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461

나는 누구인가 4.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손에 쥔 상상을 해보자. 꽤나 먹음직스러운 사과인데 이것은 과연 실제 하는가? 상상 속의 사과가 실제하기 위해서는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학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질량이나 위치에 대한 측정값이라든지 아니면 그것이 다른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실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물리학적 데이터가 없는 상상 속의 사건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실제한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 왜냐, 어떤 정보에 대한 현상만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상상 속의 사과는 유라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무라고도 할 수 없다. 유인 동시에 무인, 다시 말해 유와 무를 동시에 만..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8. 텅 빈 상태로 가는 두 가지 길

뇌는 성취 지향적이지만 가끔은 텅 빈 상태를 원하기도 한다. 텅 빈 상태를 통해 뇌는 과열을 방지하고 사람은 재충전의 good feeling을 느낀다. 텅 빈 상태는 뇌과학적으로는 느린 뇌파 및 시상과 관련이 있다. 이런 효과는 고요와 침묵 속에서뿐만 아니라 춤, 운동, 섹스 등 열광적인 행동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명상의 장점은 다른 방법들과는 달리 건강하게 텅 빈 상태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오늘은 뇌와 마음 여덟 번째 텅 빈 상태로 가는 두 가지 길에 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텅 빈 상태다’ 이렇게 되면은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태를 사람들이 가끔 원하죠. 너무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을 때 또는 아주 고요한 곳에 가서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 3.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기(氣)의 비밀!

*기의 개념 -기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기의 정확한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하기란 쉽지 않음 *기의 실체 -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히 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정과 추론이 필요함 -기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기의 실체에 대해 알아봄 -기는 물질 너머에 존재하는 초자연적 에너지로 받아들이는 시료가 있음 -기는 물질이 아닌 비물질적 요소로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봄 *동양의 정신 -물질 활동의 결과로서 도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님 -색을 비롯하여 정신 활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같음 -동양에서는 물질과 대비된 정신을 독립된 하나의 영역으로 다뤄왔음 -정신 활동을 살펴보면 예외 없이 어떤 뜻을 품고 있음 -내용과 방향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을 가리켜 정보라 함 -- 기란 무엇인..

나는 누구인가 2. 깨달음의 비밀! 점 하나에 달려 있다

*공의 수학적 개념 -실존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말함 -공은 유도 무도 아닌 제3의 존재 형태임 -공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면 점이 됨 *점의 특성 -점은 공의 특성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임 -점은 유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 -점은 면적이 없어 유가 아니고, 위치가 있어 무가 아님 -점이야말로 비유비무한 실존에 정확히 부합함 -점에 억지로라도 차원을 붙이면 5차원이 됨 --- 어느 무엇에 의해 생겨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켜 실존이라 한다. 별명도 여러 가지가 있다. 삼라만상의 모태이기에 조물주 최초의 하나인 점을 들어 하나님 만물의 본래 성품인 점을 들어 부처님과 같은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공이다. 공, 공의 정의가 유도 무도 아닌 제3의 존재 형태라는데 이것 ..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7. 니이체의 텅 빈 상태

니이체는 모든 이성과 신앙을 배척했다. 일종의 자연법칙에 위배 되는 망상이며 인류를 고난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니이체는 대안으로 디오니소스적인 삶을 제시했다. 니이체의 텅 빔은 그러므로 고요하지 않다. 발산을 통한 텅 빔이 특징이다. 이는 섹스나 뇌전증의 효과와도 유사하다. 말년의 니이체는 심신 붕괴의 상태였으나 평화롭고 자연스러워 보였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1.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

*나를 찾는 실마리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은 인류에게 이성이 쌓으면서 시작된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화두임 -2500년 전에 시타르타를 의식해서 나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철학적 논거와 과학적 증명으로 객관화된 적은 없었음 -다행한 것은 그들로부터 나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 몇 개를 얻었다는 사실임 -마음이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에서만 홀로 존재한다는 얘기는 언뜻 봐도 비논리적이고 독선적이지 않을 수 없음 *과학의 한계 -과학은 0을 완성하기 위한 학문임 -과학은 우주의 에너지 총합이 0이 아니라 1이면 종교의 영역이 됨 *입자의 착각 -입자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 적도 없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파동뿐임 -파동이 일으킨 홀로그램에 에너지가 실리면서 입자와 물질로 착각하게 된 것임 *정보의..

