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131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그냥 경험되고 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고의 수행은 뭐예요? 말로 표현하니까 삶을 사는 것 삶을 받아들이는 것 분별없이 삶을 경험하는 것 삶을 허용해 주는 것 삶을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둘로 나눠지잖아요 내가 삶을 받아들인다. 내가 삶을 허용한다. 이렇게 이해 되잖아요, 여러분 머릿속에서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게 100% 허용되고 있어요, 완전히. 삶이 삶을 사용하고 있어요. 내가 나를 활용하고 있어요. 여긴 둘이 없어요 그냥 경험되는 거예요, 삶이. 진실이 경험되고 있어 매 순간. 그런데 내가 아상 에고가 계속해서 시비를 거는 거예요, 그 진실에. “이건 진실이 아니야. 너는 더 나아 줘야 돼. 더 벌어야 돼. 저 사람과 비교해 봐 너는 못 낫잖아” 계속해서 속삭이는 그 소리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말이죠. 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괴로움은 전부 비교에서 온다

아무리 내가 가난하다고 해도 제가 인도에 갔을 때 집도 없고 부모도 없이 떠도는 아이들이 많았아요. 근데 걔네들은 집도 없고 부모 없이 떠도는 게 괴로운 게 아니에요. 당장 입에 들어가는 게 없는 게 괴롭지. 그래서 쓰레기통 항상 뒤지거든요. 그 더운 무더위 속에서.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의 괴로움이 괴로움일까요? 우리의 가난은 가난일까요? 가난이 아니거든요.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가난이 생겨요.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비교하고 내가 옛날에 잘 나갔을 때와 비교하고. 그러니까 즉 요 정도는 다른 나라 어느 나라에서는 아프리카나 이런 나라에서는 아주 행복한 건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괴롭죠. 그죠? 그러면 지금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진짜 괴로움이냔 말이에요. 비교에서 오는 괴로움 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 곧 진실, 진실 이대로 내맡겨라

생각은 자기에게 생각할 수 있는 것만 보잖아요. 진리는 전체를 본단 말이죠. 그러니까 언제나 진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둬야 해요, 내맡겨야 해요. 진리가 어떻게 해요? 현실대로 해요. 진리의 결과가 현실이에요. 내 결과는 생각이고. 내 생각은 “현실이 잘못되고 있어. 나는 지금 돈을 더 벌어야 해. 나는 지금 보다 더 예뻐져야 해. 나는 지금보다 더 안 아파야 해. 나는 지금보다 더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부자가 되어야 해.”하는 생각은 자기 생각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러면 안 돼요. 나는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면 안 돼요. 지금만큼 부자여야 해요. 왜 부자가 되면 안 될까요? 내 복이 요만큼이면 요만큼만 받아야지 더 만큼 당겨써버리면 까먹는 거잖아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성경 창세기 에덴동산의 의미, 애쓸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기 좋았다

성경에 다시 한번 창세기를 봤더니 그렇더라고요. 첫날부터 7일째까지 창조를 하면서 날마다 아직 완성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보기 좋았다. 있는 이 대로 보기 좋다는 거예요. 미완성인 채로.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즉, 근본 무명, 분별심을 일으키면서부터 하나님이 벌을 줬다, 이렇게 나와요. 어떤 벌을 줬냐? 이제부터는 그냥 있는 그대로 아무거다 다 따먹으면서 마음 편히 살아도 되도록 에덴동산이 본래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중생이. 분별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부터 땀을 흘려야만 뭔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별을 하면 애쓰고 노력하고 유의 조작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 근원은 그럴 필요가 없단 말이죠. 될 거는 저절로 되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라는 진실에 만족하며 살기, 진을 빼고 살지 않기

