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 1706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진정한 자기를 확인하는 명상

잠깐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라는 이 생명력? 내가 이렇게 있는 이 느낌? 이걸 한번 가만히 느껴보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려 보세요. 생각에 내가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이 살아있음? 여기서 이게 바로 내면의 나가 가진 에너지 거든요. 내가 이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이 속에서 나의 에너지 나의 생명? 생명력이 느껴져요. 그냥 지금 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어떤 존재감이랄까요? 이렇게 있는... 이렇게 있음 속에 잠시 그냥 있기만 해도..

대행 스님 법문_ 둘이 아닌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주고받고 삽니다. 더불어 살지 혼자 사는 사람 없어요. 옷도 더불어 같이 주고받고 입었고 먹는 것도 주고받고 먹고 모두가 일체가 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둘 아니게 실천을 하느냐 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분명히 줬고 분명히 받았는데 어째 둘이 아니라고 하느냐.’ 이렇겠죠? 그런데 내가 전깃줄 얘기를 가끔 하죠. 전기, 전력이 들어왔을 때는 이게 불이 들어옵니다. 전력이 끊어졌다 이럴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면에 전깃줄을 갖다가 이렇게 이어야 전기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들어오듯이 이것은 이거를 주고받을 때, 이걸 줄 때 이걸 받을 때, 이게 한 순간은 같이 이 마음이 즉 말하자면 정신계가 둘 아니게 이어진단 얘깁니다. 이어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삶에 일체를 내맡겨 버려,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식대로 통제하고 지배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고 막 기를 쓰지 않아요. 변화시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반드시 이것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단 말이에요. 반드시 이것만이 절대 진실한 생각이 없이 그냥 가볍게 가볍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매 순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나는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것이 좋으니까 내가 지금은 이것이 내 머리로 쓰는 최선이니까 그걸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그러나 결과에 대한 집착은 없이 내맡기는 거죠. 그랬을 때 생각을 믿지 않거든요. 근원에서 겉으로는 생각이 원하는 걸 하지만 근원에서 생각을 믿지 않아요. 진실을 믿지. 그러니까 결과는 내맡기게 돼요. 현실은 내 생각대로 막 하지만 결과는 완전 내맡기..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금을 늘려가는 관법

가만히 보면 여러분들이 참 답답할 때가 많이 있지만 나는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ㅎㅎ 너도 예전에 저렇게 몰랐었지? 내 모습 같구나!’ 이렇게 하면 정말 진정코 애달프고 애처롭고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저걸 몰라서, 저거…’ 이렇게 되질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고요. 여러분들이 지혜가 풍부해야 자비도 조건 없는 자비도 나오지 지혜가 풍부치 못하면 조건 없는 자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하고 부모를 위한다 하더라도 자유스럽게 놔두고 행해야지 말로나 행동으로나 억압하고 이렇게 한다면 즉 말하자면 마음이 넓어지려야 넓어질 수가 없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고 저 산천초목의 모든 푸르름도 가만히 보세요. 제 이파리가 져 떨어지고, 져 떨어지는 것이 거름이 되고, 거름이 되고 또 거기서 잘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내가 세상에 와서 살다 죽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내 위에서 오고 간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 30대, 40대, 50대, 60대 인생을 보내다가 나는 죽으면 떠난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이 우주는 그대로 있지만 나 혼자 떠난다. 얼마나 외로운 길이에요. 지금 다는게 이렇게 생각하면. 이 수행을 통해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고 본다면 “아, 내가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내 마음이라는 이 한바탕 속에 이 세상이 삼라만상이 이 우주 전체가 왔다 가는 거구나. 반대였구나” 이런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전혀 두렵지 않단 말이에요. 수행을 통해 지혜를 공부하고 보면 “아 내가 두려울 것이 없구나. 정말 자유롭게 살 수 있구나. ” 정말 안심 법문 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참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구나” 한 세상 ..