중도론 30.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제1원인을 알아라!

구도가 뭐냐고 단적으로 묻는다면 제1원인을 찾는 과정이라고 답할 수 있다. 어느 무엇에 의해 생성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실존 이것을 찾는 일보다 중요한 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세존의 무상정등각을 정의하자면 [제1원인에 대한 깨달음]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제1원인을 찾아보도록 하자. 삼라만상 가운데 자존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행자치고 이 문제를 가지고 실험해 보지 않은 분은 없을 것이다. 익히 알 듯 그 어느 것도 자존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거를 대지 못하면 자존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토록 우리 주변에서 제1원인을 찾기란 지난하다. 심지어 생각이나 마음 같은 것도 매한가지다. 더 나아..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6. 쇼펜하우어와 텅 빈 상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유명한 쇼펜하우어는 불교적 사상과의 유사성을 알고 두 사상을 합리주의적으로 결합시켰다. 그 또한 삶을 괴로움으로 파악하였는데 이루지 못하면 좌절의 고통 이루면 지루함의 고통 이 때문에 인생은 절망의 골짜기라고 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는 체념과 동정심을 제시한다. 모두 자신을 텅 빈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현실적 방법이다. 또 그는 음악을 매개로 텅 빈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했다. 자발적인 텅 빈 상태의 추구가 구원임을 역설한 것이다.

중도론29. 나는 누구인가? 드디어 논란의 마침표를 찍다!!

화두가 여러 개 나오다 보니 복잡할 수 있겠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하나로 압축해 보겠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이다. 앞의 화두는 모두 이것 하나를 풀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ᅟᅢᆯ서 수행자들은 예외 없이 이 화두를 수행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는 수행이 일정 경지에 올랐을 때나 가능한 궁극의 화두이다.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이 화두를 잡게 되면 너무 막연하여 시간말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다음과 같이 쪼갤 필요가 있다. 나는 있다 –참나, 진아 나는 없다 –무아 나는 있는 동시에 없다 – 유이무 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 비유비무 나는 공이다 –공 나를 알 수 없다 – 불가지 당신이 이 문제를 보자마자 저절로 답이 보인다면 깨달은 것이다..

중도론28. 불교와 힌두교의 깨달음 비교. 마하리쉬와 싯타르타의 깨달음

자, 이 시점에 앞서 필자가 내놓았던 화두를 점검해 보자. 라마나 마하르쉬와 세존의 깨달음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만일 같다면 힌두교와 불교는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제자들은 과거불 못지않게 현세불인 라마나 마하르쉬를 스승으로 떠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뼈에 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불제자 입장에선 답이 다르다는 쪽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라마나 마하르쉬를 비롯해서 수많은 힌두교의 영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놀랍도록 분명하고 간결하고 정확하여 감탄을 금하기 어렵다. 그들의 수많은 가르침 중에 깨달음에 관한 대목만 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참된 깨달음이란 나라는 자성이 없이 무아이지만 그렇다고 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본성이 있어 진..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4. 붓다 - 네 의지의 불꽃을 끄트려라(니르바나)

헤라클레이토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붓다 역시 텅 빈 상태를 역설했다. 삶의 무상과 실체 없음의 철견 만이 착각에서 벗어나 괴로움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텅 빈 상태 -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나 공(무아)은 모든 것의 배후에 존재하는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속성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중도론27. 궁극의 깨달음! 그냥 있어라. 그냥...

세존이 걸은 깨달음의 길, 불법! 그것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5차원 실존의 단면을 언어로 쪼개고 관념으로 붙여 괴상망측한 분별 덩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말로는 시종일관 실존을 가리킨다지만 본서의 어느 구석에도 실존은 없다. 실존을 모방하고 흉내내고 연상하는 정보의 거품만 옹기종기 일어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본서에서 길을 찾았으면 곧바로 그 길을 지워라. 불법을 비롯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깨달음의 길은 한낱 엄지손가락(반지름)에 불과하지 않은가. 치켜세운 엄지손(반지름)을 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주먹에서 멀어져 보기 흉하게 된다. 그러니 부디 깨달음 타령을 그만 좀 하고 그냥 있어라, 그냥!... 반지름을 내리는 것에 대한 멋진 표현이 불교에 있다. 바..