내가 만나는 친구나 친지나 형제나 다른 남편들은 정말 자상하고 돈도 잘 벌어오고 아내한테 잘하고 항상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행복한 삶을 매일 살고 있는데 나는 이 남편 하나 잘못 만나서 저 놈을 만나서 내가 한다고 하면서 “저 남편, 저 남편은 정말 저런 남편하고 사는 여자는 기분이 어떨까?” 그래봐야 그것은 내 분별심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인생이 비효율적으로 바뀌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 나에게 있는 현세, 현실이 현실이라는 진실을 만족하지 못하면. 삶이 되게 비효율적으로 바뀌죠. 왜 비효율적이냐? 자꾸 이 사람을 미워해야 하니까. 자꾸 나와 인연도 없는 저 사람을 동경해야 하니까. 막 분노, 질투, 화 이런 게 계속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런 거에 에너지를 빼고, 진을 빼며 살아야 하니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삶은 애쓰지 않아도 막 강렬하게 뭔가를 막 추진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열정은 인연 따라 시절 인연이 탁 분발 돼버리면 자연스러운 삶의 열정은 저절로 나오는 거거든요. 모든 일은 내가 과하게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삶은. 원래 이 삶은 저절로 해요, 전부다 상당히 효율적이죠. 적은 노력을 했는데 큰 걸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큰 걸 얻고 싶어도 그게 때가 아니면 시절 인연이 아니면 죽도록 노력을 해서, 에너지를 막 300, 400, 500 죽을 것처럼 에너지를 투여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안 될 거는. 그러니까 안될 거에 공연히 기를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느라고 효율성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단 말이죠. 삶을 스트레스받아가면서 뭐 유의 조작할 필요가 없단 말이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심과 현실 사이의 갭만큼 괴롭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살면 우리 마음은 비효율적이다. 공연히 안 해도 되는 거 괜히 기를 쓴단 말이에요 그렇게까지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되는데 진 빠지는 삶을 산단 말이에요. 아이가 성적이 안 나오는 데 어느 정도 공부시켜도 되는데 이 만큼까진 안 될 건데 요만큼 될 게 그 아이의 인연인데 업이고 팔자인데 이만큼 되길 바라면 이만큼 갭만큼 죽도록 해도 안 나올 건데 성적이 그분이 만큼 노력한 만큼 괴롭겠죠, 그죠?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전생에 복 지은게 예를 들어 복 지은게 내가 이번 생에 감당해야 할 복이 1억, 2억 버는 부자다, 이번 생 내가. 그런데 나는 10억을 벌고 싶다 그러면 8억의 갭만큼은 죽도록 해도 안 될 거 아니에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자기를 확인하는 명상

잠깐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라는 이 생명력? 내가 이렇게 있는 이 느낌? 이걸 한번 가만히 느껴보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려 보세요. 생각에 내가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이 살아있음? 여기서 이게 바로 내면의 나가 가진 에너지 거든요. 내가 이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이 속에서 나의 에너지 나의 생명? 생명력이 느껴져요. 그냥 지금 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어떤 존재감이랄까요? 이렇게 있는... 이렇게 있음 속에 잠시 그냥 있기만 해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삶에 일체를 내맡겨 버려,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식대로 통제하고 지배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막 기를 쓰지 않아요. 변화시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반드시 이것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단 말이에요. 반드시 이것만이 절대 진실한 생각이 없이 그냥 가볍게 가볍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매 순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나는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것이 좋으니까 내가 지금은 이것이 내 머리로 쓰는 최선이니까 그걸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나 결과에 대한 집착은 없이 내맡기는 거죠. 그랬을 때 생각을 믿지 않거든요. 근원에서 겉으로는 생각이 원하는 걸 하지만 근원에서 생각을 믿지 않아요. 진실을 믿지. 그러니까 결과는 내맡기게 돼요. 현실은 내 생각대로 막 하지만 결과는 완전 내맡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를 살게 해 주는 모든 인연이 전부 나, 삶 전체가 바로 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태양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 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 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세 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까요. 이 우주 전체가 없어 내가 없는 거니까 진짜 나는 이게 아니에요. 그 연결된 전체가 나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라는 독특한 부처로 태어난 삶, 이것이 진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 우주 전체의 여러분 한 명밖에 없잖아요. 삶을 이렇게 경험한 사람, 나밖에 없잖아요. 그 자기 그 내 현실 그게 진실이에요. 부처님은 그걸 경험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보낸 부처님도 여러분이고 온 나도 부처님이에요. 내가 나를 보냈단 말이에요. 나가 나를 경험하려고.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우주의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부처가 이렇게 이걸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부처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뜻을 이루어야죠. 그 뜻은 이미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까 이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그 속으로 뛰어든다? 뛰어든다 해도 뛰어든 내가 있고, 뛰어드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뛰어들어져 있어요. 그걸 그냥 허용하고 살아 주면 돼요. 그게 진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죽지 않는 길, 괴로움 없는 길,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아, 이제 발견했다. 돈, 명예, 권력, 지위 이거는 진짜 즐거움이 아니었구나. 그건 왔다 가는 것이었구나.” 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삶이 젊었을 때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즐겁고 재미있고 뭔가 가슴 뛰는,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가슴 설레게 해요. 왜? 죽지 않는 길이니까. 늙고, 병들고, 죽지 않는 길 괴롭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는 길 두려움 없이, 외로움 없이 정말 살아갈 수 있는 길. 그런 가능성이 정말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공적영지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멸한다는 것을 누가 알죠? 무엇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분명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목격됩니다. 생멸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생이야 희극이든 비극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무언가가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라고도 하는데요 공적해서 텅 빈 가운데 그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소소영령한 아는 것이 있습니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만 없으면 이대로 좋다

