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 1716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현실이라는 진실에 만족하며 살기, 진을 빼고 살지 않기

내가 만나는 친구나 친지나 형제나 다른 남편들은 정말 자상하고 돈도 잘 벌어오고 아내한테 잘하고 항상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행복한 삶을 매일 살고 있는데 나는 이 남편 하나 잘못 만나서 저 놈을 만나서 내가 한다고 하면서 “저 남편, 저 남편은 정말 저런 남편하고 사는 여자는 기분이 어떨까?” 그래봐야 그것은 내 분별심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인생이 비효율적으로 바뀌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 나에게 있는 현세, 현실이 현실이라는 진실을 만족하지 못하면. 삶이 되게 비효율적으로 바뀌죠. 왜 비효율적이냐? 자꾸 이 사람을 미워해야 하니까. 자꾸 나와 인연도 없는 저 사람을 동경해야 하니까. 막 분노, 질투, 화 이런 게 계속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런 거에 에너지를 빼고, 진을 빼며 살아야 하니까.

대행 스님 법문_ 일체를 다스리게 그냥 주인공에다 맡겨놔라

사람이 말이에요. 항상 이쁘나 미우나 볼 때에 아주 긴 여행이 아니라 짧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죽은 송장이나 아니, 죽은 송장이 아니라 죽은 영혼이나 산 영혼이나 똑같애요. 50프로가 산 영혼이라면 50프로가 죽은 영혼이죠, 보이지 않는 영혼. 그렇다면 내가 볼 때는 평등해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리고 현실로 이렇게 수억겁을 살아나온 그 과정의 모습들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 여러분들도 잘 아시라고 몸뚱이 속에 있는 그 모습들을 한번 생각해 봤느냐고 하죠.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온 인연으로 인해서 모두 한 데 한 개체가 된 거라고요. 그런데 '죽어야 한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이 자기가 자기가 아니라구. 자기 몸뚱이는 자동차와 같다면 그 자동차..

대행 스님 법문_ 우리가 왜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그것도 우리가 생각을 가만히 해봐요. 바람이 있고, 흙먼지가 있고, 물이 있고 이건 스스로 자생으로서 그냥 생기는 거죠. 이건 자연의 원리면서 자연의 이치예요. 그렇게 생겨서 모아지고 모아지고 하다보니까 온기가 생긴 거죠. 그래서 생명체가 생기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날까지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도 제일 나중에 됐다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제일 나중에 돼서 살아가면서, 살다 보니까 진화도 되고, 살다 보니까 물리도 터지고 살다 보니까 모든 게 물리가 터져서, 지금 보세요 얼마나 방대하게, 의학이나 과학이나 많이 방대해졌나. 그러나 우리가 최초에 내가 어디서 온 거를 모른다면 모두가 아주 귀한 과학자가 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자가 아니죠. 남의 생명을 우습게 생각하고 남의 일을 모두 우습게 생각하고 깔보는..

대행 스님 법문_ 조상과 후손이 함께하는 공양의 의미

그렇게 되면 그거부터 얘기해야겠군요. 내가 항상 말하기를 “위패를 정해놓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죠. 우리가 살 때에 자유스럽게 사는 것과 죽은 사람도 체가 없이 사는 도리를 알게끔 된다면 관습과 습이 없어진다면 자유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하기 위해서 위패를 정해놓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냐하면 천리만리라도 손가락 하나만 끄덕하면 다 모이는데 왜 그것을 거기다 묶어놓고 있습니까? 그러면 공부하는 데도 지장이 있고 스님네들한테도 지장이 있고 여러분들한테는 물론이고, 그렇게 된단 얘깁니다. 그러니까 또 여러분들이 그렇게 공부를 못하고 그런 것만 알면 연방 찰나찰나 영령들이 이렇게, 조상님들이 집이 들으셨다가도 그 도리를, 집이 마음을 읽어보고 가시는 거예요. 마음을 읽어보시는데 마..

