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 1708

대행 스님 법문_마음에 어떻게 입력을 해야 그대로 되나요?

그것도 맞습니다. 물론 입력을 하되 내가 판단을…, 그 경우에는 판단을 하고 안하고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까 안 될까 이것도 없습니다. 그냥이지. 그냥 무조건입니다. 벌써 그런 거를 이렇게 했을 때에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것이 문을 막는 겁니다. 그냥 '잘 되려니’ ‘그렇게 되려니’ ‘안 되니' 이런 이유가 붙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것도 붙지 않고 그냥 무조건 나도 불성이 있고 저 스님도 불성이 있으니까. 저 스님은 불성을 발견해서 융통성 있게 이 세상을 또 공부하고 또 이렇게 베풀어주는 그런 지혜 넓은 분이, 일체제불이 있다면, 일체 선지식이 있다면 다 통하는 일이고 다, 나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입력을 할 때에도 '이게 언제 될까’ ‘이게 될까’ ‘이게 안 될까’ ‘아..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생각을 믿었을 뿐인데 괴로워

“지금 이대로 와 달라야 해”하는 어떤 한 생각을 일으키고 “맞아 맞아, 나는 지금 이대로여서 나는 절망스럽고 좌절하고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지? 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못난 사람이지? 세상 사람들은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일으키고 그 생각을 따라간단 말이에요. 그 생각을 진짜라고 여기면서 동일시해서 그 생각이 실제가 돼버려요. “진짜 세상 사람은 나를 미워해!” “나는 세상에서 볼품 없는 사람이야!” 그거는 실제 그런 게 아니라 내 생각일 뿐인데 근데 이 생각을 ‘나’라고 여기면서 그 생각을 일으켰을 때 그냥 나에게서 일어난 왔다 가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왔다 가는 바람처럼 왔다 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내 생각인 걸로 쥐었을 때 문제가 되거든요. 근데 그걸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가 못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 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 세상 있잖아요? 여러분이 창조한 세상이에요. ‘만법 유식’ 만법은 내가 오로지 내 식으로 만든 거예요. 자기 인식으로 만든 세상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이런 곳이야, 저런 곳이야”하는 내 머릿속에 생각이 있잖아요?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야” “대한민국은 선진국이야, 후진국이야” 이런저런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과 판단을 쥐고 “그 세상이 실제 있어” 이렇게 느끼잖아요. “내 바깥에 그 세상이 실제 있어” 그러잖아요. 내 바깥에 그런 세상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은 어디에만 있을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만 있어요. 자기가 분별심으로 “세상은 이런 곳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딱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내가 만들어 놓은 그 분별심에 내가 갇혀서 그 생각에 짓눌려서 내가 ..

대행 스님 법문_ 마음공부와 꿈

그것을 어떤 스님네들이나 스님네들 아닌 분들도 꿈에 상상하고 좋은 꿈을 꾸고 부처님께서 나타나서 자기의 금강좌를 줬다 뭐 이런 꿈도 꿨다고 그래요. 그렇게 하고 글씨를 써서 깨우쳤다고 그러고 그러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림자에 있는 빵 하나를 놓고 볼 때 그게 배가 부르겠습니까, 안 부르겠습니까? 그림자 떡을 말이에요. 놓고 그게 배가 부르겠습니까 안 부르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그러면 꿈에 했다거나 또 꿈에 나를 보고 내가 거들어 줬다거나 이렇다면 그저 ‘아유, 감사하구나.’ 이렇게 하고 그냥 놔야지, 거기에 좋아서 그냥 거기에 자꾸 자꾸 자꾸 이렇게 꿈으로 좋아하고 가거나 따라가거나 꿈의 형상을 보고 따라가거나 이런다면 자기는 백네 날 해도 자기가 실천을 할 수가..