미래에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무엇을 원해도 좋습니다. 그 모든 생각, 추구, 바람 들을 그저 왔다가 가능 손님처럼, 바람처럼 여기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말아 보십시오.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으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렇게 아무 일 없이 그러나 모든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그대로 존재하며 거기에서 삶을 즐기십시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누구인가, 오고 가지 않는 한결같은 이것

10대 때도 '나'라고 했고 지금도 '나'라고 하는데 10대 때의 몸은 갔는데도 10대 때 몸은 다 떠나가고 지금은 다른, 전혀 다른 '몸'이 와 있는데도 '나'잖아요.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고. 그 '나'가 누구예요? 그게 진여(眞如=불성=본성=참나)에요. (이것이) 모양이 있습니까? 모양 없잖아요. 옛날에 실연의 아픔이 있었고 지금은 사랑의 행복 있어요. 실연의 아픈, 그 느낌이 나입니까? 지금 사랑의 기쁨이 '나'입니까? 그 느낌이 왔을 때 온 줄 알고 갔을 때 간 줄 아는 이놈은 늘 여기 있잖아요. 여기서 느낌도 왔다 가게 생각도 왔다 가게 하고 의지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이 보수였을 때도, 진보였을 때도 자기, 자기는 늘 여기 있잖아요. 보수적인 생각은 왔다 가고 진보로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늘 한결같은 여여한 친구, 승승장구 잘하는 친구보다 늘 담대한 친구

어릴 때부터 끌렸던 친구들이 어떤 친구였냐 하면 “얘는 머리가 똑똑해서 뭐든지 물어보면 다 알아 이런 친구라든지” “쟤는 뭐든지 다 승승장구할 거야” 하는 이런 믿음을 주는 친구가 끌렸던 게 아니고요. “아, 저 친구는 성공을 해도 실패해도 그냥 묵연히 나아갈 것 같은” “실패하는 게 저 사람을 막 크게 막 좌절시키지 않을 것 같은 ” “저 사람은 실패도 괜찮을것 같은데?” 그런 든든함을 주는 친구 있잖아요 항상 승승장구만 하는 친구가 멋있는 친구가 아니었던 거죠. 승리가 하든 실패하든 성공하는 실패하든 여여한(한결같은) 친구 그런 사람이 진짜 멋있는 사람 이었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도전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욕도 먹고 칭찬도 받고 그러면서 인생을 이래저래 살아보니까 꼭 그게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되도 좋고 안 되도 좋다, 가볍게 툭 털어 버려, 현실이 진실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돼” 하는 마음으로 올인하지 않아요. 우리 쉽게 말해 투자하는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이거 돈 된다고 하면 막 여기저기 막 그냥 끌어다가 막 투자 하잖아요. 이런 짓 안 한단 말이에요. 과도한 욕심 없으니까 되도 좋고 안 되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만 다 하는 거예요, 그냥. 그러니까 안 돼도 미련이 없어요 그러니까 언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해요 근데 되면 좋고 안 되면, 좋은 거 배웠다. 끝! 툭 털어 버려요, 그냥. 가볍게. 여기서 그 딱 무너지면(실패하면) 'ok!' 한단 말이에요. 왜 오케이 할까요? 이게 내 길이 아니겠지 왜? 내 현실이 지금 여기에서 무너졌으니까, 그 현실이 당연한 거예요. 현실이 진실이니까. “아 이 현실이, 내가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시절인연이 오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내가 애쓸 필요는 없어