대행 스님 법문_ 내 안에 천차만별로 쓸 수 있는 샘물이 있어서

질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질문으로 알고 이 코를 만지든, 귀를 만지든, 다리를 만지든 그 모든 몸이 한 군데에, 내면 한 군데서 들이고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자기 잡을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마는 자기를 그렇게 움죽거리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그게 몸뚱이 하나를 하나로 돌아가게 하죠. 그걸 아셔야 이 우주 전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걸 아시게 됩니다. (스님께서 앞에 설법을 다 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시 질문 올리겠습니다. 마음의 용(用)에 있어서 원심력과 구심력에 대해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통 살아나가는 데 그런 생각들을 안 하시고 사시죠. 우리가 공생(共生)으로 삽니다. 공생으로 살죠? 우리 몸뚱이 하나를 보더라도 공생입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그 까닭에 공심(..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를 살게 해 주는 모든 인연이 전부 나, 삶 전체가 바로 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잖아요.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거든요. 공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숨을 쉬어요? 공기 덕분에 사는 거잖아요. 공기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건데 어떻게 이걸... 전체 공기가 다 나지. 햇살이 없으면 내가 없잖아요. 태양 전체가 나지 어떻게 나만 나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데요? 밥 한 끼를 먹어도 밥 한 끼랑 연결된 이 우주의 모든, 밥 한 끼에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근데 밥 한 끼와 연결된 우주 전체가 나잖아요. 그게 없어 내가 죽는데요? 하루에 한 끼도 아니고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세 끼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없다니까요. 이 우주 전체가 없어 내가 없는 거니까 진짜 나는 이게 아니에요. 그 연결된 전체가 나지.

대행 스님 법문_ 경전을 보되 자기 없는 자기가 보게 하라

진짜로만 믿으신다면 자기가 지금 말하고, 듣고, 보고, 행하고 가는 그 자체를 잘 뒤집어서 자기를 보실 수 있다면 진짜로 지혜로워야만 자비도 나오고 자비를 할 수가 있어야만 내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루만지는 것도 자기요 어루만지는 걸 받는 자도 자기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냐 하면요 내가 항상 얘기해드리죠. 이 전자 줄이 하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마저 쥐고 이건 행하는 자와 즉 말하자면 어루만져 주는 자와 만지키는(만지도록 하는) 자가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믿고 말을 할 때는. 믿지 않든 믿든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가 돼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자 줄과 줄이 한데 합치면 그냥..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라는 독특한 부처로 태어난 삶, 이것이 진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 우주 전체의 여러분 한 명밖에 없잖아요. 삶을 이렇게 경험한 사람, 나밖에 없잖아요. 그 자기 그 내 현실 그게 진실이에요. 부처님은 그걸 경험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보낸 부처님도 여러분이고 온 나도 부처님이에요. 내가 나를 보냈단 말이에요. 나가 나를 경험하려고.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우주의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부처가 이렇게 이걸 경험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부처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뜻을 이루어야죠. 그 뜻은 이미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까 이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그 속으로 뛰어든다? 뛰어든다 해도 뛰어든 내가 있고, 뛰어드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뛰어들어져 있어요. 그걸 그냥 허용하고 살아 주면 돼요. 그게 진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죽지 않는 길, 괴로움 없는 길,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아, 이제 발견했다. 돈, 명예, 권력, 지위 이거는 진짜 즐거움이 아니었구나. 그건 왔다 가는 것이었구나.” 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삶이 젊었을 때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즐겁고 재미있고 뭔가 가슴 뛰는,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가슴 설레게 해요. 왜? 죽지 않는 길이니까. 늙고, 병들고, 죽지 않는 길 괴롭지 않고 삶을 살 수 있는 길 두려움 없이, 외로움 없이 정말 살아갈 수 있는 길. 그런 가능성이 정말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지.

대행 스님 법문_ 내 주인공에 연결돼 한마음으로 상응하는 수많은 부처님

그러면 이 말씀 뜻에서 몇 마디 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전부 필요한 점이니까요. 서방정토에 아미타라고 합니다. 또는 화엄경이라는 그 자체가 바로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즉 말하자면, 무아의 정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냥 이게 부처님들 이름이 수 많지마는, 또 우리 살아나가는 생명들이 천차만별로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는 또 천차만별의 차원이 있고요. 그 가운데는 천차만별의 업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업보라는 건 무엇인가? 업보라는 것은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건 나중에 잇도록 하고…, 이 수많은 부처님들 이름들이 여래불이니 부처님이니 이렇게 하고, 또 아미타니 이렇게 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 생각을, 이걸 깨닫지를 못해서 생각을 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공적영지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멸한다는 것을 누가 알죠? 무엇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분명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은 목격됩니다. 생멸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생이야 희극이든 비극이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무언가가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라고도 하는데요 공적해서 텅 빈 가운데 그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소소영령한 아는 것이 있습니다.