대행 스님 법문_ 육법공양의 참뜻

옛날에도 그랬지마는 선지식들이 일 년에 한 번씩이라든가 이럴 때 육법공양을 했습니다. 모두들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해서 너무나 과거의 선지식들이 너무 애를 쓰신 것 같아요. 그랬건 만도 그거를 뜻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뜻을 못 받고 있다는 얘깁니다. 첫째 우리가 촛불을 켜놓을 때 어떠한 심정으로 촛불을 켜는지 그것조차도 잘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불을 켜놓을 때는…, 항상 내가 그러죠. 주인공에다가, 오직 한 군데다가 몰입을 해서 거기 놓아라. 잘된 거든 잘못된 거든 모든 거를 감사하게 놓고 또 ‘거기에서만이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거기다 전부 놔라. 일거수일투족 다 놔라, 이랬죠. 그것이 바로 저 촛불 켜는 거와 같습니다. 저 촛불을 켜면 초와 불과 불을 켜놓으면 초는 닳습니다. 녹습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지금과 마주하는 질문

질문 자체가 그런 거예요. 질문 자체가 우리는 성과 위주, 결과 위주의 질문을 하잖아요. -시험 잘 봤어? -친구 몇 명 있어? -친구 몇 명하고 친해? -왕따는 아니지? -성적은 잘 나왔니? -그래서 시험은 다 했어? 결과를 물어보잖아요. 항상 질문이. 근데 ‘과정’, ‘지금’을 물어봐야 해요. 지금 눈앞으로 돌아오는 질문을 해야 해요. -행복하니? -마음은 어떠니? -아, 그래서 어떤 느낌이었니? “오늘 시험 봤어요.” “몇 등 했는데?”가 아니고 “아 시험 끝나서 마음이 어때? 홀가분하겠네.” 그러면 “마음이 어때?” 이러면 자기 마음을 보게 돼요. “어, 그러네요, 맞네. 되게 홀가분한데요” 그 홀가분함을 비로소 그 질문 때문에 마주하게 돼요. 그렇게 지금과 마주하는 질문을 던져줘야 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망과 두려움 뿐

이 ‘나’라는 아상과 에고가 있는 동안은 나를 만들어 놨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더 갖고 싶은 것들이 생겨난단 말이에요. 내가 갖고 싶은 것들 그걸 욕망하는 삶을 살아요. 또 내가 버리고 싶은 것들 혹은 “나에게서 멀어지면 어쩌지?” “난 이건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고 내 인생에서 사라지면 어쩌지?” 싶은 게 두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나’라는 것에서 취사 간택이 생기니까 내 걸로도 취하고 싶은 거에는 욕망이 생기죠. 근데 이게 취해야 되는데 이게 자꾸 버려지는 것들 버리기 싫은데 버려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또 더 갖고 싶은데 못 가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그러니까 아상과 에고가 있는 삶은 욕망 아니면 두려움밖에 없어요. 욕망 아니면 두려움. 욕망은 내 걸 만들고 싶은 거고 두려움은..

대행 스님 법문_ 참된 방생이란?

방생은 뭐 이 자리에서도 방생이고 또 지나가다가 생각 한 번만 해줘도 방생이고 이건 무심 방생 유심 방생 유체의 방생 무체의 방생 뭐 헤아릴 수가 없지요. 방생이라는 뜻은 모든 걸 남을 이익하게 해줘야지 내 사리사욕을 취해서 방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방생이 아니죠. 예를 들어서 내가 그런 말을 합니다. 돈을 뜯겨서 울고불고, 보증을 서고 울고불고 돈을 빌려주고 받지를 못해서 울고불고 그런 사람이 가끔 있죠? 그러면 애당초에 당신이 밥을 먹고 내가 이것을 빌려주고 내가 이걸 못 받아도 할 수 없이 그건 꼭 줘야만 되겠다 할 때는 줘라 이거야. 주되 그거를 되받으려고 생각지는 마라. 그 사람이 잘 돼서 줄 때까지 주게 되면 다행이고 못 주게 되면 외려 그건 안되니까 그 사람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받으려고..