중도론26. 당신이 붓다인 과학적 증거(2) 당신은 언제나 깨달아 있다!

[관찰자 절대 보존의 법칙]은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수학에도 적용된다. 그 한 예로 인류가 영원히 풀 수 없다는 무한소를 들어 보자. 이것은 쉽게 말해 1을 반으로 쪼개는 것을 무한대로 했을 때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이다. 이론적으로는 0이 나올 수 없지만 그것 역시 쉽게 납득이 되는 건 아니다. 수학자들은 계산의 편리를 위해 그냥 0으로 하자고 정했다. 그런데 실제로 1을 무한대로 쪼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이것 역시 [관찰자 절대 보존의 법칙]을 쓰면 간단히 답이 나온다. 1이 너무 작아져서 당신의 관찰에 불필요해지면 그냥 0이 되어 버린다. 아무리 작아져도 분명 有일진대 어떻게 완전히 소멸되어 無가 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실제 세계에선 유와 무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有 ..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3. 헤라클레이토스의 텅 빈 상태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붓다과 유사한 통찰을 했고, 자발적 고립과 침묵 속에서 살았다. 그의 통찰의 핵심은 변화였고 그 변화는 '텅 빔'이라는 본성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이 만물의 근원이었다. 모든 것은 그 속에서 생겨나고 종국에는 그 속으로 돌아간다.

[현덕마음공부] 중독된 인생, 만족도가 줄어들수록 갈망과 의지는 더욱 커진다

노화에 따라 뇌의 작업 정밀도와 수행력은 떨어진다.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삶에서 성취가 주는 만족감도 저하한다. 뇌의 이런 문제를 갈망(의지)을 크게 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한다. 생존의 본능이다. 이것이 중독의 패턴이다. 막상 예전만큼 만족스럽지 않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생명의 본능이야말로 내적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갈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진짜 자유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상태는 텅 빈 상태와 같다.

중도론25. 당신이 붓다인 과학적 증거! 당신은 언제나 깨달아 있다!

모든 수행은 현재의 나가 중생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번뇌망상이 그치질 않고 그렇다고 지혜가 출중한 것도 아니니 중생임에 틀림없다. 중생이 살아가는 삶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결국엔 병들어 죽고 마는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고해를 일찌감치 절감하는 사람들은 영생과 열반에 초점을 맞춘다. 대부분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 쉽게 얻으려 하지만 철학적 식견을 갖춘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을 성취하려 한다. 후자의 사람들을 가리켜 수행자라 한다. 어떤 수행이 되었든 대칭을 깨고 자유로워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런데 중생을 전제로 한 출발은 그 자체로 매우 대칭적이다. 중생과 붓다로 가르고 시작하지 않는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진솔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는 좋다. 하지만 수행에 임해서는 중생과 붓다의 이분법적..

중도론24. 이것이 참된 위빠사나 수행이다. 관찰만하지 말고 맘껏 즐겨라!

5. 관찰하고 즐겨라. 생각을 관찰하여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이것을 일러 위빠사나라 한다. 그러데 위빠사나에 대한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바로 즐기는 것이다. 생각을 관찰하는 이유가 뭔가? 생각이 일어나는 방향 자체가 실존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생각은 나를 분명히 하려고만 한다. 그러다 보니 수십조 개의 생명(세포)으로 이루어진 몸뚱이와 여기서 발생하는 무수한 정보의 이합집산을 통틀어 나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피조물이니 중생이니 하면서 무상함과 고해를 토로한다. 바로 한 줄기 생각에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기가 막힌 허상이다. 이런 이유로 위빠사나에서는 생각을 관찰하여 그것이 만든 다의 허상에서 탈피하려 한다. 대단한 설득력있는 수행 방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반쪽짜리이다. 1..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2. 뇌는 효과를 발휘하고 싶어 한다.