대행 스님 법문_ 모든 게 갖추어져 있는 자기 근본을 믿고

‘너만이 낫게 할 수 있잖아.’ 하는 거는 진짜로 믿으니까 그렇죠? 또 ‘둘이 아니잖아.’ 하는 거는 즉 말하자면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잖아.’ 이 소리가 나오죠. 결국은 우리가…,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유전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결과든지 다 유전에 의해서 모두 대대로 유전으로 인해서 그렇게 수백 년을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 수천 년을 내려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유전이라는 게 그 잠시 잠깐에 그 유전을 해치시킬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이 공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모두 어저께가 과거입니다. 어저께가 과거고 아까 한 시간 전이 과거니까 우리가 과거다 미래다 또는 현실이다 하실 게 없이 그대로 공해서 그대로 공해서 우리가 항상 이렇게 하되 자기가 하는 게 아니죠! 얼른 쉽게 말해..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불성이라는 생명력이 선장이다

여러분들의 이 몸체가 공체共體라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도 빠질 것도 없고 들여놓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유를 해서 따진다면 방편으로써 선장으로 진짜 마음, 진정한 마음을 선장으로 하고 자기 육신 속에 있는 생명들은 중생으로 하고 이 모습은 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만이 그 배에서 움죽거리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냥 비바람이 치고 뇌성벽력을 하는데도 잠자코 그냥 무사히 타고 건너갈까요? 건너오기도 하고. (오직 그 선장만을 믿고서 믿고 간다면 거기에는 딴 하자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분이 다 자기 불성이라는 그 생명력을 즉 말하자면 선장이라고 비유한다면 아주 어떠한 비가 온다 하더라도 비가 안 올 것이고 또 어떠한 바람이 분다 하더라도 바람이 안..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삶은 애쓰지 않아도 막 강렬하게 뭔가를 막 추진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열정은 인연 따라 시절 인연이 탁 분발 돼버리면 자연스러운 삶의 열정은 저절로 나오는 거거든요. 모든 일은 내가 과하게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삶은. 원래 이 삶은 저절로 해요, 전부다 상당히 효율적이죠. 적은 노력을 했는데 큰 걸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큰 걸 얻고 싶어도 그게 때가 아니면 시절 인연이 아니면 죽도록 노력을 해서, 에너지를 막 300, 400, 500 죽을 것처럼 에너지를 투여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안 될 거는. 그러니까 안될 거에 공연히 기를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느라고 효율성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단 말이죠. 삶을 스트레스받아가면서 뭐 유의 조작할 필요가 없단 말이죠.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마음이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본래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은 그게 아닙니다. 상대를 보고 해달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형상과 내 형상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요 그 뜻도 또한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부처님이 내 몸과 둘이 아니고 마음이 둘이 아니라면 해 달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네 마음을 먼저 알아야 내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그럼으로써 네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뒤에는 "만약에 네 마음이 전깃줄이라면 내 마음이 또 전깃줄이라면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치면 불이 들어올 뿐이지 거기서 ‘해달라 안 해달라’ 이런 게 붙지 않느니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기복이라는 얘기가 지금 나오는데 부처님이 가르치실 때는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욕심과 현실 사이의 갭만큼 괴롭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살면 우리 마음은 비효율적이다. 공연히 안 해도 되는 거 괜히 기를 쓴단 말이에요 그렇게까지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되는데 진 빠지는 삶을 산단 말이에요. 아이가 성적이 안 나오는 데 어느 정도 공부시켜도 되는데 이 만큼까진 안 될 건데 요만큼 될 게 그 아이의 인연인데 업이고 팔자인데 이만큼 되길 바라면 이만큼 갭만큼 죽도록 해도 안 나올 건데 성적이 그분이 만큼 노력한 만큼 괴롭겠죠, 그죠?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전생에 복 지은게 예를 들어 복 지은게 내가 이번 생에 감당해야 할 복이 1억, 2억 버는 부자다, 이번 생 내가. 그런데 나는 10억을 벌고 싶다 그러면 8억의 갭만큼은 죽도록 해도 안 될 거 아니에요.