대행 스님 법문_ 미생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지금 어떻게 표현을 할까? 저 콩나무를 표현을 할까? 콩이 말이야. 콩 씨가 있어서 땅에다 심었더니 콩싹이 났어. 뿌리로 화해가지고 싹이 났다고. 싹이 났는데 그 싹이 그 뿌리에 의지를 해야 뿌리에 의지를 해야 싹이 잘 되지? 그러고 또 콩씨가 열리지? 콩꽃이 피고. 그럼으로써 또 내년을 자기가 콩나무가, 내가 내년을 또 기약한다는 생각도 없이 영원히 지속해서 이어가는 거야. 그 생각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자연적으로 그렇게 이어가게 돼 있단 얘기야. 그러면 자기 뿌리는 자기 싹을 위하고 자기 싹은 자기 뿌리를 연상하고… 즉 붙들고 믿고 나가야지. 그런데 그 콩이 말이야 화해서 뿌리로 화했는데 그게 무슨 콩이냐고 그럴 거냐 이거야. 그래서 무슨 콩이냐고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찾으려고 아무리 뿌리를 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망? 문제 없어!

욕망도 욕망 있는 게 뭐 문제겠어요. 사람이 살려면 이 몸을 이 에고를 가진 이 몸뚱이를 가지고 우리는 일단 인생을 이렇게 이 꿈속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얘가 원하는 것을 충족해 주면서 사는 게 왜 문제예요? 당연한 거예요. 당연히 그러고 살아야 해요.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다만 그 욕망이 과도했을 때 문제가 되는 거지.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얘는 얘가 할 역할이 있어요. 인연 따라 그 인과응보라 그랬잖아요. 인연 따라 얘가 할 이번 생의 역할을 얘는 알아서 하게 돼 있어요. 그냥 내가 신경 안 써도. 그러니까 얘는요 여러분이 아니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얘는 얘가 할 일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세요. 얘가 그 일 잘하든 못하든 나랑 상관없어요. 잘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연결된 전체가 나다

이 세상은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저절로 되는 거지.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나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이 태양이,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새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

나가르주나, 대승불교의 아버지 - 용수 / 공사상 / 연기 / 중도

붓다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가르침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결집을 통해 붓다의 뜻을 이어갔죠 하지만 100년 후 두 번째 모였을 때 교단의 분열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 약 400년 동안 부파불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물줄기가 갈라지듯 수많은 부파들이 생겨났죠 이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분석하고 정리했습니다 불교 이론이 갖춰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죠 하지만 너무 이론에만 치중했던 것일까요? 어려워진 불교는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불자들은 점점 더 교법에만 집착하게 되었죠 서기 2세기 누군가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불교 이론들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이들이 과연 진정한 붓다의 본질에 맞는지 의심했습니다 스스로를 가르침에 가두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공사상으로 진정한 해탈을 이야기합니다 수행 끝에 마..

대행 스님 법문_ 보이지 않는 주인공을 쉽게 잡는 법

네 그러죠. 지금 주인공이 안 계시다면 댁에서 지금 송장이 될 겁니다. 지금 말씀하시게 되는 것도 그 자기의 근본, 생명의 근본이 있기 때문에 지금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그놈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그냥 천차만별로 시키고 있습니다. 시키는 게 아니라 자율적이죠. 그러니까 그놈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쥘 수도 없지만, 역력하게 말씀하게 만들고 보게 만들고, 듣게 만들고 작용하고 살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마음이 다르고 그냥 마음이 다르다, 이런 거는 이 속의 모든 의식들이 한데 합쳐서 하나로 돌아가는 거를 한마음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내 내면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만 알면 외부의 하나로 돌아가는 것도 다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나부터..

