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베풀고 나서 괴롭지 않으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요? (2023.05.15.)

Buddhastudy 2023. 8. 2. 20:08

 

 

 

저는 무주상보시를 배우면서 생긴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아직 수행이 많이 부족해서인지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베풀었다는 생각이 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베풀었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서 잠자고 있다가 괴로워질 때가 되어서야

아직도 무주상보시가 안 되었구나하고 느끼게 됩니다.

무주상보시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마음을 분석해보면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사람은 주는 것은 없이 받겠다고만 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이해를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베푸는 사람은 없고, 받으려는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괴로운 사람들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받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도

서로에게 득을 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인물, 재산, 능력, 가정, 성질 다 따져서

나한테 득이 될 만한 사람인지를 계산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별로 득이 안 된다 싶으니까 실망을 하게 되죠.

 

만약 손해까지 났다 싶으면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어떻게 사랑이겠습니까?

그냥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래일 뿐인데 거래의 대상자가 잘못 선정된 거예요.

 

그래서 이혼이란 상대와의 거래를 끊고

새로운 다른 대상을 찾아서 또 다른 거래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을 만약 장사라고 생각을 한다면

거래 대상을 잘못 선정했을 뿐이니까

지금처럼 이혼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이 따르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득을 보려고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샀을 때 주가가 떨어지면 재수가 없구나하면서 팔고

다른 주식을 또 사면 되듯이

상대를 미워하지는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결혼생활은 어떻습니까?

실제로는 장사를 하고 있으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은 계산적으로 생각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사랑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러니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 심보가 장삿속이라는 것을 알면

상대방의 심보 역시 장삿속이라 하더라도 미워할 이유가 없겠죠.

 

원래 결혼이란

일반 장사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을 원하는 장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사귈 때는

상대가 잘났나 못났나보다 의리가 있나 없나를 가지고 사귀게 되고

동업을 할 때는

상대가 신용이 있나 없나를 갖고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결혼할 때는

의리도 있어야 하고, 신용도 있어야 하고, 경제적 이익도 있어야 하고

따지는 게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한 명 잡아서 평생 벗겨 먹을 심보로 상대를 고르고 있다하고 말하는 겁니다.

서로가 그런 심보로 상대를 찾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바가지를 쓰게 되는 겁니다. (웃음)

 

결혼을 사랑이라고 자꾸 포장을 하니까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숫제 장사라고 생각하면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다고 여길 텐데

사랑이라고 포장을 해 버리니까 배신의 과보만 남게 되는 겁니다.

 

제 말은 결혼은 장사이니까 결혼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장사로 결혼을 했을 때는 장사인 줄을 알라는 겁니다.

사랑일 때는 사랑인 줄을 알라는 말이고요.

 

사랑이라면 손익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나 또한 이익을 따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살이가 괴로운 이유는 인간관계에서 이익만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은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 상대에게도 이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게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사람은 무턱대고 공짜로 얻으려는 도둑놈 심보를 버리고 투자를 합니다.

그러면 예전보다는 이익이 돌아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확 줄어드는 거예요.

 

가령 장사를 할 때도

나만 덕을 보려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덕을 보게 해주면

서로 신뢰가 생깁니다.

그래서 관계가 오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거래하는 것보다

나하고 거래하는 게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는 회사에 취직을 하면 월급만 많이 받으려고 하고

회사가 잘 되든 못 되든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반대로 사장은 노동자가 괴로운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고

회사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장이 노동자들에게 다른 회사보다 덕을 많이 보게 해주면,

즉 월급을 많이 주든지, 혜택을 많이 주면

노동자들은 다른 회사에 갈 이유가 없어져요.

노동자가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해줄수록 회사에게는 이익입니다.

 

노동자도 마찬가지예요.

사장이 나를 고용하는 이유가

손해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이익을 보려고 고용을 하는 겁니다.

그걸 알면 내가 사장한테 덕을 좀 보게 해주면 되는 거예요.

내가 회사에 있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사장이 나를 내보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나에게도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거예요.

 

첫 번째 단계의 사람을 [범부중생]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을 [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에서도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덕을 보게 해줬는데도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좋은 말을 했는데도 욕을 얻어먹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단계의 사람은

내가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그가 나한테 좋은 말을 하든 욕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관점을 갖는 사람입니다.

[결과에 대해 괘념치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것에 대해 괘념치 않으니까 내가 할 일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무주상보시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무주상보시라고 하는 겁니다.

무주상보시를 하면 괴로워하거나 미워할 일이 없어져요.

 

내가 할 일은 내가 하면 되고

상대방이 나한테 어떻게 하느냐는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손해가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관계를 끊으면 되지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손해가 나는 사람하고는 거래를 안 하면 되지

그 사람을 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첫 번째 단계 수준을 벗어나서 겨우 두 번째 단계를 흉내만 내고 있어요.

이익을 주면 이익이 돌아와야 되는데

이익을 줬는데도 손해가 가끔 오니까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는데하고 의심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 한 번에 세 번째 단계로 건너뛰려고 하지 마세요.

 

이런 원리에 따라서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훌륭하고, 저렇게 되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불교의 가르침에는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만 이익을 보고자 하면서 괴롭게 사는 것도 자기 선택이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좀 오래 지속하는 것도 자기 선택이고

아예 이익을 받을 생각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도 자기 선택입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선택하면 됩니다.

이것을 선택하면 더 좋다고 스님은 말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결혼해라 마라이런 얘기를 일절 하지 않잖아요.

내가 혼자 사니까 당신도 혼자 사시오이런 말도 하지 않잖아요.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그중에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각자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알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예측이 어긋나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좀 나쁩니다.

하지만 금방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하고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