뇌는 자극 없음을 견디지 못한다. 산만해지고 과거의 기억이 몰려오며 맥락 없는 연결과 사고의 전개로 환각과 환청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온전한 정신 통제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큰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명상을 할 때 초심자가 겪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텅 빈 상태에 대한 접근 방식이 핵심이다. 주체적으로 추구해 가느냐 타의에 의한 감각 박탈을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동일한 현상인 것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원리에 따라 활동과 수면의 경험에 따라 뇌는 효과를 발휘하고 싶어 하는 것과 동시에 때때로 자발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텅 빈 상태를 갈망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둘 다 필요하다.

[현덕마음공부] 뇌와 마음 1.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인간은 진공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끝없는 자극과 반응을 추구한다. 그러나 자극의 홍수와 다양한 체험 속에서 진정으로 만족할 만큼 체험에 몰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체크하는 것이 주 과제가 된다. 나아가 SNS상의 "좋아요"라는 반응이 자신의 존재감의 근거가 된다. 행복의 주도권을 넘겨준 상황이 된 것이다.

중도론23. 사이비 불교인! 그들이 외도(外道)에 빠지는 이유

2) 의심과 왜곡 분별은 논리적으로 의심해 들어가면 그것의 뿌리 약화된다 그래서 수행은 오로지 의심삼매여야 한다. 의심의 궁극까지 가서 의심이 없는 경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의심이 쉬운 것 같지만 몇 발짝 들어가다 보면 주저앉기 일쑤이다. 지와 혜가 바닥나서 그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왜곡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왜곡이 무엇인가? 그건 논리의 부재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논리가 있으면 의심이고 논리가 없으면 왜곡이다. 그래서 논리가 탄탄하면 정도이고 논리가 허술하면 외도이다. 얼룩을 지우면 바탕이 드러나듯이 외도를 바로 알면 정도가 분명해진다. 외도는 태생적으로 논리를 꺼린다. 왜냐, 논리가 세워지면 자신의 거짓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도는 한결같이 논리를 부정하거나 감추려고 한다. 구체적..

중도론22. 세존의 깨달음이란 어떤 상태일까? 그후 어떤 과정으로 생각을 일으켰을까?

4. 분별에 속지 마라. 1) 분별이란 무엇인가? 5차원 실존에 이르면 유, 무, 공을 비롯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체계가 모조리 부서진다. 2차원 평면 세계에서 3차원 입체 세계로 넘어오면 그동안 알고 있던 2차원의 지식들은 까마득한 먼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그렇듯 실존은 가히 천지개벽을 억만 배 이상 하는 것보다 큰 충격을 몰고 온다. 세존은 세 명의 스승으로부터 진아와 절대, 그리고 해탈의 경지를 배웠지만 그건 모두 4차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3차원의 의식 구조에서 보면 4차원으로의 도약은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변화이다. 수행자들이 평생을 매진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높고 높은 경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세존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5차원 실존의 열매마저 움켜쥐었다. 인류역사상 처..

[현덕마음공부] 관찰하는 자아가 왜 중요한가?

사람은 두 개의 자아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경험하는 자아(주로 감정적)고 다른 하나는 관찰하는 자아(주로 이성적)다. 감정적 상처는 우선은 위로받아야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관찰, 성찰, 직면, 해방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찰하는 자아의 필요성과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왜곡된 인식패턴을 인지하고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덕마음공부] 평화를 염원하며

전쟁같은 삶이라고 표현하지만 세상에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 인류의 문명은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번영을 이루는 방법을 상당히 발전시켜 왔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현상과 내 마음속을 연관시켜서 보아야 한다. 내 마음속에도 갈등과 투쟁이 있다. 그것이 인간관계, 사회, 국가 차원에서의 투쟁과 전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서 번뇌를 제거하는 일이 평화를 위해서도 시급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나도 세상의 비참에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더욱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이유다.

중도론21. 간화선 '화두 수행'의 함정!

(3) 논리와 반야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90여 개의 선방에서 2천여 명의 수행자들이 화두를 잡고 있다. 그들은 하루 평균 3~4시간의 수면만을 취하며 조주선사의 무자 화두에서부터 이 뭣꼬, 만법귀일, 일귀하처, 정전백수자, 구자불성, 마삼근, 같은 무려 1700여 개에 이르는 공안에 수행의 성패를 맡기고 있다. 이들이 닦고 있는 간화선은 반야에 역행하는 매우 독특한 수행법이다.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엔 나가 있고 그렇기에 아무리 반야를 증득해도 실상을 보지 못한다. 이에 간화선은 반야의 반대인 모름을 가치로 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화두이다. 화두의 답은 없다. 없기 때문에 모르는 의식에 머물게 되고 점차 진리를 알려는 나가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무아에 이르면 구름이 걷히며 달빛이 드러나는 것처럼 실상..