인연이 되려면 어떻게든 희한하게 인연이 된다니까요. 내가 정말 가기 싫었던 친구들 모임 친구들이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꼴보기 싫어서 나는 잘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친구들 모임에 한 번도 안 나가다가 하도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아이 참 꼴보기 싫은 친구 보기 싫어서 안 나가려고 하다가 딱 한번 나갔다가 거기서 그 절친한 친구하고 인연이 돼서 그 일을 배우게 되고 그 친구와 일을 같이 하게 되고 그래서 뭐 대박이 났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렇게 우연처럼 찾아오거든요. 인연은 내 쪽에서 애쓴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인연 따라 저절로 주어지죠. 그러니까 무위법(無爲法)이라 그러죠. 할 위爲 자, 애쓸 위爲 자 거든요. 내가 애쓰지 않는 게 진짜 법이란 말이에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은 없다,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라

열심히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야 해요. 그런데 거기 과도하게 집착하면 안되는 겁니다. 집착 안해야 하는데 너무 또 안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거문고 선 조율하듯이. 그러니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라,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연 따라 주어진 무엇이든 해도 좋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나 결과는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아니, 교수님, 박사님 이런 분들도 경제전문가라고 경제 어떻게 돌아갈지 100% 맞춥니까? 주식 전문가는 주식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까요? 박사가 되도 알 수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 사는 거예요. 나에게 주어진 인연 따라. 무엇을 해도 좋다.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삶의 분위기, 온도, 환경이 나를 만든다, 회사를 그만두는 청년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분위기 있잖아요, 분위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온도, 이 따스함, 이 에너지, 밝은 에너지 이런 거 있잖아요. 이게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하거든요. “아주 최악의 분위기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나오는 게 낫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데요. 옛날같이 “내가 죽어도 여기 뼈를 묻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서 나한테 불합리한 일을 시키거나 부정적인 것을 시키더라도 그래도 돈벌어야 하니 여기 붙어있겠다.” 안 그런다는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니다 나왔다는 친구한테 “잘 나왔다, 잘 나왔다.” 얘기 들어보니까 진짜 부조리가 너무 심하고 옛날 60년대 회사도 아니고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것부터 가르치고. “야, 처음 직장생활 시작하는 데서 아무리 돈을 많이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귀신은 없다, 속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

어떤 보살님이나 나이 드신 분한테 귀신 같은 거 없어요. 우리 집에 귀신이 나온다는 거예요, 소리도 들린다는 거예요. “보살님, 그런 거 없습니다. 다 거짓부렁이에요.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귀신이. 그런 거 없으니까 당당하게 사세요. 귀신 나타나도 다 허상이라 보살님이 더 세니까 보살님이 이기니까 절대 끌려다닐 필요 없다. 그런 거 없습니다.” “진짜일까요? 스님은 아직 모르시는 거 아닐까요? 귀신 진짜 있던데...” 귀신이 진짜 있어도 없는 거라니까요. 왜? 내 몸뚱이 진짜 있잖아요. 그런데 없는 거라니까요. 몸과 마음, 내가 지금 이렇게 쓰고 살잖아요. 그런데 이게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귀신이 나타나도 내 눈앞에 딱 등장해도 없는 거라니까요, 그 귀신은. “내가 공동묘지 가면 귀신을 볼 거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완전히 안심해도 좋다, 생각이 지옥 천상을 만들 뿐