대행 스님 법문_ 내 마음의 문이란?

ㅎㅎ 질문 쳐놓고는 아주 가까운데 두고 질문을 찾으시는군요. '문이 없어 문을 찾지 못하고 문이 많아서 문을 찾지 못하고' 하는 소리는 우리 자체가 이거 말로 할 수는 없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다 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문이라 딴 데서 문을 찾아서는 아니 되죠. 내 마음의 문이란 천궁을 통하는 문입니다. 내 마음의 문이란 천궁을 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문이 많아도 문 찾기 어렵고 문이 없어서 문 찾기 어렵고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가운데 어디에 문이 있는가. 바로 내 빗장문을 열어야 열리는 거지 내 빗장문을 열지 않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대답이 알쏭달쏭합니까? (일체 생명은 자신을 위하여 이생에 온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대중을 위하여 이생에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같은 생각은 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자기를 확인하는 명상

잠깐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라는 이 생명력? 내가 이렇게 있는 이 느낌? 이걸 한번 가만히 느껴보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려 보세요. 생각에 내가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이 살아있음? 여기서 이게 바로 내면의 나가 가진 에너지 거든요. 내가 이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이 속에서 나의 에너지 나의 생명? 생명력이 느껴져요. 그냥 지금 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어떤 존재감이랄까요? 이렇게 있는... 이렇게 있음 속에 잠시 그냥 있기만 해도..

대행 스님 법문_ 둘이 아닌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주고받고 삽니다. 더불어 살지 혼자 사는 사람 없어요. 옷도 더불어 같이 주고받고 입었고 먹는 것도 주고받고 먹고 모두가 일체가 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둘 아니게 실천을 하느냐 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분명히 줬고 분명히 받았는데 어째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이렇겠죠? 그런데 내가 전깃줄 얘기를 가끔 하죠. 전기, 전력이 들어왔을 때는 이게 불이 들어옵니다. 전력이 끊어졌다 이럴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면에 전깃줄을 갖다가 이렇게 이어야 전기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들어오듯이 이것은 이거를 주고받을 때, 이걸 줄 때 이걸 받을 때, 이게 한 순간은 같이 이 마음이 즉 말하자면 정신계가 둘 아니게 이어진단 얘깁니다. 이어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삶에 일체를 내맡겨 버려,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식대로 통제하고 지배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막 기를 쓰지 않아요. 변화시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반드시 이것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단 말이에요. 반드시 이것만이 절대 진실한 생각이 없이 그냥 가볍게 가볍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매 순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나는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것이 좋으니까 내가 지금은 이것이 내 머리로 쓰는 최선이니까 그걸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나 결과에 대한 집착은 없이 내맡기는 거죠. 그랬을 때 생각을 믿지 않거든요. 근원에서 겉으로는 생각이 원하는 걸 하지만 근원에서 생각을 믿지 않아요. 진실을 믿지. 그러니까 결과는 내맡기게 돼요. 현실은 내 생각대로 막 하지만 결과는 완전 내맡기..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금을 늘려가는 관법

가만히 보면 여러분들이 참 답답할 때가 많이 있지만 나는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ㅎㅎ 너도 예전에 저렇게 몰랐었지? 내 모습 같구나!’ 이렇게 하면 정말 진정코 애달프고 애처롭고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저걸 몰라서, 저거…’ 이렇게 되질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고요. 여러분들이 지혜가 풍부해야 자비도 조건 없는 자비도 나오지 지혜가 풍부치 못하면 조건 없는 자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하고 부모를 위한다 하더라도 자유스럽게 놔두고 행해야지 말로나 행동으로나 억압하고 이렇게 한다면 즉 말하자면 마음이 넓어지려야 넓어질 수가 없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고 저 산천초목의 모든 푸르름도 가만히 보세요. 제 이파리가 져 떨어지고, 져 떨어지는 것이 거름이 되고, 거름이 되고 또 거기서 잘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가 세상에 와서 살다 죽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내 위에서 오고 간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 30대, 40대, 50대, 60대 인생을 보내다가 나는 죽으면 떠난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이 우주는 그대로 있지만 나 혼자 떠난다. 얼마나 외로운 길이에요. 지금 다는게 이렇게 생각하면. 이 수행을 통해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고 본다면 “아, 내가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내 마음이라는 이 한바탕 속에 이 세상이 삼라만상이 이 우주 전체가 왔다 가는 거구나. 반대였구나” 이런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전혀 두렵지 않단 말이에요. 수행을 통해 지혜를 공부하고 보면 “아 내가 두려울 것이 없구나. 정말 자유롭게 살 수 있구나. ” 정말 안심 법문 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참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구나” 한 세상 ..