중도론20. 공(空)을 알면 얻게 되는 깨달음의 4단계

2) 유와 무의 잣대 대저 찌그러지고 불규칙한 벽돌로는 집을 올릴 수 없다. 마찬가지로 모호한 언어를 가지고 진리를 논리적으로 알아 갈 수 없다. 그렇기에 가장 분명한 언어인 유와 무를 측정 도구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유와 무가 적용될 수 없는 예외의 경우를 가정해 X에 해당하는 공을 덧붙이게 된다. 그런데 공이 알 수 없는 X라 해서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답을 풀지 못해서 X인 것이지 그것의 실체가 불분명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용수가 지근 회쟁론에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성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는 공이다라고 쓰여있다. 이 뜻을 풀어보면 여러 유들이 계속해서 이합집산을 하기에 그 실체가 없고 그래서 공이라는 얘기이다. 공을 유무와 다른 어떤 존재 형태로 본 ..

[현덕마음공부] 뇌의 텅 빈 상태와 불교의 공

우리는 복잡한 생활 속에서 휴식을 원한다. 자아의 일시적 망각을 통해서 재충전하고 힘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뇌의 텅 빈 상태는 휴식 이상의 상태다. 실제로 뇌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판단하는 자와 판단하는 과정이 부재하는 상태다. 그래서 막상 이런 상태는 두려움과 경원의 상태이기도 하다. 불교 수행도 마찬가지다. 수행 중에 공의 경계가 드러나면 많은 수행자가 공포를 느낀다. 자아의 소멸 때문이다. 물론 착각이지만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진입 시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자의(수행)든 타의(질병 같은)든 텅 빈 상태의 뇌파는 델타파다. 평온한 것이다. 태어나기 전 자궁 속에서 깊은 잠 속에서 죽음 후 짧은 시기 동안 우리 뇌는 델타파 상태다. 본질적이고..

중도론19. 깨달음, 당신이 몰랐던 3가지 핵심 키워드(有, 無, 空)

3. 有, 無, 空의 화두를 잡아라 1) 제1원인과 有, 無, 空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한가할 때면 불쑥 튀어나와 머리를 어지럽히던 문제가 있었다. ‘우주가 끝이 있으냐 없느냐’에 관한 의문인데 당시엔 그것이 그렇게 난해하고 혼란스러웠다. 물론 138억 광년에 이르는 우리 우주를 놓고 보면 끝이 있다. 하지만 공간을 기준으로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 우주 너머 펼쳐져 있는 공간을 무한대의 속도로 질주하면 끝이 나올까? 끝이 있다면 그다음의 공간은 또 무엇인가? 만일 공간의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무슨 이유로 그럴 수 있는지 의아했다. 혹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공간을 맴돈다고 말하지만 그런 닫힌 공간을 포괄하는 열린 공간의 문제가 또 남는다. 결국 공간의 끝이 있어도 모순이고 없..

중도론18. 그냥 깨닫는 법! 이것이 진짜 깨달음, 무상정등각 - 수학적 증명

2. 대칭을 깨고 자유로워라. 실존에 대한 궁구는 인류에게 이성이 싹트면서 시작하였다. 고대의 철인들은 삼라만상이 비롯하게 된 제1원인을 탐구했다. 그것을 X로 놓고 그 답을 구했다. 물, 불, 공기, 원자, 신.. 등등 수없이 많은 것을 X에 대비했지만, 모두 자존의 문제에 걸리고 말았다. 유는 자존할 수 없다는 진리 앞에 그들은 낙심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無를 X의 답으로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無는 충분히 자존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창조의 문제에선 답을 알 수 없었다. 無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1) 수학과 제1원인 결국 고대의 철인들은 X의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X는 세월이 흐르면서 수학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수학자들은 차원을 만들어 냈..