이 법을 깨닫고 나면 “어디에 있어도 안락하구나” “죽든 살든 안락하구나” “지옥에 가든 천당에 가든 그게 지옥이 아니고 천당이 아니구나” 본래 지옥이 따로 없구나, 천상이 따로 없구나” “한 생각 망상 일으켜서 지옥 만들고 한 생각 망상 일으켜서 천상을 만드는구나” “과거현재미래가 따로 없구나” “동방과 서방이 따로 없구나” “정토와 예토가 따로 없구나” “중생과 부처가 따로 없구나” 완전히 안락한 거예요. 이게 완전 안심 아닙니까? 완전 안심법문 아니에요, 정말? 우리는 깨닫기 전에는 죽을 때까지 안심하지 못해요. 미래가 두려우니까. 내가 어떻게 될까 두려우니까. 그런데 이 안심법문으로 깨닫고 난다면 안심하지 않을 수 없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기준이 있기 때문에 괴롭다, 기준을 깨뜨리는 행복

“나는 부자가 돼야 해” “난 어느 정도 돈은 있어야 해” “내 자식은 어느 정도 뒷바라지는 내가 해줘야 해” 이런 식의 내 머릿속에서 좋아하는 거 “난 이렇게는 살아야 해” 하고 좋아하는 거 “이런 것은 내 인생에 벌어지면 안 돼” 하고 싫어하는 거 있잖아요, 그게 있으니까 괴로운 거 아니에요? “내 인생에 좋으니까 벌어져야 해” 하는 기준도 내가 만들었고 “내 인생에서 이런 건 없어져야 해”하는 기준도 내가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실제라고 여겨서 그걸 기준으로 내가 행복해 불행해를 내가 만들었잖아요. 나에게 그 기준이 없으면 행복 불행이 정해진 게 아닌데 내가 내 인생에 돈 몇억은 벌어야 해 하고 정해놓고 그걸 못 벌면 난 불행해, 그걸 벌면 난 행복해. 그 불행을 내가 만들었단 말이에요. 내가 좋아하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를 욕했던 그 놈 때문에 괴롭다면

10년 전에 나를 욕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욕하고 나서 욕했다는 것도 잊어버렸어요. 그 사람은 10년 전에 욕 한번 하고 가버려서 어디서 뭐 하고 사는 지도 몰라요. 근데 내가 그 욕설 들은 게 막 트라우마로 남아서 계속 생각이 나고 10년 동안 계속 재생 재생 재생 재생 반복하면서 내 마음속에서 막 괴로워하면서 자존감이 뚝 떨어지면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세상에 나가는 게 두렵기도 하고 내 인생 완전히 망쳤어요. 그러면 그게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더 커요? 내가 잘못한 게 더 커요? 그 사람 아무리 그 말했어도 내 마음이 그걸 허물로 만들지 않았으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걸 문제화시키는 것은 여기에서 하는 거예요, 여기서. 다 자기 문제에요, 자기 문제. 세상이 따로 둘로 나뉘지 않아서 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깨달으면 괴로움을 완전히 허용한다 감당한다

“깨달으면 모든 게 완벽히 바뀌어야 돼”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져야 돼”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와 반대로 깨달으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괴로움을 완전 허용하게 돼요. 괴로움을 피해 도망치지 않아요. 괴로움과 싸워 이기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냥 허용하게 되요. 그냥 내버려둬요. 그냥 괴로움을 감당해요. 감당하니까 괴롭지요. 괴롭지만 괴롭지 않은.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완전히 감당하게 되는 거지 괴로움을 내가 막 조작해 가지고 이 괴로움 없애고 저건 더 만들고 이런 능력이 생기는 게 깨달음이 아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안목 있어야... 이런 걸 안목이라 그래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이 남편 아내를 만난 이유, 꼭 찾아올 일만 찾아온다