대행 스님 법문_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 것

여러분들이 의심나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싶으면 질문해요. 오래간만에 또 이렇게 만났잖아. (다 답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요.) 그래, 지금 지구가 돌아가든지 우주가 돌아가든지 그게 돌아가는 데에 에너지가 나오는 것도 한 구멍에서 나오지 두 구멍도 아냐. 천차만별로 용도가 다르지마는 나오기는 한 군데서 나온다는 얘기야. 우리 쓰는 사람들이 용도가 ‘이래야 되겠다’ 하면 그 용도가 바뀌니까 그렇지. 그래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우리가… ‘믿어라’ 하는 것이 열심히 믿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믿어라. 열심히 믿으려고 한다면 못 믿는 게 되니까 그냥 믿어라. 그냥 네 발과 같다, 네 발에도 눈이 있고 그 발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그 손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눈도 천만 개가 될 수 있고 이게 말로는 그거를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집착만 없으면 이대로 좋다

미래에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믿지만 않으면 무엇을 원해도 좋습니다. 그 모든 생각, 추구, 바람 들을 그저 왔다가 가능 손님처럼, 바람처럼 여기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말아 보십시오.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으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완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이렇게 아무 일 없이 그러나 모든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그대로 존재하며 거기에서 삶을 즐기십시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대행 스님 법문_ 꽃이 피면 웃고 물 흘러가듯 사는 도리

우리가 모이자니 한 그릇을 만들어서 이렇게 같이 앉았지 않소? 그러니까 이것도 방편이자 현실이지. 그러니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그냥, 우리가 똥 마려우면 그냥 양면 아무 생각 없이 똥 누고 시원한 느낌을 느끼고 또는 배고프면 밥 먹고 그냥 배고프지 않구나 하는 거, 그냥 무심코 가는 거 졸리면 그냥 자는 거 그렇듯이 우리 생활이 다 그렇거든. 그러니까 함이 없이, 공 했으니까 함이 없이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런 뜻이지. 함이 없이 살고 있다고 하는 그 소리는 정말 50% 그 정신계의 모든 거를 하고 갈 수 있으니까 함이 없다 이런 거지. 물질계로다가 우리가 함이 있다면 그건 진짜 함이 아닌 것이지. 물질계로만이 아니라 물질계로, 정신계에서 물질계로 나와서 움죽거리게 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그대로, 그냥 그냥..

법상스님의 목탁소리_ 나는 누구인가, 오고 가지 않는 한결같은 이것

10대 때도 '나'라고 했고 지금도 '나'라고 하는데 10대 때의 몸은 갔는데도 10대 때 몸은 다 떠나가고 지금은 다른, 전혀 다른 '몸'이 와 있는데도 '나'잖아요.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고. 그 '나'가 누구예요? 그게 진여(眞如=불성=본성=참나)에요. (이것이) 모양이 있습니까? 모양 없잖아요. 옛날에 실연의 아픔이 있었고 지금은 사랑의 행복 있어요. 실연의 아픈, 그 느낌이 나입니까? 지금 사랑의 기쁨이 '나'입니까? 그 느낌이 왔을 때 온 줄 알고 갔을 때 간 줄 아는 이놈은 늘 여기 있잖아요. 여기서 느낌도 왔다 가게 생각도 왔다 가게 하고 의지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도 왔다 가게 하고 의식이 보수였을 때도, 진보였을 때도 자기, 자기는 늘 여기 있잖아요. 보수적인 생각은 왔다 가고 진보로 ..