대행 스님 법문_ 내 안에 천차만별로 쓸 수 있는 샘물이 있어서

질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질문으로 알고 이 코를 만지든, 귀를 만지든, 다리를 만지든 그 모든 몸이 한 군데에, 내면 한 군데서 들이고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자기 잡을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마는 자기를 그렇게 움죽거리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그게 몸뚱이 하나를 하나로 돌아가게 하죠. 그걸 아셔야 이 우주 전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걸 아시게 됩니다. (스님께서 앞에 설법을 다 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시 질문 올리겠습니다. 마음의 용(用)에 있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통 살아나가는 데 그런 생각들을 안 하시고 사시죠. 우리가 공생(共生)으로 삽니다. 공생으로 살죠? 우리 몸뚱이 하나를 보더라도 공생입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그 까닭에 공심(..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를 살게 해 주는 모든 인연이 전부 나, 삶 전체가 바로 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태양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 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 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세 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까요. 이 우주 전체가 없어 내가 없는 거니까 진짜 나는 이게 아니에요. 그 연결된 전체가 나지.

대행 스님 법문_ 경전을 보되 자기 없는 자기가 보게 하라

진짜로만 믿으신다면 자기가 지금 말하고, 듣고, 보고, 행하고 가는 그 자체를 잘 뒤집어서 자기를 보실 수 있다면 진짜로 지혜로워야만 자비도 나오고 자비를 할 수가 있어야만 내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루만지는 것도 자기요 어루만지는 걸 받는 자도 자기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냐 하면요 내가 항상 얘기해드리죠. 이 전자 줄이 하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마저 쥐고 이건 행하는 자와 즉 말하자면 어루만져 주는 자와 만지키는(만지도록 하는) 자가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믿고 말을 할 때는. 믿지 않든 믿든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가 돼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자 줄과 줄이 한데 합치면 그냥..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라는 독특한 부처로 태어난 삶, 이것이 진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 우주 전체의 여러분 한 명밖에 없잖아요. 삶을 이렇게 경험한 사람, 나밖에 없잖아요. 그 자기 그 내 현실 그게 진실이에요. 부처님은 그걸 경험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보낸 부처님도 여러분이고 온 나도 부처님이에요. 내가 나를 보냈단 말이에요. 나가 나를 경험하려고.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우주의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부처가 이렇게 이걸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부처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뜻을 이루어야죠. 그 뜻은 이미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까 이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그 속으로 뛰어든다? 뛰어든다 해도 뛰어든 내가 있고, 뛰어드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뛰어들어져 있어요. 그걸 그냥 허용하고 살아 주면 돼요. 그게 진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죽지 않는 길, 괴로움 없는 길,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아, 이제 발견했다. 돈, 명예, 권력, 지위 이거는 진짜 즐거움이 아니었구나. 그건 왔다 가는 것이었구나.” 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삶이 젊었을 때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즐겁고 재미있고 뭔가 가슴 뛰는,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가슴 설레게 해요. 왜? 죽지 않는 길이니까. 늙고, 병들고, 죽지 않는 길 괴롭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는 길 두려움 없이, 외로움 없이 정말 살아갈 수 있는 길. 그런 가능성이 정말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대행 스님 법문_ 내 주인공에 연결돼 한마음으로 상응하는 수많은 부처님

