그것이 중요한 가치.
그래서 그 이후에 오는 어떤 대가가 오더라도
후회하거나 이러지 말고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한다.
...
네.
누구나 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이 성적 요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죄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그거보다는 아이를 내가 안전하게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면
아무리 내가 욕구가 중요해도 잠시 유보할 수 있잖아요.
제가 북한 동포를 위해서 식량을 지원 모금을 할 때 단식을 했다면
내가 밥은 먹어도 살 수 있어서가 아니라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가 배가 고픈 것을 감수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호소하려면
그 정도의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처럼
자기가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남편이 장애라서, 내가 희생자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너무 괴로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는 성적인 그런 만족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결정을 내려서 이혼을 하고 그렇게 한다 해서
그걸 절대로 죄스럽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서
내가 그 욕구를, 또는 나의 권리를 유보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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