대행 스님 법문_ 직장상사가 미워요

그런데 잘 말했어. 뿌리는 한 뿌리지만 모습은 다 각각이야. 나무 이름이 다 각각이듯, 안 그래? 그지? 근본이 둘이 아니지 그 모습은 제각기 천차만별이다 이거야, 마음 씀씀이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나는 직원이다, 저 사람은 위..., 뭐라고 그러지? 상사? 상사 위에 또 상사가 있고 그런데 그 상사들끼리 그렇게 하면 자기네들 직원들한테도 이익이 별로 없지. 그러는 것도 상사다 직원이다 하는 가설이 돼 있잖아? 그지? 회사에 가면 이거다 이거다 하고, 전기가 가설이 돼 있듯이 그 마음과 마음이, 나는 바로 이 회사의 직원이고 저 사람은 상사다, 이런 걸 알고 있지? 그러니까 그게 가설이 된 거야. 마음과 마음이 가설이 돼 있다고. 그러니까 내 보당(한국어; 단추)을 누를 때에 ‘에이, 저기도 불 좀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다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잡아함경 과거에 지은 업이 있으면 거기 따라 보를 알아서 받을 거예요. 그런데 죄지은 사람이 나도 아니고 죄를 받을 사람이 나도 아니에요. 그거는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어요. 그냥 업보만 있어요. 업보는 인연따라 일어나는 거니까 받으면 되는 거고 뭐 거부할 수 없는 거고. 그래서 우리는 이대로 안전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옛날에는 나쁜 놈이었어도 지금 안전하다니까요. 지금 무죄라니까요, 무죄. 옛날에 죄가 있었어도 지금 무죄라니까요. 옛날에 잘 나가는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어도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에요. 불교는 에고가 절망하는 공부거든요. 우리는 불교 영적인 공부를 하면서 내가 더 에고의 우월감을 느껴요, 처음에는. 근데 나중에는 이 마음공부는 자기의 우..

대행 스님 법문_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태어나서 시발점으로 이렇게 종교를 믿고 이렇게 가는데 여기까지 와서 여기를 한 번 뛰어넘어서…, 이게 생사에 관한 건입니다, 이게 지금 말하자면. 물질세계에서 이리로 와서 여기를 다시 뛰어넘으면 이제 피안의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간다 이런 소리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이것이 쭉…, 이게 살아서 열반이라고 하는 경계입니다. 죽어서 열반은 없어요. 그러니까 한 번 내가 모든 것을 놔서 돌아서 죽은 세상까지 살아있는 세상과 죽어있는 세상이 동시에 같이 있는데 거기를 찰나찰나 이렇게 한 바퀴 돌 줄 알아야 모가 나지 않게 돌아갈 줄 알아야 50% 50%, 100%를 같이 굴릴 줄 알아야 이게 됩니다. 지금 그것을 뭐라고 그러셨죠? 처음에 물으실 때. 내 듣고도 또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보는 것이 전부다

그 생각에 자꾸 끌려가지 않도록 그냥 그걸 바라보면 돼요. 볼 뿐. 전부에요 그게. 이건 너무 단순한 공부예요. 이 공부는 그냥 보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명상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냐면 이걸 보고 나서 “봤으니까 내가 알아차려서 이걸 없애야 돼”라는 생각이 막 뒤따라오다 보니까 보고 나서 “봤으니까 사라지겠지. 이거 진짜 아니야. 이거 없애야 해. 이건 진실이 아니라 그랬어, 스님 법문에. 여기 끌려가지 마. 너 지금 끌려가고 있어” 이러면서 자꾸 속삭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생각으로 생각을 뒤덮으려고 그래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보면 돼요, 그냥. 아주 가볍게. 그냥 보고 보는 거예요, 그냥. 그게 다예요.

대행 스님 법문_ 해마다 백종 천도재를 모시는 이유

우리가 왜 밥을 먹고 또 밥을 먹습니까? 왜 아침 먹었으면 됐지, 저녁까지 점심까지 왜 먹고 그 이튿날은 또 왜 먹습니까? 보십시오. 아침 쇳송(종송鐘頌)에 부모의 은혜를 갚고, 국왕의 은혜를 갚고, 만물의 은혜를 갚고 모든 이 생물의 은혜를 다 갚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듯이, 우리가 낳아서 길러서 이렇게 해서 성장시켜서 놓은 부모입니다. 그러면은 그 부모가 낳아서 기르느라고 이 도리를 잘 배우지도 못한 채 그냥 허덕지덕 허덕지덕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겁니다. 지금 이 도리 알고 돌아가시는 분들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천도시킬 때는 다시 짐승으로 태어나지 말고 이 지금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무죄 석방으로…, 예를 들어서 개같이 살았으면 개로 태어나야 하고 독사같이 살았으면 독사로 ..