대행 스님 법문_ 마음의 도리를 조상과 후손이 함께 공부하는 자리

우리가 예전에 큰 사찰에서 스님네들이 열반하시면 꼭 화장을 했습니다. 다비식을 했죠. 그것은 왜냐하면 살아서도 공해서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집착을 하고 만약에 땅에다 묻는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그냥 공부 안한 사람들이 죽는다면 삼혼이 있다고 합니다. 삼혼이 진짜, 집에 하나 있고 하나는 돌아다니고 하나는 산소에 갑니다. 이게 이렇게 해서 집착을 하게 되면 사람이 사는 데도 영령들이 가면 이게 ‘먹는다’ ‘입는다’ ‘산다’ 애착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그 애착에 잠겨서 영 움쭉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영령들이. 그래서 자기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그렇게 헤매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몰라서 우리가 고생하는 거와, 고생이라고 하고 고생하는 거와 영령들이 또 고생을 하고 있는 거와 둘이 아..

대행 스님 법문_ 유전성이라는 이름도 없는 자리

그게 여러분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못났든 잘났든 살아나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생겼을 때 바로 생긴 자체가 내가 내 근본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종자가 있으니까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그 종자를 믿어야죠? 믿는다면 아무 문제 없고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믿으면 그냥 훌떡 넘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유전성이라는 건 생각을, ‘할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유전성이 이렇게 있구나.’하는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 앙금이 지워지지 않는 걸 그냥 무조건 그냥 믿는다. 이런다면 그냥 그 앙금도 없어질 텐데, 이럭하면 없어진다는 건 아는데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그 앙금마저도 없애려면 진짜로 믿어야 한다. 믿다가도 조금 저거하면 그냥 이렇게…, 예를 들어..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늘 한결같은 여여한 친구, 승승장구 잘하는 친구보다 늘 담대한 친구

어릴 때부터 끌렸던 친구들이 어떤 친구였냐 하면 “얘는 머리가 똑똑해서 뭐든지 물어보면 다 알아 이런 친구라든지” “쟤는 뭐든지 다 승승장구할 거야” 하는 이런 믿음을 주는 친구가 끌렸던 게 아니고요. “아, 저 친구는 성공을 해도 실패해도 그냥 묵연히 나아갈 것 같은” “실패하는 게 저 사람을 막 크게 막 좌절시키지 않을 것 같은 ” “저 사람은 실패도 괜찮을것 같은데?” 그런 든든함을 주는 친구 있잖아요 항상 승승장구만 하는 친구가 멋있는 친구가 아니었던 거죠. 승리가 하든 실패하든 성공하는 실패하든 여여한(한결같은) 친구 그런 사람이 진짜 멋있는 사람 이었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도전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고 욕도 먹고 칭찬도 받고 그러면서 인생을 이래저래 살아보니까 꼭 그게 ..

대행 스님 법문_ 이름조차 없는 이름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죠. 그건 옛날뿐이 아니라 어떤 중이 시장에 무엇을 사러 가면 쭉 한바탕 돌아봐요. 어린애를 업고 앉아서 요만큼 갖다 놓고 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인네들이 또 뭘 갖다가 요렇게 조금 놓고, 물건이 많질 않으니까 빨리 시들고 빨리 그게 참, 애가 타는 거죠. 그러면 섰다 앉았다 섰다 앉았다 한다고요. 그거를 뒤집어 놨다가 바로 놨다가 하면서.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을 위해서 그걸 사들이는 게 아니에요. 보시를 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죠. 단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걸 몰아서 그런 것 쫓아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그 분들을 위해서 한다고 그러면 이거는 잘못돼 돌아가는 거예요. 내 마음이 편하게 하자고 해서…. 이 다리가 없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되도 좋고 안 되도 좋다, 가볍게 툭 털어 버려, 현실이 진실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돼” 하는 마음으로 올인하지 않아요. 우리 쉽게 말해 투자하는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이거 돈 된다고 하면 막 여기저기 막 그냥 끌어다가 막 투자 하잖아요. 이런 짓 안 한단 말이에요. 과도한 욕심 없으니까 되도 좋고 안 되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만 다 하는 거예요, 그냥. 그러니까 안 돼도 미련이 없어요 그러니까 언제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해요 근데 되면 좋고 안 되면, 좋은 거 배웠다. 끝! 툭 털어 버려요, 그냥. 가볍게. 여기서 그 딱 무너지면(실패하면) 'ok!' 한단 말이에요. 왜 오케이 할까요? 이게 내 길이 아니겠지 왜? 내 현실이 지금 여기에서 무너졌으니까, 그 현실이 당연한 거예요. 현실이 진실이니까. “아 이 현실이, 내가 ..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아닌 자기를 진짜로 믿고 관하는 이유