그러면 이 말씀 뜻에서 몇 마디 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전부 필요한 점이니까요. 서방정토에 아미타라고 합니다. 또는 화엄경이라는 그 자체가 바로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즉 말하자면, 무아의 정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냥 이게 부처님들 이름이 수 많지마는, 또 우리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천차만별로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또 천차만별의 차원이 있고요. 그 가운데는 천차만별의 업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업보라는 건 무엇인가? 업보라는 것은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건 나중에 잇도록 하고…, 이 수많은 부처님들 이름들이 여래불이니 부처님이니 이렇게 하고, 또 아미타니 이렇게 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 생각을, 이걸 깨닫지를 못해서 생각을 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공적영지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멸한다는 것을 누가 알죠? 무엇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분명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목격됩니다. 생멸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생이야 희극이든 비극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무언가가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라고도 하는데요 공적해서 텅 빈 가운데 그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소소영령한 아는 것이 있습니다.

대행 스님 법문_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 것

여러분들이 의심나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싶으면 질문해요. 오래간만에 또 이렇게 만났잖아. (다 답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요.) 그래, 지금 지구가 돌아가든지 우주가 돌아가든지 그게 돌아가는 데에 에너지가 나오는 것도 한 구멍에서 나오지 두 구멍도 아냐. 천차만별로 용도가 다르지마는 나오기는 한 군데서 나온다는 얘기야. 우리 쓰는 사람들이 용도가 ‘이래야 되겠다’ 하면 그 용도가 바뀌니까 그렇지.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우리가… ‘믿어라’ 하는 것이 열심히 믿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믿어라. 열심히 믿으려고 한다면 못 믿는 게 되니까 그냥 믿어라. 그냥 네 발과 같다, 네 발에도 눈이 있고 그 발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그 손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눈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이게 말로는 그거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만 없으면 이대로 좋다

미래에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무엇을 원해도 좋습니다. 그 모든 생각, 추구, 바람 들을 그저 왔다가 가능 손님처럼, 바람처럼 여기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말아 보십시오.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으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렇게 아무 일 없이 그러나 모든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그대로 존재하며 거기에서 삶을 즐기십시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대행 스님 법문_ 꽃이 피면 웃고 물 흘러가듯 사는 도리

우리가 모이자니 한 그릇을 만들어서 이렇게 같이 앉았지 않소? 그러니까 이것도 방편이자 현실이지. 그러니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그냥, 우리가 똥 마려우면 그냥 양면 아무 생각 없이 똥 누고 시원한 느낌을 느끼고 또는 배고프면 밥 먹고 그냥 배고프지 않구나 하는 거, 그냥 무심코 가는 거 졸리면 그냥 자는 거 그렇듯이 우리 생활이 다 그렇거든. 그러니까 함이 없이, 공 했으니까 함이 없이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뜻이지. 함이 없이 살고 있다고 하는 그 소리는 정말 50% 그 정신계의 모든 거를 하고 갈 수 있으니까 함이 없다 이런 거지. 물질계로다가 우리가 함이 있다면 그건 진짜 함이 아닌 것이지. 물질계로만이 아니라 물질계로, 정신계에서 물질계로 나와서 움죽거리게 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그냥 그냥..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누구인가, 오고 가지 않는 한결같은 이것

10대 때도 '나'라고 했고 지금도 '나'라고 하는데 10대 때의 몸은 갔는데도 10대 때 몸은 다 떠나가고 지금은 다른, 전혀 다른 '몸'이 와 있는데도 '나'잖아요.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고. 그 '나'가 누구예요? 그게 진여(眞如=불성=본성=참나)에요. (이것이) 모양이 있습니까? 모양 없잖아요. 옛날에 실연의 아픔이 있었고 지금은 사랑의 행복 있어요. 실연의 아픈, 그 느낌이 나입니까? 지금 사랑의 기쁨이 '나'입니까? 그 느낌이 왔을 때 온 줄 알고 갔을 때 간 줄 아는 이놈은 늘 여기 있잖아요. 여기서 느낌도 왔다 가게 생각도 왔다 가게 하고 의지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이 보수였을 때도, 진보였을 때도 자기, 자기는 늘 여기 있잖아요. 보수적인 생각은 왔다 가고 진보로 ..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도리를 조상과 후손이 함께 공부하는 자리

