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1 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평소 딸아이와 감정싸움이 좀 잦습니다.
아이가 정리 정돈을 안 하고
핸드폰을 밤늦게까지 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등등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몰라 스님께 여쭤봅니다//
그걸 혼자 사는 스님한테 여쭈할 볼만한 주제인가? ㅎㅎ
내가 하나 물어볼게요.
그 아이 누가 낳았어요?
누가 키웠어요?
그럼 누구 닮았겠어요?
그런데 뭐.
아이를 보면서
“아, 내가 저렇게 살았구나”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요.
그런데 자기도 지금 결혼해서 잘살고 있잖아요.
동생도 있다니까 애 둘이나 낳고 잘 살 듯이
이 딸도 자기처럼 또 잘 살 거예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이 말이에요.
아이를 보면서
“아, 아이가 내 거울이다. 내가 저렇게 살았구나”
내가 낳았고, 내가 키웠으니까 이 세상에서 물론 딴 사람도 닮겠지만
누굴 제일 많이 닮을까?
나를 제일 많이 닮았겠죠.
그것에 어떤 뿌리는 다 나로부터 나온 거예요.
아이가 어릴 때 내가 남편에게 그렇게 했든, 부모한테 그렇게 했든,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내가 한국말을 하니까 아이도 한국말을 하는 거고
내가 밥을 먹으니까 아이도 따라서 밥을 먹는 거지
내가 한국말 하는데 애가 영어를 한다? 이런 일은 없어요.
그러니 ‘내 닮았구나’해서
나는 안 변하고 아이보고 변해라 그러면 아이는 변할 수가 없다.
아이의 마음에는 저항이 따른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너는? 너는? 이렇게. 너는 뭐 잘한다고? 너는 안 그러나?” 이렇게.
그래서 교육이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아이의 특징은 따라 배우기에요.
뭐든지 원숭이처럼 흉내를 내는 게 아이다.
그 흉내를 내는 게 곧 교육이에요.
따라 배우기.
명심하세요.
아이의 특징이 따라배우기.
노인의 특징은?
안 변하기.
노인은 안 변합니다.
아이의 특징은 따라 배우니까 제일 좋은 교육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행한다./
내가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면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해야 해요.
내가 안하고 야단을 치면 아이는 늘 반항심이 생겨요.
너는? 하고 저항이 생긴다.
노인에게 부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항상 대답은 그래 그래 해놓고도 안 합니다.
이튿날 다음에 오면 또 자기식대로 해요.
엄마가 내 말 안 듣는게 아니고 그건 노인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노인을 모시는 사람은
맞추기, 항상 맞춰야 합니다.
뭐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그러죠.”
그리고 내가 못하면 안해버리면 돼요.
“왜 안 했냐?” 이러면
“죄송합니다” 이러면 돼요.
노인들은 그러고 잊어버려요.
또 뭐라 그러면
“알겠습니다.”
그걸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돼요.
맞출 만큼 맞추고, 못 맞추면 피해버리면 돼요.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그럼 아이들은 어떠냐?
아이들은 따라 배우기이기 때문에
아이가 검소하기를 원하면 내가 검소하게 살아야 해요.
애가 오토바이 사달라 그런다.
“오토바이 위험하다 안돼” 이러면
애가 공부도 안 하고 하잖아요.
그럼 아이들은 항상 뭐라고 그래요?
“누구도 오토바이 샀는데!” 이래요.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냐?
그 아이는 그 아빠 차가 우리 아빠 차보다 못한대도 오토바이 사줬다.
“너는 그 집보다 더 잘 살면서 왜 오토바이 안 사주냐?” 이렇게 생각하지
위험하다, 이런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아이라는 거요.
제가 절에 초등학생을 한 명 누가 부탁을 해서 같이 데리고 산적이 있는데
절에서는 아침에 예불하지 않습니까?
어느 날 예불을 안 했어.
그래서 왜 너 예불 안 하니? 그러면
“아이고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법이 없어요, 애들은.
항상 “누구 언니도 안 하던데” 이렇게 말해요.
“스님 죄송합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어 못했습니다. 내일 하겠습니다.”
어른은 이렇고
애는 항상
“누구도 안 하던데요” 이렇게 나와요.
그러니까 아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게 아이의 특징이에요.
정리 정돈을 잘하기를 원하면
자기가 정리 정돈을 잘하고
아이한테는 한두 번 얘기해 보죠.
“제대로 치워라” 이렇게 자기가 말을 했을 때, 아이가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행인데
벌써 몇 번 감정싸움을 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아이에게는 교육효과가 없다는 거요.
교육효과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뭐가 된다?
잔소리가 되는 거요.
저항감만 불러온다.
더 얘기하면 감정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그럴 때는
‘아, 더 이상 말로 해서는 될 일이 아니구나’ 이러면
자기가 솔선수범을 하든지 그냥 두든지.
중학생 정도 됐다 그러면 그냥 두면 되요.
어질든지 말든지.
자기 방을 어질러지는 거는 손을 대지 말고.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안 그래요.
가서 야단을 치고 또 애가 학교 간 뒤에 치워주고.
또 어지르면 야단을 치고 또 치워주고 그러거든요.
현명한 부모는
“정리를 잘해라” 한두 번 해보고 안되면
“알았다, 그러면 네 방은 네가 알아서 해라” 이러고 정을 딱 끊어야 합니다.
곰팡이가 생기든, 바퀴벌레가 생기든 일체 관여를 안 해야 해요.
그리고 자기 방이 아닌 우리가 공동으로 쓰는 것을 어질러 놓는 것은
잔소리하지 말고 내가 치워야 해요.
관점을 그렇게 딱 가져야.