대행 스님 법문_ 시기심을 다스리는 이치

내가 시기 나는 마음이 생기 걸랑은 ‘시기 안 나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놓으라고 그랬죠. 또 즐거운 마음이 생기걸랑은 ‘즐거운 마음을 내게 해서, 같이 내게 해서 감사해.’ 하는 것도요. 그러니까 양면을 다 거기다가 놓으라고 그랬죠. 이게 똑 부러지는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잘되게 스스로서, 거길 믿으면 스스로서 잘되게 이끌어 갑니다, 이렇게. 댁은 그냥 어느 한 개체의 물건과 같은 겁니다. 로보트 있죠? 로보트가 어떠한 물건을 할 때는 누르고, 기계를 누르고, 그 시키는 데가 있어서 이 몸뚱이가 움죽거리듯 지금 우리가 전체가 그럽니다. 그러니까 ‘아이, 잘 가게 해서 감사해’ 또 어디가 고장이 났다 이런다면 ‘ 고장이 나게 한 것도 너니까 고치게 한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놔야 합니다. 그..

대행 스님 법문_ 선과 악을 받아들이는 법

긍정적인 일은 해야죠? 그런데 부정적인 일은 하지 말아야죠? 그렇게 댁에서 ‘긍적적이다 부정적이다’ 하는 걸 알고 벌써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묘법이죠. 그 알고 있는 자체가. 그러니까 벌써 알고 있기 때문에 안하게 되고 알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것이 긍정이다 부정이다 하는 것이 한 구멍에서 나오는 거지 두 구멍에서 나오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나오는 대로 긍정적으로 나오는 거 이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부정적으로 나오는 것도 너한테서 나오는 거니까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도 너한테서 나올 수 있잖아.’ 하고 거기다가 놔라 이 소리예요. 한 구멍에다가! 누가 하라는 게 아니에요. ... 이거 봐요. 받아들이라는 이치는 이게 나쁜 사람이 나한테 접근을 해올 때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들숨에 미소, 날숨에 평화

틱낫한 스님께서 들숨에 숨을 들이쉬면서 ‘미소’ 날숨에 ‘평화’ 이렇게 말씀하신 게 억지로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보게 되면 미소가 띠어지게 돼요. ‘또 올라왔구나’ 하고 내가 거기 바로 올라온 생각을 따라가느라고 경직되는 모습을 보게 된단 말이에요. 보면서 그냥 스르륵 미소가 띠어져요. 그 말이 뭐냐면 스르륵 긴장이 풀린단 말이에요. 스르륵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걸 보게 되는 거예요, 그냥. 그래서 그냥 웃어넘겨요. “또 끌려갔구나” “또 끌려갈 뻔했구나” 그게 보인단 말이에요. 그냥 보면 그냥 미소가 띠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 속에 평화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바라보면 돼요. 그러면 두려운 것도 없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두려울 때 그저 볼 뿐

마인드 플리스, 알아차림 지관, 사띠, 위빠사나 멈추고 보라는 거예요. 왜? 진짜가 아니니까. 두려운 생각이 일어날 때 그냥 보라는 거예요. 다른 거 아무 것도 할 것도 없다. 없애려고 애쓸 거 없다. 없애려고 애쓰려고 하면 없애려고 애쓰는 마음이 여기 힘을 실어 줘요. “없애야 되는데” 하는 막 강력한 생각을 부여하기 때문에 “안 없어지면 어쩌지?”하는 두려움도 같이 부여해요. 그러니까 없애려고 애쓰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두려운 마음 생길 때 “이러다 병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두려운 마음이 딱 생길 때 그걸 없애려고 애쓰는 거는 이 생각을 더 강화한단 말이죠. 애쓸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볍게 보면 돼요, 그냥. 지관, 생각을 더 그 생각에 자꾸 끌려가지 않도록 그냥 그걸 바라보면 돼요. 볼..