우리가 예전에 큰 사찰에서 스님네들이 열반하시면 꼭 화장을 했습니다. 다비식을 했죠. 그것은 왜냐하면 살아서도 공해서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집착을 하고 만약에 땅에다 묻는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그냥 공부 안한 사람들이 죽는다면 삼혼이 있다고 합니다. 삼혼이 진짜, 집에 하나 있고 하나는 돌아다니고 하나는 산소에 갑니다. 이게 이렇게 해서 집착을 하게 되면 사람이 사는 데도 영령들이 가면 이게 ‘먹는다’ ‘입는다’ ‘산다’ 애착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그 애착에 잠겨서 영 움쭉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영령들이. 그래서 자기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그렇게 헤매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몰라서 우리가 고생하는 거와, 고생이라고 하고 고생하는 거와 영령들이 또 고생을 하고 있는 거와 둘이 아..

대행 스님 법문_ 유전성이라는 이름도 없는 자리

그게 여러분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못났든 잘났든 살아나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생겼을 때 바로 생긴 자체가 내가 내 근본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종자가 있으니까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그 종자를 믿어야죠? 믿는다면 아무 문제 없고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믿으면 그냥 훌떡 넘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유전성이라는 건 생각을, ‘할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유전성이 이렇게 있구나.’하는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 앙금이 지워지지 않는 걸 그냥 무조건 그냥 믿는다. 이런다면 그냥 그 앙금도 없어질 텐데, 이럭하면 없어진다는 건 아는데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그 앙금마저도 없애려면 진짜로 믿어야 한다. 믿다가도 조금 저거하면 그냥 이렇게…, 예를 들어..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늘 한결같은 여여한 친구, 승승장구 잘하는 친구보다 늘 담대한 친구

어릴 때부터 끌렸던 친구들이 어떤 친구였냐 하면 “얘는 머리가 똑똑해서 뭐든지 물어보면 다 알아 이런 친구라든지” “쟤는 뭐든지 다 승승장구할 거야” 하는 이런 믿음을 주는 친구가 끌렸던 게 아니고요. “아, 저 친구는 성공을 해도 실패해도 그냥 묵연히 나아갈 것 같은” “실패하는 게 저 사람을 막 크게 막 좌절시키지 않을 것 같은 ” “저 사람은 실패도 괜찮을것 같은데?” 그런 든든함을 주는 친구 있잖아요 항상 승승장구만 하는 친구가 멋있는 친구가 아니었던 거죠. 승리가 하든 실패하든 성공하는 실패하든 여여한(한결같은) 친구 그런 사람이 진짜 멋있는 사람 이었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도전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욕도 먹고 칭찬도 받고 그러면서 인생을 이래저래 살아보니까 꼭 그게 ..

대행 스님 법문_ 이름조차 없는 이름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죠. 그건 옛날뿐이 아니라 어떤 중이 시장에 무엇을 사러 가면 쭉 한바탕 돌아봐요. 어린애를 업고 앉아서 요만큼 갖다 놓고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인네들이 또 뭘 갖다가 요렇게 조금 놓고, 물건이 많질 않으니까 빨리 시들고 빨리 그게 참, 애가 타는 거죠. 그러면 섰다 앉았다 섰다 앉았다 한다고요. 그거를 뒤집어 놨다가 바로 놨다가 하면서.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을 위해서 그걸 사들이는 게 아니에요. 보시를 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죠. 단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걸 몰아서 그런 것 쫓아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그 분들을 위해서 한다고 그러면 이거는 잘못돼 돌아가는 거예요. 내 마음이 편하게 하자고 해서…. 이 다리가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