요즘에 TV에서 보는 막 자상한 남편들이 아내를 극진히 공주님 보시듯이 모시는 걸 보고 집안싸움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람을 남편으로 만난 것은 그 보살님이 얼마나 복이 많으면 그렇겠어요 본인이 그만큼 복을 많이 지었으니까 전생의 락도 복을 짓지 않았겠느냐 복을 그만큼 줬으니까 그만큼 복을 못 지은 본인을 탓해야지 왜 엄한 남편을 탓하고 아내를 탓하느냐. 저 집은 아내가 지혜로운데 우리 아내는 별로인 것 같다는 등 저 남편은 정말 훌륭한데 내 남편은 왜 이거밖에 안 되느냐는 등 실상은 제법이 실상이에요. 벌어지는 삶이 실상이에요 삶이 바로 마음이에요. 마음은 어떤 걸 펼쳐낼까요? 진리를 펼쳐냅니다, 항상. 그러니까 나에게 지금 이것이 찾아왔다면 나에게 지금 100% 찾아와야 할 삶이 찾아온 거..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집착 없는 사람이 힘이 있어

이렇게 사는 거나, 저렇게 사는거나 아무 상관 없다니까요. 자기 생각이 그걸 상관이 있게 조작해내는 거지. 그래서 지금 여러분답게 사는게 아무 문제 없다니까요. 지금 이대로 우리처럼 사는게. 우리 같이. 그렇게 크게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뭐 그렇게 크게 돈이 없어요, 우리가? 아프리카 다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비교한다면. 이렇게 사는게 이대로 아름다운 것이에요. 이대로 완전한 거라니까요. 이대로 부처의 삶이에요. 자기 생각으로 해석하지만 않으면 이대로 완전합니다. 불자들이 나는 부자가 되려고 절에 왔는데 원하는 대로 삶을 바꿔 보려고 절에 왔는데 원하는 게 사라진단 말이에요. 원하는 게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게 없는 건 아니에요. 원하는 건 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거지. 그러니 무..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집착이 없는 사람, 진정한 자유

꼭 무엇이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제일 무섭지 않아요? 세상에?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아 그런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난 반드시 돼야 돼' 이런 사람은 다루기 쉬워요. 그 사람 원하는 것 쥐여주면서 그 사람 조정하기 쉬워요. 근데 집착이 없는 사람은 이거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니까요. 완전 모든 거로부터 자유로우니까. “내가 이 조직에서 뭔가 높은데 올라가야 돼” 이러면 얼마나 스트레스받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을 그 조직에 올라가게만 해주면 뭔들 안 하겠어요? 그런데 나는 올라갈 필요도 없어. 어디서 소속돼 있지 않단 말이에요, 쉽게 말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으니까. 거기 올라갈 것도 없고 내려갈 것도 없어요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좋고 내려가면 내려가는 대로 좋고. 그게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생생하게 삶을 사는 법, 눈앞의 삶을 죽이지 마!

평소에는 익숙하게 지나가는 것들 우리는 다 아니까 “다 아는 거야” 하고 그냥 휙휙 지나가 버리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일상적으로는 “어 그냥 봄이네, 날씨 좋네”하고 넘어가는 것을 조금 더 진하게 느끼고 누리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온전한 자리 지금 여기라는 온전한 이 순간에 모든 근원에 힘이 다 담겨 있는, 지혜가 담겨 있는 이 순간에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을 한번 조금 더 깊이 느껴보고, 깊이 누려보고, 만끽해 보는 것 즉, 머릿속에서만 삶을 살던 것을 이제는 생생하게 진짜배기 삶을 한번 살아보는 겁니다. 삶이라는 매 순간순간이 우리 앞에 눈앞에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지금까지 죽여오면서 살았거든요. 머릿속을 보느라고 생생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내가 괴로운 이유,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힐 뿐

그래 내가 실제인 걸로 착각하니까 내 괴로움도 실제라고 오해하는 겁니다. 실제 괴로운게 아닌데 내가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괴로움에 불과한 것일 뿐인데. 자식이 대학교는 어느 정도로 가야하고 취직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고 신랑감 신부감은 어느 정도 데려와야 한다고 또 내 남편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야 한다고 어느 정도 연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고집, 그 생각 때문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괴로운 것일 뿐인데 그걸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 줄 모르고 나를 실체화 시키는 겁니다.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야.” “우리 집안은 이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그래 생각해 놓고 그것보다 되지 못했을 때 괴로워한다 말이죠. 사실 우리 인생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고 언제나 매 순간 순간의 삶만 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