대행 스님 법문_ 물질보시와 마음보시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렇습니다. 한 바가지 주면 한 바가지가 이자가 늘어서 세 바가지가 올 거고 한 바가지를 훔쳐 갔으면 세 바가지가 손해를 보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천연적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한 바가지를 주면 세 바가지가 오지만 예를 들어서 얘깁니다. 한 바가지를 훔쳐 갔다면 세 바가지가 외려 손해가 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그런 마음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그런데 없으면 채워주고 없으면 채워주고 할 수 있는 자기 그 보배가 모두들 여러분한테 있습니다. 있는 거를 해서 자기가 가질 생각은 자기가 있는 데서 자기 거 먹을 생각은 안하고 딴 거를 물질로써 훔치려고 한다면 그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 아상(我相)이나 인상(人相)이나 뭐 수자상(壽者相) 이런 게 상이 많아서 남을..

대행 스님 법문_ 나를 발견하는 관법

그냥... 생활선법(生活禪法)이 아닐까요? 그냥 우리가 생활하면서 하되 그렇게 모든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냥 내 주인이 그렇게 시키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 주인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래라 이런 게 참선입니다, 그냥. 그대로 참선이에요. 그런데 이게 두 가지 여건에서 세 가지 단계로 내가 얘기한 겁니다, 그게. 왜냐하면 나를 발견을 못 했으면 진짜 공부를 못 하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면 저녁이면 조용한, 남이 다 자고 조용한 틈을 타서 한 30분이라도 앉아서 '이놈아, 네가 너 있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거지 누구가 증명을 해주느냐.' 이거죠. 당신이, 당신이 있다는 것을 당신만이 증명을 해줄 수 있는 거지 누가 증명해 주느냐 이거야. 그것이 똑바로 직속 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한다

“얘가 잘 알아서 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다음 달에 중요한 발표가 있거나 중요한 자식 시험이 있거나 중요한 남편 진급에 달렸는데 “이게 잘 될까?” 막 조바심 내지 않아도 돼요. 지가 알아서 할 거예요. 내가 그러지 않아도. 얘가 알아서 할 거에요, 그냥. 얘는 어떻게 알아서 하느냐? 전자동으로 알아서 해요. 어떤 전자동일까요? 그게 업습이거든요, 업식이고. 업이라는 건 과거에 지어왔던 수많은 행위들이잖아요 행위들이 식, 의식으로 쌓여서 자기 인식에 다 아뢰야식 속에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은 얘가 아뢰야식 속에 다 가지고 있어요. 다 취해서 이걸 나라고 알고 있는 에고가 있잖아요. 이건 얘가 할 일이에요, 그냥. 얘가 알아서 할 거예요. 여러분이 걱정 안 해도 얘가 알아서 ..

대행 스님 법문_ 이유가 많으면 문이 닫힌다

묻는 거를 그렇게 길게 물으면 어떡합니까? 하여튼, 그 말뜻은 우리가 배우는 측에 있어서 맡겨놓는다, 이게 맡겨놓는 그 선을 세워야 우리가 마음이 안위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러나 걷지도 않고 뛰려고 한다면 안 돼요! 지금 말하는 거 보니까 걷지 않고 뛰려고 하거든. 내가 진짜 걸어 보고 내가 뛸 수 있어야 뛰는 것이지 걸어 보지도 않고 뛰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돼. 댁이 그 뜻을 알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묻질 않아. ‘내가 놓을 것도 없다’ ‘놓을 것도 없는 데에 놔야 된다’ 이런 것은 뭐냐 하면 ‘돌려 놔라. 돌려 놓지 못하면 입력된 게 그대로 나온다.’ 입력돼서 나오는 거는 피하려야 피할 여지가 없어. 그러니까 입력돼서 나오니까 그것을 다시 바꿔서 입력을 해라, 이 소린데 이 세상..