어릴 때부터 그래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조그마할 때, 초등하교 유치원 다닐 때부터
“얘야 밥 먹어라” 이러면
공부하거나 게임을 한다고 안 먹으면
“밥 먹어라” 이렇게 얘기해야지
“너 밥 안 먹을 거야? 안 먹으면 치워버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밥 먹어라” 이렇게 얘기하고,
“치울 때가 되었는데”이렇게 얘기했는데 안오면 치워버립니다.
그리고
“밥줘” 이러면
우리 어머니들은 어떠냐?
“아까 먹으라 그럴 때는 안 먹고 인제 와서 그런다.”
이렇게 야단을 치고 차려줘요.
야단을 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감정이 상하고
심리가 위축되고
차려주기 때문에 버릇이 나빠지고.
그래서 절대로 아이들하고는 감정싸움을 하면 안 된다.
자기가 감정싸움 한다는 것은 아이하고 똑같이 논다는 거요.
친구라는 거요.
엄마가 아니고 어른이 아니고 친구다.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이렇고 싸우는 거요.
엄마들 보면 5살짜리하고도 입씨름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어린애들이 그냥 싸우듯이 그렇게 말싸움을 하거든요.
얘기하고 밥 딱 치워버리고
와서 밥달라 그러면
“네가 찾아 먹어라” 그러면 돼요.
그러면 울고 차려달라 그러면 일체 관여를 안 해버리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못하죠.
또 차려주고.
그래서 버릇도 나쁘고 이렇게 되는 거요.
자기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요.
오늘부터 항상 애를 야단을 치지 말되
내가 봐서 옳지 않다 하면 하지 않으면 돼요.
어른은 애보다 크기 때문에 권한을 갖고 있잖아요.
권한이 없을 때 투정을 하는 거지,
권한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투정을 해요?
그러니까 안 주면 되는 거지.
기숙사에 가서 생활할 때는 안보이니까 괜찮고
집에 와서 언니가 동생을 시키든지
그건 동생하고 언니 저희끼리 문제니까 엄마가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엄마가 동생을 편들면 언니로부터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고
엄마가 언니를 편들면 동생이 상처를 입어요.
저희끼리 문제로 내버려 둬야 해요.
그러면 저희끼리 싸우든지, 하든지
그런데 자꾸 여러분들이 관여하게 돼요.
그것이 폭력적이다, 그러면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악이기 때문에
그것은 얘기해야 하겠죠.
“사람이 살면서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폭력을 해결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물건을 뺏었다, 이런 거,
성추행했다,
욕설했다.
이런 거는 엄마가 좀 타이를 필요가 있지만,
나머지는 가능하면 관여를 안하는 게 좋다.
관점을 이렇게 딱 가지고,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침에 기도하면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내 딸은 나를 닮았습니다.”
“나도 잘살 듯이
내가 잘살면 우리 딸도 살 겁니다.”
아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해요.
우리 딸은 나를 닮아서, 내가 지금 마음공부 해서 잘 살면
우리 딸도 잘살 거다.
어지럽히는 것은 별로 중요 안 해요.
컴퓨터게임 조금 하는 거, 별로 중요 안 해요.
거기에 자꾸 하나하나 시비를 하게 되면
아이는 상처를 입고, 엄마는 실망하고, 이렇게 되는 것에요.
그리고 그런 문제를 지금 아직 아이가 미성년자니까
우리가 아이들을 범죄를 저질러도 부모가 책임을 지고, 보호자가 책임을 지는데
그런 건 다 부모의 책임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조금 포용성 있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가 우리 아이든, 남의 아이든, 이 나이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옳지 않다 그러면
그건 아무리 행패를 피우고 난리를 쳐도
야단도 치지 말고
“그건 안 돼 그건 너희들한테 좋은 게 아니야”하고 안 해야 합니다.
그렇게 인생을
아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교훈이 되도록 살고
또 아이이지만 함부로 야단치고 억압하고 이렇게 하지 않는 원칙을 딱 지키고 살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를 지금 나무라기 전에
자기 인생을 좀 똑바로 살고 제대로 살고 행복하게 사는
이걸 먼저 우선시해라.
이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네요.
...
그래서 내가 모범을 보인 것도 있지만
모범을 못 보여도 괜찮아요.
“이런 나도 잘사니까 우리 딸도 잘 살거야, 나 닮았으니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라는 거요.
“이런 나도 결혼해서 애 둘이나 낳고, 잘 살지 않냐?
그러니 너도 그래도 내 딸이니까 우여곡절 격지만 나중에 보면
또 너도 나처럼 아무리 못살아도 나처럼 살 거야, 내 딸이니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개선을.
먼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 그래도 조금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면
“오케이, 그럼 내가 먼저 좀 변화를 해보자”
내가 안 변해지는 데 애가 어떻게 변하겠어요.
내가 변해도 애는 변할지 말지인데.
“나부터 한번 변해보자.”
“나부터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자.”
지금의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보고
그걸 바탕에 깔고
“안 변해도 이대로도 좋다.
그런데 조금 더 좋아지려면 내가 변하면 되겠다.”
이렇게 해야지
“내가 변해야 된다” 또 이러면
자기가 안 변해지면 자기를 또 학대해요.
애가 변화시키려다 애가 안 변해지까 애를 미워하다가
내가 변해야 한다 하다가 나까지 안 변해지면
내가 더 자학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이래로도 좋다. 그러나 한번 시도를 해보자.
되는데 까지.
안 되도 좋고, 되면 더 좋고.”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변화에 또 너무 집착해서 나중에 자기 또
“내가 죽일 사람이다” 이렇게 가면 안 돼요.
그러면 거꾸로 가는 거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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