우리가 그것을 아무, 댁이 그렇게 생각한 것을 아무 일도 없이 해 놨으면 댁이 이런 생각도 못했죠. 왜 선으로만 한다더니 왜 그렇게 나쁘게 그렇게 했나 하고요. 만약에 길을 가는데 구덩이가 있는데 구덩이가 있어서 ‘너 가지마라’ 이런다면 그냥, 어린애들은 그냥 구덩이가 있든지 말든지 그냥 가거든요. 그래서 구덩이가 있다는 거를, 넘어져 봐야 구덩이가 있다는 걸 알거든요. 가지 말라는 건 이게 구덩이가 있어서 가지 말랬구나 하는 걸 알게끔 됨으로써 자기 자신이 알게 되는 거죠. 그 법칙이 자기 게 돼 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벗겨준다’ 이런 뜻이에요. 그렇게 열심히 잘 믿고 잘…, 남을 언짢게 하지 마세요. 언짢게 하지 않는 것도요 이렇게 댁한테 너무 억울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냥, 그 사람도 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시절인연이 오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내가 애쓸 필요는 없어

인연이 되려면 어떻게든 희한하게 인연이 된다니까요. 내가 정말 가기 싫었던 친구들 모임 친구들이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꼴보기 싫어서 나는 잘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친구들 모임에 한 번도 안 나가다가 하도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아이 참 꼴보기 싫은 친구 보기 싫어서 안 나가려고 하다가 딱 한번 나갔다가 거기서 그 절친한 친구하고 인연이 돼서 그 일을 배우게 되고 그 친구와 일을 같이 하게 되고 그래서 뭐 대박이 났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렇게 우연처럼 찾아오거든요. 인연은 내 쪽에서 애쓴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인연 따라 저절로 주어지죠. 그러니까 무위법(無爲法)이라 그러죠. 할 위爲 자, 애쓸 위爲 자 거든요. 내가 애쓰지 않는 게 진짜 법이란 말이에요.

대행 스님 법문_ 한생각이 바뀔 때 현실의 생활도 바꿔진다

우리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내가 항상 그러죠. 한 가정에, 갖추어서 사는 가정이 있는데 이것이 공 덩어리 같다. 그러면 우리가 즉 말하자면 “얘, 아무개야!” 부를 때에 “네.” 그러고 아들 노릇을 하지 딴 사람 노릇을 하지 않죠? 그렇게 모습은 그대로 있는데 그렇게 바뀐단 말입니다. 바뀔 때는 보이지 않는 데서 아들로 그냥, 과거로 그냥 되는 거죠. “아버지!” 할 때는 또 아버지 노릇 하느라고 바뀌죠? 속에서는 바뀌는 거예요. 거죽 모습은 안 바뀌어도. 속에서는 바뀌어서 돌아가는 겁니다. “여보!” 하면 또 남편 노릇을 하는 데도 그냥 바뀌는 거죠. 바뀌는데 찰나에 바뀌는 거죠. 두고두고 바뀌는 게 아니라 찰나찰나 이렇게 바뀌는데 바뀌는 것마다 가만히 보세요. 바뀌는데 그 어떤 것이 어떤 걸로 내가 ..

대행 스님 법문_ 주인공이라는 종자를 발현해내려면

지금 말씀하셨는데 이게 우리가 목마를 때 물 마시고 배고플 때 밥 먹고 똥 마려울 때 똥 누고 잠 올 때 잠자고 이러는 처지라면 이건 도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건데 자유스럽게 못 사는 것은 자기를 자기가 못 믿기 때문입니다. 그 습성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다면 자기가 망가지지 딴 사람이 망가집니까? 못 믿는 것도 믿는 것도 바로 자기가 자기를 믿는 거죠. 우리는 지금 주머니 속이라는 공기주머니 속이라는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알궁달궁하고 여럿이 그냥 거기 다 들어서 살고 있어요, 지금. 그 주머니는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돌고 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 볼 때에 바로 이 몸뚱이도 우리가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이 속에 있는 생명들은..