대행 스님 법문_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

그런데요, 아까 내가 얘기했죠. 한발짝 떼어놓으면 한발짝 없어지고 또 한발짝 떼어놓으면 한발짝 없어진다고요. 그랬죠? 그것이 가만히 편안하게 다 버리고 있으란 말이 아니죠. 어떻게 들었어요? 연방 발이 고정되게 붙어있는 게 아니라 떼어놓는 거죠. 그러니까 아까 얘기할 때 ‘나를 버려야 된다’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 자불(自佛)이 하는 거다’ 한다면 나를 완전히 버리는 거예요. 안 그래요? 간략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나를 버려라’ 하는 것은 나를 버리고 중심, 즉 자불만 믿어라 이 소리거든요. 당신이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 없으면 몸은 송장이 되거든? 그 내 몸이 없는데 어떻게 자불이 있겠나. 그러니 몸뚱이는 자동차와 같고 자불은 운전수와 같거든. 그러니 차는 운전수를 믿어야지? 또 딴 걸로..

대행 스님 법문_ 선행하는 것도 악행하는 것도 다 내 한마음에 있다

말이야 항상 하는 말이 그 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전부 차원이 달라지고 그러겠죠. 그냥, 보통 그냥 ‘저 스님은 저런 말씀, 항상 저런 말씀하신다.’ 이러고 그냥 가지 마세요. 이 보이는 게 없으면 여러분들이 보이는 게 없어서 공부하는 데 지장이 많아요. 그러니까 보이는 게 있을 때 여러분들도 같이 공부를 하시구요. 아까도 그런 말을 했지만 악한 거 선한 거…, 이 악한 거를 쓸 때는 어떻게 되고 선한 거를 쓸 때는 어떻게 되나. ‘주는 거 나쁘다고 하는 사람 없다. 그런데 악한 걸 주면 나쁘다고 한다.’ 이런 거요. 그런 걸 여러분들이 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냥 여여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다 알고 계시잖아요. 악한 거는 나쁘고 선한 거는 좋다는 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대행 스님 법문_ 마음공부에도 욕심이 필요할까요?

욕심이 있고 없고 간에 자기 분수대로 자기가 능력대로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죠? 거기에는 자기의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더하고 덜함도 없겠죠. 자기 지금 능력대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 능력대로 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대로 자기가 하고 있고 자기가 살고 있고 하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주인공, 자기한테 되놓는 겁니다. 현재 자기가 과거 자기한테 그냥 다 놓듯이 현재 자기와 과거 자기가 둘이 아니게 바로 삼심(三心)이 일심(一心)으로 공했으니까 주인공(主人空)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고 가는 거 자기한테다 놓는다. 그러나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그냥 자기가 하고 자기가 그냥 하고 있는 자체 자기가 공했으니까, 주인공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놓고 아주 편리하게 편안하게 그대로 ‘너가, 네 놈..

대행 스님 법문_ 감사함은 모든 것을 녹인다

그런데 말이야 그 지금 마음이 아니라 다 그렇게 욕심부리고 그러는 마음 말고 말이야 움죽거리지 않는 마음이 바로 중심이 되거든. 심봉이 돼. 그 마음과 이렇게 동일하게 됨으로써 거기에다 코드를 꽂거든? 그러니까 지금 그 욕망, 의욕, 그것도 좋은데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그대로 왔다야 그거는, 아주. 시쳇말로. 그냥 감사, 모든 게 다 감사하다면 그냥 뭉청뭉청 무너져 유전성이라든가, 영계성이라든가, 업보성, 인과성, 세균성이 그냥 몽땅몽땅 무너져. 무너지게 되면 환하게 문 아닌 문이 보여. 그랬을 때에 그 문으로 털썩 들어서면 들어서는 사이 없이 들어서게 돼. 그러면 그 뭐,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그 주인이 자긴데 뭐 그러니 얼마나 좋겠어. 그러니까 그저 감사하면 모두가 녹아지게 돼 있어. 그전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