대행 스님 법문_ 자기 아닌 자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자유스럽게 하세요. 우리 사는 게 의도적으로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유스럽게 그렇게 안으로 내면의 ‘참 나’하고 ‘나 아닌 내 모습’하고 말을 하려면 아주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죠. 자연적으로 말을 하고 또 그게 끊어지면, 끊어진 게 아니라 그냥 잠시 이렇게 갔다가도 그냥 다른 거를…. 즉 말하자면 엎드러지게 한 놈도 그놈이고 일어나게 한 놈도 그놈입니다. 그런데 일어난 놈이 일어나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너 아까 엎드려지게 했잖아. 그런데 또 지금 일어나게 했잖아. 그럼 네가 어떻게 한 거야?’ 하니까. 그 내면에서 하는 말이 ‘네가 밝으면 밝은 데로 찾아가고 어두우면 어두운 데로 가지 말아야지, 네가 어두운 데를 밝음이라고 생각하고 가니까 엎드러지는 것 아니야?’ 하거든요. 그러..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은 없다,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라

열심히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야 해요. 그런데 거기 과도하게 집착하면 안되는 겁니다. 집착 안해야 하는데 너무 또 안해도 안된단 말이에요. 거문고 선 조율하듯이. 그러니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라,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연 따라 주어진 무엇이든 해도 좋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나 결과는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아니, 교수님, 박사님 이런 분들도 경제전문가라고 경제 어떻게 돌아갈지 100% 맞춥니까? 주식 전문가는 주식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까요? 박사가 되도 알 수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 사는 거예요. 나에게 주어진 인연 따라. 무엇을 해도 좋다.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대행 스님 법문_ 공부를 꾸준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가는 길

...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지금 살고 계셨어도 한시도 눈을 떼어 놓고 그냥 눈을 감고 살지 않습니다, 송장처럼. 그냥 눈을 감았어도 살고 있습니다. 벌떡 벌떡 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땜에 자도 참선이요 일어나서 섰어도 참선이요 일을 해도 행선이요 앉았어도 좌선이다 이 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그대로 있다는 얘기죠. 그것을 다, 이게 네 가지가 다 겸해서 돌아가고 있다. 앉으나 서나 일하나 또 서서 다니나 모든 게 같이 더불어 하고 있다. 이거는 왜냐하면 내 몸뚱이 속에도 같이 하고 있으니까 몸뚱이 하나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만약에 이 한국 나라다 이런다면 한국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또 같이 하고 가야 되겠죠. 또 한국이 아닌 딴 나라가 또 있다면 지금 올림픽 하는 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삶의 분위기, 온도, 환경이 나를 만든다, 회사를 그만두는 청년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분위기 있잖아요, 분위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온도, 이 따스함, 이 에너지, 밝은 에너지 이런 거 있잖아요. 이게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하거든요. “아주 최악의 분위기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나오는 게 낫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데요. 옛날같이 “내가 죽어도 여기 뼈를 묻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서 나한테 불합리한 일을 시키거나 부정적인 것을 시키더라도 그래도 돈벌어야 하니 여기 붙어있겠다.” 안 그런다는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니다 나왔다는 친구한테 “잘 나왔다, 잘 나왔다.” 얘기 들어보니까 진짜 부조리가 너무 심하고 옛날 60년대 회사도 아니고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것부터 가르치고. “야, 처음 직장생활 시작하는 데서 아무리 돈을 많이 ..

대행 스님 법문_ 내가 공했다는 것을 알면

제가 법문을 할 때에 그대로 담으시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그릇을 크게 해서 여러분들의 말이 자유스럽게 이 진리와 틀리지 않게 하시라는 거죠. 이게 내가 법문하는 대로 그대로 한다면 막말로 한다면 따라서 하는…, 뭐라고 그럴까요? 따라서 하는 사람밖에 더 돼요? 그러니까 그 법문이 어떤 내용인가 그래서 그 이치를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댁에서 그 말의 뜻을 말할 수가 있죠. 부처님의 말씀도 경에서 읽는 대로 그대로 읽는 건…, 예전에 그랬습니다. “원숭이가 흉내 내듯 하지 말고 네 소리 좀 해라.” 이렇게요. 그러니까 그대로 담지 말고 그 뜻을 말을 담지 마시고 그 뜻을 담으시란 얘깁니다. 그러면 댁의 게 되죠. 모든 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도 한 사이가 없고 앞으로 한다는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